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건너 오두막-샤넬이 오다
2014.01.26상세 본문
샤넬이 오다/ 홍순복
아무리 뒤져봐도 쥐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며칠 동안 쥐덫을 놓았지만 잡히지 않고 흔적도 보이지 않아 잠시나
마 안심했다. 허지만 트랩을 놓지 않는 날은 꼭 왔다간 흔적을 남긴다.. 쥐부부가 밤새 텔레비전이라도 시청하는
지 소파의 꼭 같은 자리에 배설물을 남겼다. 그래서 남편은 쥐덫을 소파에 놓았다. 다음날 보니 치즈만 빼먹고 빈
쥐덫만 놓여있었다. 쥐들의 아이큐가 궁금했다. 이제 더 이상 쥐들과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검은 부스러기만
봐도 쥐 배설물로 보일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매일 청소하는 것도 힘겨웠다. 언니와 그린의 말을 진즉 들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일었지만 그것조차 마음에 내키지 않아 시간을 끌었던 것이다.
" 엄마, 쥐똥하고 살 거야, 고양이 하고 살 거야?"
" 그야 고양이가 낫지."
나는 거의 10개월 동안 집을 내버리고 떠나버린 옆집 잭네만 탓하고 있었다. 이웃집 조지영감님도 빈집이 생기
면 쥐들이 모인다고 했다. 누가 그 집을 빨리 사서 이사 오기만 기다렸다. 인적이 없는 옆집 페리오에는 먼지와
마른 낙엽만 수북이 쌓이고 바람이 불 때면 더욱더 적막했다.
나는 혹시 쥐가 벽난로 굴뚝을 타고 들어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알루미늄호일로 개스 숨구멍만 남기고 모두
막았다. 오븐 밑이든 어디든 알루미늄호일로 막아버렸다. 그렇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날 밤에도 쥐들은 배설
물을 남기고 사라졌다.
동물을 싫어하는 언니도 고양이 밖에 해결사가 없다고 했다. 페스트컨츠럴을 불러도 쥐를 잡는다는 보장은 없이
5,6백 불을 지불해야한다고 했다. 그린도 고양이 밖에 우리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이모 말에 손뼉을 치며 좋아
했다. 나는 고양이가 무서웠다. 애드가 알렌포우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음산한 고양이가 연상되어 싫었다. 그렇
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웹사이트를 서치 하던 남편이 한인 타운의 어느 펩샵에서 고양이를 입양해 가라는 글이 떴다며 다음날 가보겠다
고 했다. 그이튼날 저녁 직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엘에이 한인 타운에 펩샵을 들러온 남편은 고양이가 너무 커서
우리 강아지가 무서워하겠다며 다른 곳에서 찾아보자고 했다. 고양이 한 마리 갖는 일도 쉽지 않았다.
다음날 그린이 방과 후에 언니가 형부와 함께 고양이 입양을 위해 얼바인 쉘터로 갔다. 그곳에서 그린은 직장에
있는 나에게 전화로 검은색 고양이는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전부 검은색은 싫다고 했다. 그러자 언니와 형부 그
린은 규모가 더 큰 오렌지쉘터로 가본다고 했다. 한참 후에 그린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2살짜리 예쁜 여자고양이
를 찾았다며 기뻐했다.
퇴근하여 집에 와서 기다리고 있자니 그린이 '아이 러브 마의 펱' 이라고 쓰인 레드하트가 그려진 박스를 들고 나
타났다. 그렇게 예뻐하던 구찌는 안중에 없는지 날더러 구찌를 보이지 않은 곳으로 데리고 가라 했다. 어느새 구
찌는 킁킁거리며 박스 구멍에 코를 박고 있었다. 잠시 후 내가 구찌를 안자 그린은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그
때 고양이 한 마리가 야옹, 하며 목을 내밀었다. 아기 주먹만 한 얼굴이었다. 흰색과 검은 색이 알맞게 배합된 고
양이는 아주 귀여웠다. 그때 구찌가 마구 짖어 대었다. 좋다는 뜻이었다.
