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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아름다운 상

201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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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상/ 이용우

 

 92세의 노 시인이 병상에서 쓴 시들을 묶어 제 5 시집을 냈다.

폐렴과 식도이상증세로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다가 24시간 전문 간호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되어 지난 해 봄부터 올림픽과 윌튼 길에 위치한 양로병원에 장기입원을 했다.

노 시인은 양로병원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시 창작의 열정을 꺾지 않았다. 한 주에 한 편, 혹은 두

세편의 시를 썼는데 내가 가끔씩 양로병원에 들러 육필로 쓴 원고를 받아오면 아내가 워드작업으로

정서를 했다.

 그렇게 해서 [여기에 살고 있다]라는 제목으로 곱게 장정된 노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 지난 가

을에 출간되었다. 노 시인은 자신의 저서에 정성스레 서명한 20여권의 시집을 내게 주며 문우들에

게 전해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나는 두서너 차례 문학모임에 참석하여 시집에 서명된 각각의 문우

들에게 노 시인의 저서를 전달했다.

 시집을 받은 문우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른의 시집을 받고 가만히 있으면 되느냐, 책값이라도 모아

드려야하지 않겠느냐는 말들을 했다. 그런 의견에 대해 내가 모두 함께 양로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더니 다들 좋다고 찬동을 했다. 한 사람당 20불쯤 회비를 내는 것으로 결정

이 되었다.

 시집을 받은 문우들을 대상으로 참석여부를 물었다. 직접 혹은 전화상으로 의견을 타진하며 대여

섯 사람이나 모일 수 있으려나 하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호응이 좋았다. 금방 열 명이 넘어섰다. 처

음에는 꽃이나 한 다발 사가지고 갈까 하던 것이 300불이 넘어서자 돈으로 드리는 게 좋겠다는 생

각을 하게 되었고, 참석인원이 이십 여명에 가까워지며 회비가 500불이 넘어서서는 마음이 달라졌

다.

 잠시 생각해보았다. 왜 단 한 사람도 거절하거나 미온적이지 않을까, 20불 이상으로 정한 회비를

어떤 이는 50불, 어떤 문우는 백 달러까지 내며 오히려 기뻐하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문우들은 92세의 노 시인이 병상에서 보인 투혼의 문학정

신에 감동을 한 것이었다. 도전을 받은 것이다. 자신들이 가야할 길에 이정표를 들고 선 문단의 대

선배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노 시인에게 좀 더 큰 것을 드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문우들의 응집된 마음을 모아 쇠

해가는 노 시인의 영육에 잠시나마 뜨거운 피를 수혈하고 싶었다. 나는 마음이 통하는 Y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박 선생님에게 문학상을 드리면 어떨까? 우리 문우들의 이름으로 말이야.”

Y 시인은 내 말에 당장 찬성을 해주었다.

“어, 그거 좋은 생각이네. 마침 오늘 저녁에 수필가협회의 망년회가 용궁식당에서 열리잖아, 거기

에 몇 사람 나올 테니까 함께 그 얘기를 나누어 보자고.”

망년회 자리에서 만난 몇몇 문우들도 모두 좋다며 동조했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참여키로

한 모든 문우들에게 이메일을 띄웠다. 회비 모금 내역과 함께 문학상에 관해 전체적인 의견을 물었

다. 모두들 대찬성이라는 회신을 보내왔다. 상금에 보태라며 추가회비를 더 보내겠다는 사람도 있

었다. 그렇게 하여 노 시인의 문학상 증정 건은 급물살을 탔다.

 최종적인 참여 문인은 23명으로 결정되었다. 등단 경력이 최소 10년 이상 된 중견 문인들로 구성

되었다. 23명 중 절반이 넘는 12명이 미주의 유수한 문학단체의 전 현직 이사장이거나 회장들이었

다.

 단일 문학단체가 주는 여타문학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권위를 갖게 되었다.

모임의 명칭을 ‘문학정신을 기리는 사람들’로 하고 ‘문학정신’에서 ‘문’자와 ‘정’자를 뽑

아 상의 이름을 [문정 시인상]으로 확정했다. 총 모금액에서 상패와 현수막제작비용을 뺀 나머지

전액을 상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시상식 날자는 크리스마스 전인 12월 23일(금) 오후 3시, 장소

는 양로병원의 컨퍼런스 룸에서 거행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나는 양로병원의 노 시인을 찾아가 지금까지의 일을 설명하고, 문우들이 선생님께 문학상을 수여

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말씀드렸다. 내 말에 노 시인께서는 깜짝 놀라며 내 두 손을 덥석 잡으

셨다. 문학상을 타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그것이 모든 문우들이 한 마음으로 주는 것이라니 더욱

기쁘다며 거듭 감사를 표하셨다.

 드디어 시상식 날이 돌아왔고 정해진 시간이 다가오자 반가운 문우들의 얼굴이 한 둘 나타나기 시

작했다. 크리스마스 막바지의 금요일 낮 시간인데도 23명의 참여 문우들 중 21명이나 참석하여 성

황을 이루었다. 그 자리에서 미주수필문학가협회장인 L씨를 중심으로한 여성작가 사인방이 추가로

찬조금을 희사하여 ‘문정시인상’의 상금이 최종적으로 $1,025 달러가 되었다. 상금이 대게 오백

불이라거나 또는 천불 등으로 소수점 이하는 떼어지게 마련인데, 이번 문학상은 상금까지도 인위적

인 숫자를 고집하지 않기로 하여 전례에도 없고 이후로도 없을 희한한 상금이 책정된 것이다.

이 날의 주인공인 노 시인은 모처럼 츄리닝복을 벗어던지고 감청색양복에 파란줄무늬 넥타이를 매

고 시상식장에 입장하셨다. 문우들은 모두 일어나서 열렬한 박수로 노 시인을 맞이하였다. 양로병

원의 규칙상 운동화를 신고 보행기에 의지하여 조심스레 걷는 발걸음이었지만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띤 노 시인은 도열한 문우들을 차례로 일별하며 반가운 고갯짓을 하셨다.

 신문사와 TV 방송국에서 나온 기자들의 인터뷰와 사진촬영에 이어 곧바로 수상식이 거행되었다.

나는 [문정 시인상]이 탄생하게 된 내력과 회계내역 등의 간략한 경과보고를 한 후 상패를 들어보

였다.

 

 

-제 1 회- 문정 시인상 / 박 만영 시인

투혼의 시 정신으로 고령과 병상을 닫고 일어나

제 5시집 (여기에 살고 있다)를 써내신 시인님께

우리 문우들이 드리는 최상의 존경심과 사랑을

담아 이 상을 드립니다.

2011년 12월 23일 / 문학정신을 기리는 사람들

 

스물세 명 문우들의 이름과 함께 위와 같은 문구가 새겨진 상패와 함께 상금 1,025 달러를 수상자

인 노 시인에게 시상했다. 상을 받는 노 시인이나 상을 드리는 문우들이나 할 것 없이 기쁨과 감격

의 박수를 오래도록 쳤다. 평소 노 시인의 출입에 운전수노릇을 마다 않던 Y시인이 선뜻 나서더니

표제가 된 ‘여기에 살고 있다’를 들뜬 음성으로 낭송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살고 있다-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고

유동식 공급을 받아

연명하고 있다

살기위해

사는 것도 아니고

죽지 못해

사는 것도 아니고

다만

시를 쓰기위해

향가의 서동요

고려가요의 정읍사처럼

우리 민족의 넋이 깃들어 있는 시

단 한 편이라도

써지기를 기다려

여기에 살고 있다.

 

 

2012-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