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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투이 트랭

201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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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이 트랭 / 용우

 

 지난 2월 중순경에 월드비전에 아동결연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그 답신이 어제 도착했다. 소설책만큼이나 커다

란 봉투에 내용물도 제법 두툼했다. 흥분된 마음을 누르며 조심스레 봉투를 열었다.

-후원자님, 아동 결연 후원을 통해 저에게 삶의 희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각 대륙의 아이들이 활짝 웃는 모습과 함께 위와 같은 문구가 적힌 웰컴키드가 나왔다. 삼단으로 접힌 그것을 펴

자 각종 인쇄물들이 쏟아졌다. 월드비전 회장의 감사서신, 후원 안내서, 자동이체 용지, 결연아동 사진첩, 월드비

전의 사업 DVD, 반송봉투 등이었다.

 그런 인쇄물들 속에 내 눈을 확 잡아 끄는 사진 하나가 있었다. 겉봉투는 물론 설명서 마다 붙어 있는 다른 아이

들의 생기 넘치는 모습과는 달리, 그 아이는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저 아

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이 담긴 종이를 집어 들었다.

[Get to Know Your Sponsored Child]

Child’s Name : Thuy Trang Pham

Gender : Girl

Birthday : August 29, 2003

Project Name : Cam Thuy Adp

Country : Vietnam

투이 트랭 이라는 이름의 베트남국적 아홉 살 여자아이였다. 얼굴 사진과 굵직한 글씨의 인적 사항 아래로 아이

의 배경이 비교적 소상하게 적혀있었다.

-투이는 여동생 한 명이 있으며 마을 일을 보는 아버지와 밭일을 하는 어머니, 이렇게 네 식구가 하노이로부터 남

쪽으로 149마일 떨어진 산간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주식은 쌀과 야채이며 가끔 생선을 먹기도 하는데, 부모님이

열심히 일하지만 생활이 몹시 어렵습니다. 그 곳은 8월부터 11월까지가 몬순기간이며, 여름에는 습하고 더운 아

열대 기후입니다. 투이는 공립학교에 다니는데 노래 부르기를 즐기며 줄넘기도 좋아합니다. 집에서는 음식 만드

는 일을 도우며 건강은 양호한 편입니다.-

-후원자님들의 지원으로 투이는 물론 그 마을에 의료 혜택과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발전된 영농법을 보급하며

교육수준을 향상시키는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게 됩니다. 당신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과 기도가 투이와 그 가

족 모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킴은 물론, 결국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결단에 깊

은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아이의 얼굴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네모 구멍이 촘촘히 뚫린 문짝을 배경으로 앞가르마를 탄 여자

아이가 깊은 눈길을 던져왔다. 가무잡잡한 피부였다. 하얀 블라우스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는 지도 몰랐다. 귀가

드러날 정도로 짧게 친 숏커트 머리가 마치 유소년 축구선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가 제법 컸다. 웃음기 없이

꼭 닫은 입도 컸다.

사진 든 손을 쭉 뻗쳐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았다. 조그만 얼굴 속에 든 눈과 코와 입이 모두 컸다. 이목구비가 또

렷했다. 미소를 띠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냉랭한 표정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풍기는 인상이 깊고 차분했다.

크고 검은 눈에 많은 것이 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블 위에 머리를 모우고 있던 아내와 그린이 경쟁하듯 한 마디씩 했다.

 “ 그린아, 얘 정말 착하고 귀엽게 생겼지?”

“ 예스 엄마, 정말 귀엽다. “

나는 아이의 얼굴(사진)에 살며시 입을 대었다. 그런 채로 속말을 웅얼거렸다. 후원을 중단하는 일은 없어야 할

탠데… 안 되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않되! 나는 나 자신에게 마법을 걸 듯 스스로 다짐을 외치며 그 결심의

증표로 쪽, 소리 나게 뽀뽀를 했다.

 처음 아동결연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아내는 후원대상지역으로 캄보디아가 좋다고 했고, 그린은 아프리카를,

나는 베트남을 원했다. 그린은 한국 연예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벌린 ‘희망우물’ 프로젝트와 다큐멘터리 ‘울지 마

톤즈’ 등을 보며 아프리카를 좋아하게 되었고, 아내는 온누리교회가 열정을 쏟은 ‘브레싱 캄보디아’에 감명을 받

아 그 곳을 원한다고 했다.

 내가 베트남을 꼽은 데에는 좀 더 다른 뜻이 있다. 명분이야 어떻든 월남전 참전으로 그 땅의 인명과 재산에 적

잖은 피해를 준 당사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작은 도움이나마 그 땅에 베풀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에서였다.

허지만 그린의 아프리카만이 바른 선택일 뿐, 아내의 캄보디아나 나의 베트남은 애초 잘못된 바램이었다. 왜냐

하면 월드비전의 <후원을 원하는 지역> 난에 보면 국가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대륙별로만 나누

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두 사람이 원하는 아시아에 동그라미를 쳐서 월드비전으로 신청서를 띄웠다. 그리고 월드비전에서

맺어준 나라가 베트남이었고 아이의 이름이 ‘투이 트랭’ 이었던 것이다.

눈과 코와 입이 모두 큰 투이의 똑같은 사진은 세 장이나 들어 있었다. 사진 밑에 설명서가 붙어 있었다. 한 장은

지갑에 넣어 다니고, 한 장은 액자에 걸어두고, 한 장은 북마커로 사용하시오, 라고 친절한 안내가 적혀있다.

그린이 투이 사진 한 장을 냉큼 집어가더니 자기 방 침대머리의 레이디 가가 포스터 옆에 딱 붙여놓는다. 그러더

니 해에, 웃으며 말했다.

“아빠, 이거 내 영거 시스터야.”

 

2012.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