고양이의 이름은 러비라고 했다. 그린은 그 이름이 싫다며 다시 지을 거라고 했다. 남편이 강아지 이름이 구찌니
까 고양이는 샤넬로 하자고 했다. 둘 다 명품이름이면 좋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린이 처음에는 샤넬이라는 이름
이 싫다고 하더니 자기 친구와 통화를 하고는 샤넬로 하자고 했다. 그린의 친구가 샤넬이라는 이름이 좋다고 했
단다. 나는 향수 생각이 나서 샤넬 넘버 5 라고 불러봤다. 고양이는 이리저리 낯선 사람들과 환경의 변화에 두리
번거리더니 열려진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침대 밑으로 들어가 나오질 않았다. 그린은 침대를 들고 겨우 꺼
내왔다. 아무래도 오늘 하루는 자기가 데리고 훈련시키며 자야 할 거라고 했다. 사전에 인터넷을 통해 고양이 키
우는 법을 배운 그린은 우리보다 한 수 위였다. 그래서 그린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구찌는
우리 방으로 데려왔다. 구찌는 내쫒긴 것에 화가 나는지 닫힌 방문을 박박 긁고 꿍꿍 깽깽 짖어대었다.
하룻밤 무사히 지나갔다. 쥐도 다녀간 흔적이 없었다. 둘째 날은 거실 벽난로 앞에 푹신한 매트를 깔고 미리 준비
한 고양이 집을 놓았다. 브라운색인 둥근 집이다. 뚜껑을 열어 반대로 젖히면 고양이 혼자서 앉아 누울 수 있는
작은 소파 같았다.
둘째 날 새벽이었다. 남편이 화장실에 가니 인기척에 샤넬이 문밖에서 야옹, 거리며 따라오더라고 했다. 첫날 방
안에서 자던 생각이 났던지 그린이 방문을 박박 긁더라고 했다.
샤넬은 밥도 잘 먹었다. 셀터에서도 샤넬만 먹이를 잘 먹더라고 했다. 자기 주인 그린을 닮아 잘 먹는다고 놀렸
다.
그런데 구찌가 자꾸 샤넬에게 가서 킁킁대며 다가갔다. 샤넬은 재치기를 크게 해댔다. 그러자 놀란 구찌가 짖어
댔다.
샤넬은 이름값을 하는지 걷는 것도 사뿐사뿐 우아하게 걷는다. 목에 달린 방울소리에 쥐들이 놀랬을 거다. 모두
가 학교에 가고 직장에 나가면 구찌는 이층에서 샤넬은 아래층을 지키며 지낸다. 이제 5일째이다. 그린이 샤넬을
만지기만 해도 구찌녀석은 질투하는지 짖어댄다. 샤넬이 우리에게 다가만 와도 그렇다.
저녁으로 해물전을 만들어 먹은 것이 체한 것 같았다. 메스껍고 토할 것 같았다. 시계는 12시를 가리켰다. 남편
은 코를 골고 자고 있었다. 아래층 화장실로 내려왔다. 활명수라도 사놓을 걸 아무 약도 없었다. 나는 바늘을 찾
아 실로 엄지손가락을 꽉 묶고 땄다. 그러면 트림이 나오고 속이 편해지는데 이번에는 별 효과가 없었다. 조금 토
해내고 어지러워 화장실 바닥에 앉아있자니 뭔가가 나를 건드렸다. 자기 집에서 자는 줄 알았던 샤넬이 어느 틈
에 내 곁에 와 있었다.
" 샤넬 가서 자,"
"야옹."
"다들 자는데 너는 내게로 왔구나, 고마워."
" 야옹."
괜찮아요,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샤넬이 너무 예뻤다. 쥐를 잡든 못 잡든 샤넬은 이름처럼 명품고양이가 틀림없었
다.
2012.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