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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두 엄마

201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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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엄마/ 글 홍순복

 

 그린은 제 생모 산소에 갈 때 마다 꼭 하는 버릇이 있다. 그린은 엄마 바이, 한 마디 하면 될 것

을 머뭇거리다 검지에 침을 바른다. 그리곤 비석에 새겨진 사진 속 엄마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댄

다. 엄마와의 입맞춤이다. 사진 주변에 작은 흙부스러기와 풀잎들을 제치고 뽀드득 소리 내며 엄마

얼굴을 닦아낸다. 그것이 생모에 대한 아이 나름의 애틋한 표현인지 모른다. 제 아빠가 딸아이를

밝고 구김살 없이 키웠다하지만 아이의 가슴 한 켠엔 생모에 대한 그리움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든

다.

아이의 마음을 다 알 순 없지만 그때마다 내 가슴도 싸 하는 느낌이 전해져온다. 그런 딸아이가 측

은 하게 여겨짐은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 모르지만 나는 가끔씩 감상에 젖어든다.

전에 그린은 묘지 앞에서 제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다.

" 아빠 죽으면 여기 엄마 옆에 묻혀?"

" 모르지, 누가 벌써 이 땅을 샀는지."

그린은 나를 의식했는지 엄마도 옆에 묻히라고 했다. 지난번엔 날더러 엄마는 엄마네 부모 옆으로

가라더니 이번엔 내 기분을 읽기라도 한 듯 달리 말한다. 그때 남편은 아이에게 말했다.

" 결혼하면 부모님을 떠나 아내나 남편 옆에 있는 거야."

" 그런 거야?"

아이는 자기 말이 틀린 것이 오히려 이상하단 표정을 지었다. 산소에 올 때 마다 나는 기분이 묘해

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린이 언젠가 내게 말했다. 자기생각으로는 엄마가 경희엄마 산소에 가는 것이 그리 기분 좋을 것

같지 않다고. 나를 슬쩍 떠 보며 지나가는 말처럼 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 아빠가 모두 같이

가자고 하니까 어쩔 수 없지, 라고 말하자 그린은 그냥 그렇다는 말이야, 라고 하며 입을 삐쭉거렸

다.

어느 날 그린은 내게 말했다.

" 엄마, 이다음에 죽으면 나 무섭게 하지 마."

순간 나는 그린을 놀려먹고 싶었다. 늘 나를 골탕 먹이곤 했기에 이번에 나도 기회를 잡았다고 생

각해서 머리를 빠르게 회전했다.

" 모르지, 네가 내게 하는 걸 봐서. 이다음에 나 늙었다고 널싱홈 구석에 처박아 두고 찾아오지 않

는다면 .내 마음 나도 몰라…… 근데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지금 안 죽을 건데. "

오늘 영화를 봤는데 아이의 죽은 엄마가 나타나서 무섭게 했다는 말을 했다. 죽으면 하늘나라에 있

는데 어떻게 나타 나냐고 말해주었다.

"학교 선생님이 그러는데 어릴 때 가족을 잃어버리면 상처가 된데."

" 모두가 상처를 가지고 있어. 모양은 다르지만. 그러나 이겨낼 수 있어. 시간이 지나면 돼. 그럼,

경희 엄마 때문에 마음이 아픈 거야?"

" 엄마도 강아지 한 마리 남의 집에 주었지? 보고 싶지?"

"응, 처음에 슬퍼서 많이 울었지만. 이젠 괜찮아 좋은 주인을 만났거든."

" 엄마가 느꼈던 그런 것과 비슷한 거야."

그린은 생모가 보고 싶다. 아니다, 라는 직설적인 대답 대신 그렇게 말했다. 아이 말솜씨가 너무

어른 같아서 나는 깜짝 깜짝 놀랐다. 남들이 들으면 날 더러 아이 데리고 뭐하느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감정에 솔직하고 싶다. 그래야 불필요한 군더더기 없이 서로의 감정이 깨끗해 질 테니

까 말이다.

그린은 자기와 부모와의 나이 차이가 너무 난다며 가끔 신경을 쓴다. 우리가 가고나면 자신만 혼자

외롭게 살 것이라는 말을 한다. 수학을 싫어하는 그린은 돈 계산과 엄마 아빠 나이 계산은 잘도 한

다. 제 친구는 30대 젊은 엄마를 가졌다며 부러워한다. 그러면 나는 그린에게 세 명 이상, 넷이나

다섯 아이를 낳아서 젊은 엄마노릇도 많이 하며 재미있게 살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할 때마다 그

린은 펄쩍 뛰며 아이 키우느라 자기인생은 즐기지 못한다며 싫다고 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그린은 남편과 나에게 달랑 카드 한 장씩만 주었다. 내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엄마, 선물은 없어, 나는 수입이 없잖아, 마음을 줄게, 사랑하니까. 내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

는지 알지? 빨리 죽지 말고 오래 살아.―

제 쓸 것은 쓰면서 어찌 싸구려 껌 한통도 없냐? 라고 중얼대다 수입이 없다는 대목에서 웃음을 터

뜨렸다. 남편 카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아빠, 빨리 죽지 말고 90세 아니 95세까지 살아.―

그린의 진실한 속마음을 보는 것 같아 선물 없는 성탄절이 나름 따뜻했다.

 

2012.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