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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손님

201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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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 이용우

 

 아르헨티나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로부터 자신이 지금 LA에 와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냐고 했더니 한인타

운에 있는 하숙집이라고 했다.

몇 년 전에 신청해 놓은 영주권수속관계로 이미 엘에이를 두어 차례 다녀간 적이 있는 그 친구는 이 곳을 방문할

때면 으레 하숙집을 숙소로 잡는다. 식사까지 해결하고도 호텔에 비해 훨씬 저렴하고 편하다며 하숙집을 이용하

는 실속파이다. 보나마나 전에 이용했던 올림픽 가의 킴스전기 앞 골목 삼 층짜리 하숙집이 분명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말이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고 했다. 그 동안 수속 중이던 취업비자가 완료되어 가족이 함께

영주권을 받기 위해 부인과 딸아이까지 함께 왔다는 것이다. 혼자라면 몰라도 가족이 함께 왔는데 거처를 하숙

집으로 잡았다는 말에 나는 잠시 멀뚱해졌다.

 얼마나 체류할 예정이냐고 물었더니 기왕 나선 길에 한국에도 다녀오고 하려면 한 달쯤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하며, 일정상 이틀 후에 서울로 나가야 하니까 당장 내일이라도 만나자고 했다. 덧붙여 서로 인사도 시킬 겸 그린

이랑 와이프도 다 함께 나오라고 한다. 마침 다음 날이 일요일이어서 그러자고 약속을 해버렸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아내에게 통화 내용을 알리려고 일어서는데 걱정거리 하나가 떠올랐다. 조금 전 친구가 서

울행을 얘기하며 딸아이는 하숙집에 두고 두 내외만 다녀온다고 하던 말이 생각난 때문이었다. 통화를 하면서도

18세 여자아이를 하숙집에 혼자 두고 간다는 말이 마뜩찮게 들렸는데, 곰곰 짚어볼수록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밀

려왔다. 별별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투숙객 대부분이 남자들로 득실거리는 코리아타운의 하숙집에, 하이스쿨

을 막 졸업한 여자아이를 두 주일이나 혼자 놓아둔다는 것은 정말 잘못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차마 딸아이를 맡

아달라는 부탁을 직접 하지는 못하고, 이쯤 하면 알아듣겠지, 하는 꿍꿍이속으로 그 말을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아내에게 먼 곳에서 친구가족이 방문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그 친구내외가 딸

아이를 하숙집에 두고 한국을 다녀와 할 일이 생겼다는 말을 하며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응? 어린 여자애를 혼자 하숙집에 둔다고?”

“글쎄 말이야, 실은 그게 걱정이라고… 모른 체할 수도 없고.”

“모른 체할 수 없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린이 하나 수발 드는 것도 힘들고 집도 좁아터진 데, 그럼 그 애를 우리

집으로 데려오겠다는 거야?”

눈썹을 찌그러뜨린 아내가 살짝 째려보며 말했다.

“그래 그래, 그렇기는 하지. 허지만 희생 없이 어떻게 남을 돕겠어. 이리 와봐, 그린이 의견도 들어보자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아내의 손을 잡아 끌었는데, 기실 방을 같이 써야 할 그린이가 싫다고 하면 아무리 내가 원해

도 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 설명을 들은 그린은 아주 선선하게 승낙을 했다.

“정말이야? 네 침대를 언니에게 주고 너는 바닥에 자야 하는데 그래도 좋아?”

“야, 이쯔 오케이.”

어떤 해프닝을 기대했던 아내는 너무 쉽게 오케이, 하는 그린의 모습에 놀랐다는 듯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 당

신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표정이었다.

 다음 날 우리 세 식구는 미니밴을 타고 LA로 올라가 친구의 세 식구와 상견례를 가졌다. 8가와 하버드에 있는

한식당에서였다. 나와 친구를 빼고는 양쪽 식구들이 처음 만나는 것이지만, 이미 가장들을 통해 서로의 사정을

대략 숙지한 터라 이내 친숙해졌다. ‘효지’라는 이름의 친구 딸아이는 그린이 보다 나이는 4살이 많았지만 키는

되려 4인치쯤 작았다. 체수는 외소 했지만 성격은 밝고 싹싹했다. 이런저런 말끝에 좀 불편하더라도 하숙집보다

우리 집에서 지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 아이는 물론 친구 내외의 얼굴이 활

짝 펴졌다.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그러나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가만히 내쉬었다.

나는 그린에게 효지 언니와 대화할 때 영어로 말하라고 했다. 그리고 효지는 그린에게 스패니쉬를 가르쳐주라고

했더니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아래층을 오르내리며 그린의 방에 귀를 기우려 보면 제법 떠들썩하게 이야

기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덧 잘 시간이 되었기에 궁금증이 일어 그린의 방문을 살며시 노크해보았다. 예스, 하는 그린의 대답을 듣고

빼꼼이 문을 열었다. 방바닥에 이불은 펴졌는데 친구의 딸은 보이지 않고 그린이 자기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었다.

“언니는 어디 갔어?”

“샤워해.”

“그런데 왜 네가 침대에 있어? 침대는 언니에게 주고 너는 바닥에 잔다고 했잖아?”

“응, 그런데 언니가 나보고 침대에서 자래.”

“뭐야, 그래도 언니에게 침대를 양보해야지, 언니가 손님이잖아.”

“아이, 몰라. 언니가 그렇게 하래, 아빠가 언니 말 잘 들으라고 했잖아?”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그쯤에서 입을 닫고 물러나왔다. 하긴 누가 침대에서 자고 누가 방바닥에서 자는 것이 무

슨 문제일까. 그 아이가 내 집안에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2012.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