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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꽃다발

201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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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 / 용우

 

 1부 예배를 마치고 로비로 걸어 나오는데 누군가 ‘축하합니다!’ 하며 꽃다발을 내민다. 놀라 바라보니 쑨 집사였

다. ‘순’ 이라는 한국이름을 악센트를 넣어 부르다보니 ‘쑨’이 되었다. 쑨 집사는 매 주일 교회로비에서 [환영합니

다]라는 문구를 들고 안내봉사를 맡고 있다. 누구에게나 밝은 인사로 다정하게 대한다.

지난 연초에는 우리 집에서 있었던 순예배에 초대 손님으로 참석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순장사관학교 수료식에

꽃다발을 들고 찾아와서 축하할만한 사이는 아니다. 그렇다고 어리둥절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얼른 꽃다발

을 받으며 ‘감사합니다’ 했다. 노란 데이지 세 송이와 안개꽃, 그리고 피지 않은 백합 네다섯 봉오리가 함께 묶여

있었다.

“이 흰 백합 활짝 꽃피우세요, 아주 예쁜 꽃이랍니다.” 쑨 집사의 말에 나는 지체 없이 ‘아무렴요, 정성을 다하겠

습니다, 감사합니다.’ 했다. 언제 꽃다발을 받아보았든가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로 낯설었다. 부끄러움에 얼른 고

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쑨 집사 어깨너머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이번 순장사관학교를 함께 수료한 손

집사님이 씩 웃고 있었다.

 그날 저녁 에나하임 힐의 유 집사 댁에서 쫑파티가 있었다. 순모임이 여름방학에 들어가는 축하만찬이다. 그 자

리에서 손 집사님께 물었다. ‘아까 쑨 집사가 내게 준 꽃다발 그거 집사님에게 가져온 것이지요?’ 손 집사님은 또

씩 웃었다. 그걸 뭘 묻느냐는 얼굴이었다. 곁에 있던 아내가 ‘어이구, 바보 같은 질문이라니, 쑨 집사가 무슨 연고

로 당신에게 꽃다발을 줄까. 손 집사님이 당신 주라고 양보한 거지.’ 아내의 명쾌한 해석에 모두 웃었다.

 내가 그 짐작을 못해서 물었던 것은 아니다. 꽃다발을 집에 가져다 빈병에 풀어 넣으며, 얼떨결에 받은 순장사관

학교 교육이 얼떨결에 받은 꽃다발로 해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잠시 고민했던 때문이었다. 어떤 연유로, 어떤 경

로를 통해서 왔던, 백합꽃다발은 내 집 꽃병에 꽂혀 있다. 얼른 말하면 ‘꽃값을 해야’ 하지 않느냐 그것이다.

 순장사관학교 교육을 얼떨결에 받게 되었다는 말은 이렇다. 얼마 전 바울공동체 담당인 김 미정 목사님이 우리

순예배에 참석하셨다. 예배 말미의 나눔 자리에서 김 목사님은 순원들의 교회 훈련프로그램 참여도를 묻더니,

각 자의 기록에 따라 다음 단계 교육을 받도록 권고했다. 나와 아내에게는 순장사관학교를 가라며 일정표에 적

어 넣었다.

그것을 본 아내는 얼른 ‘목사님, 저는 요즘 시간이 없어요, 다음에 받을게요.’ 했다. 그러자 김 목사님은 두 말없

이 ‘네, 그렇게 하세요.’ 하며 아내의 이름을 지웠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둘 다 빠지겠다는 말을 못하겠어서 입

을 다물었다. 그래서 그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순장사관학교에 나 혼자 참석하게 되었다.

 순장사관학교에 들어가 보니 대부분 부부가 함께 참석하고 있었다. 이 성권 목사님이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왜

홍 순복집사님은 안보이나요?’ 해서 내가 ‘그 사람은 다음에 받는답니다.’ 했더니 ‘순모임은 순장보다 순모님 역

할이 더 큽니다, 부부가 함께 배워야 효과적입니다.’ 라며 은근히 나무랬다.

 이 세상에 여자 동의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어디 있을까. 내가 아무리 교육을 잘 받고 순장될 만반의 준비를 갖춘

다 해도 아내가 노, 하면 그만이다. 더구나 인내와 헌신이 첫째 조건인 교회 사역이야 말해 무엇 하랴. 순장사관

학교에 내가 아니라 아내가 왔어야 했다. 슬며시 집으로 가버릴까, 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한 사람이라도 더 참석시키기 위해, 순원들 사정에 맞춰 일정을 조정하느라, 며칠이고 전화통에 매달리는 순장

의 모습을 보아왔다. 그렇게 모아놓는다고 순모임이 고요한 돈 강처럼 흐르는 것도 아니다. 정치가와 법관과 선

생은 어느 곳에나 있고, 은혜파와 도덕파는 예측 없이 밀땅을 한다. 적절히 끼어들어 원만히 무마시키려면 항상

긴장하고 눈치껏 요령도 부려야 한다. 순모임 장소의 절반은 내 집에서, 라는 각오 역시 순장이 갖출 기본사항이

다. 식사나 간식 메뉴는 물론, 음료수까지도 순원들의 식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순장 직을 이 무더운 여름에

교육까지 받아가며 떠맡아야 하다니… 어설픈 순장이 되느니 착한 순원으로 남는 게 더 은혜스럽지 않을까. 순장

교육을 받는 4 주(한 주는 빠졌으니 실지로는 3주)동안 몇 번이나 그런 생각을 했다.

 화병에 꽂아놓은 쑨 집사의 백합이 활짝 피었다. 세어보니 모두 다섯 송이였다. 몽우리였을 때는 국자처럼 목을

꺾고 있었는데, 꽃을 피우니 갈라진 흰 날개가 나팔처럼 벌어졌다. 만개한 백합을 보고 있으려니까 ‘꽃값을 해야

지’ 했던 생각이 났다.

 나에게 꽃다발을 양보한 손 집사님이 떠올랐다. 그는 분명 한 성질 했을 사람인데 순장을 맡은 후로 많이 변화되

었다. 깨알 같은 글씨로 빽빽하게 채운 ‘생명의 삶’을 펴놓고 나눔을 이끌며, 느린 기도지만 조금참고 있으면 끝

까지 해낸다. 나도 노력하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내가 순장사관학교를 가는 그 날까지 ‘생명의 삶’에

깨알같이 글씨를 써넣고, 느리더라도 끝까지 기도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이겠다.

 

2013.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