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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딸 친구

201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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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친구/ 홍순복

 

 잠잠하다 했더니 그린은 다시 학교를 옮겨야 한다고 했다. 지난 학기말 카운슬러와의 전화상담에서 전학을 거

절당했는데 그린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린 듯1월 초순에 개학이 되자 나를 앞세우고 등교 했다. 먼저 전학 담당자

에게 갔다. 50후반의 여자는 대뜸 왜 학교를 옮기려 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카운슬러의 허락 없이는 전학 용지

조차 줄 수 없다며 그린을 쳐다보며 물었다.

 “ 그 학교에 남자친구가 있나요?”

 “ 천만에요. 없어요. 그저 친구들 때문이에요.”

 그린이 대신 내가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중학교 정보를 알고 싶은지 이름을 물었다. 컴퓨터에 그린의 이름

을 입력하자 화면에 중학교 정보가 모두 나왔다. 모니터를 꼼꼼히 들여다 본 그녀는 그린, 꽤 높은 레벨이네요,

하며 옮기려는 이유가 오로지 친구문제라면 조금만 견뎌보라고 했다. 꼭 좋은 친구가 나타난다며 어린 아이를

달래듯 그린의 등을 살짝 감싸 안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그녀는 클럽활동을 돕겠다고 나섰다. 좋아하는 것이 무

엇이냐고 물었다. 자기 학교의 학생이 친구 문제로 전학 가겠다는 것이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린은 불안하고

흔들리는 목소리로 묻는 말에 대답만 했다. 자꾸 몸을 비비 꼬며 불만스런 얼굴이었다. 그러면서 그린은 전화기

로 문자 멧세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가 그린의 휴대전화를 확 잡아 뺐었다.

 “ 이건 좋은 태도가 아니에요. 우린 지금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요?”

 “ 죄송합니다.”

 나는 또 얼른 그린이 대신 사과했다. 그린은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오로지 이 학교를 떠나고 싶은 마음 밖에는

없어 보였다. 그런 그린은 갑자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그린의 우는 모습을 바라보니 나

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그녀는 우리 모녀의 모습을 보더니 자기 책상에 있는 크리넥스를 뽑아  건네주었다. 그

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여기 9학년 그린 리 가 와있는데 전학을 가고 싶다고 하네요. 지금 여기 눈물 바다에요. 이 아이를 그곳으로 보

낼까요?”

 그녀는 우리에게 카운슬러에게 가자며 자기를 따라 오라고 했다. 카운슬러의 방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

곳에는 어떤 남학생이 상담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본 그녀는 남학생과의 대화를 마쳤다. 내 곁에

따라오던 그린은 이 사람에게 말해도 안될 거라며 그냥 교실로 가겠다고 했다. 나는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면 어

떡케해, 하며 아이를 끌고 안으로 들어섰다. 지난 10월의 전화 통화에서 느꼈던 대로 카운슬러는 몹시 깐깐한 여

자였다. 깡 마르고 신경질적이며 차가운 얼굴이었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친구 문제로 전

학한다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고 지난번 전화에서처럼 똑 같은 답변을 했다. 

 “ 제 딸의 전학을 허락해 주세요. 아이가 저렇게 원하니 특별케이스를 적용해 줄 수 없겠습니까? 아이가 마음을

잡지 못해 엄마로서 걱정이 많아요. 제발 전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나는 빌듯이 그렇게 말했다.

 “ 음 …  지금은 안되고요 학기가 끝나는  6월쯤에 다시 생각해 봅시다.”

 그녀는 나의 애원에 동정심이 일었는지 약간의 가능성을 내포한 말을 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린은 감기몸살

로 심하게 앓았다.

 어느 날 직장에서 돌아와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데 벨이 울렸다. 문을 여니 귀여운 여자아이가 하이, 하며 웃었

다. 그 아이는 그린이 오늘 학교수업을 빠져서 숙제 물을 가져왔다고 했다. 인쇄물 몇 장을 내 손에 쥐어주고는

아이는 쏜살같이 가버렸다. 누구인지 어디에 사는지 그리고 고맙다는 말도 못했다. 나는 이층의 그린의 방으로

올라가서 숙제 물을 그린에게 건네주며 그 아이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린은 학교 친구인데 우리 콘도미니엄단지

에 사는 아이라고 했다. 이곳에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었나 하며 나는 몹시 궁금해졌다. 가까운 곳에 좋은

친구가 생긴다면 전학하겠다는 생각이 바뀔 수도 있는 일이다. 아이가 인상도 좋고 호감이 가는 형이라 더 그런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 직장에서 일을 하는데 그린의 전화가 왔다. 프로젝트 때문에 오늘 집에 늦게 온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빨래를 하는데 벨 소리가 났다. 문을 여니 말끔하게 생긴 동양 여자가 서있었다.

 “ 그린이 엄만가요?”

 “ 네, 그런데요.”

 그녀는 자기 딸과 그린이 같은 반인데 딸이 데리러 오라는 전화도 없고 받지도 않아 걱정되어 왔다고 했다. 어떻

게 우리 집을 알았을까 했는데 딸아이 이름이 엘리슨이라고 했다. 지난번 그린의 숙제 물을 내게 내밀고 가버린

아이 엄마 같았다. 나도 그린과 통화가 되지 않아 학교로 갈 참이라고 하자 그녀는 자신이 가서 아이들을 데려 오

겠다고 했다. 자신은 두 달 전 코비나 시에서 이곳 콘도로 이사 왔다며 필리핀 사람이라 했다. 이사올 때 딸아이

가 친구와 헤어지는 것 때문에 자기와 다투고 울고 불고 했는데 그린이를 만나 너무 잘됐다고 했다. 딸이 우리 그

린이를  참 좋아한다고 했다.

  그녀가 아이들 픽업을 위해 떠난 얼마 후 그린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린은 늦어서 미안하다고 하며 친구들이

집에 와서 다 끝내지 못한 프로젝트를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린은 언제나 친구를 집에 데려 오면 내게 먼저 허

락을 맞는다. 난 흔쾌하게 오케이 했다.

 얼마 후 벨이 여러 번 누르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자 그린이 뒤에 세 명의 여자아이들이 서있었다. 그린이 문으

로 들어오며 모두 학교 친구들이라고 했다. 내가 먼저 하이, 하고 인사를 하자 아이들은 자기 이름과 어느 민족인

지를 말했다. 엘리슨은 필리핀, 다른 아이는 일본 그리고 마지막 아이는 중국이라고 했다. 아시아 4개국의 만남

이었다.  아이들 모두가 괜찮아 보였다. 모두 그린이 방으로 올라간 후에 아무래도 아이들이 배가 고플 것 같이

냉동실의 피자를 꺼내 오븐에 구웠다. 얇고 작은 피자를 아이들의 숫자에 맞추어 잘랐다. 피자와 함께 오렌지를

가지고 올라가니 아이들이 탱큐,하며 좋아했다.

  아이들은 무슨 드라마를 연습하는지 각자 맡은 역에 따라 연기를 하고 그것을 찍어서 스크린으로 보고 있었다.

학교 사진 반에 들어간 그린은 그런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마치 자기가 감독이라도 된 듯 아이들을 지휘하고 있

었다.

  그런 이후로  엘리슨이 자주 우리 집에 와서 그린과 함께 숙제도 하며 놀았다. 테스트가 있는 날은 서로 묻고 답

하기도 했다.  구찌 샤워를 시키라고 하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발 뼘을 했었는데 엘리슨이 온 후로는 두 아이가

함께 강아지 샤워를 시키기도 했다.

 어느 날 아이의 방과후 픽업을 하는 조이언니가 슬며시 말했다. 그린이가 그러는데 얼마 전 까지 만에도 자기 왕

따였는데 이제는 아니라고 하더라.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겨서 너무 재미있단다.이젠 걱정 할 것 없다, 라고 했

다. 언니의 말을 들은 그 저녁에 밥을 먹고 있는 그린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 이젠 학교 옮기지 않아도 되지?  엘리슨도 있고 다는 친구들도 생겼으니까.”

 내 말에 그린은 입을 삐죽거리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 음,,,,,,메이비, 아돈노.”

 

2012.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