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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황금알 하나

201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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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 하나/ 홍순복

 

 나는 어려서 수줍음을 많이 탔다. 엄마가 이웃에 심부름을 보내면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은 피해 가까운 거리를

빙 돌아서 가곤 했다. 그러나 교회의 중 고등부를 나가면서 남학생들과 함께 어울리며 조금은 숫기가 생겼다. 지

금도 어린 날을 회상하면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교회에 모이면 남녀학생 할 것 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다가 어른들께 혼이 나기도 했다. 우리 부모님은

조금은 트였다 할까 남학생들이 우리 집에 오는 것도 허용하셨다. 토요일 교회에서 늦게 와도 나를 믿어서인지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게다가 일 년에 두세 번은 교회에서 밤을 샐 때가 있었는데 그것까지도 눈감아 주셨

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교회고등부모임에 타지에서 유학 온 도현이란 아이가 있었다. 박박 머리 소년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영리하게 보였다. 생각처럼 그는 그 당시 내가 살던 시에서 제일 우수한 학교 배지를 달고 왔

다. 새로운 회원이 오면 서로 인사를 나눈다. 남녀학생 상관없이 악수로 반가움을 대신했다. 오른 손을 내밀자 그

가 난색을 표했다. 왼손을 내밀고 오른 손을 감추었다. 살짝 보니 손가락이 데인 것 같고 뭉뚱그려져 있었다. 나

는 너무도 당황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그냥 말로만 할 것을 하고 후회가 되었는데 그가 먼저 밝게 웃어서 어색한

순간을 슬며시 넘길 수 있었다. 도현이는 고향이 남도인데 그 학교를 다니기 위해 혼자 와서 자취를 한다고 했다.

 그는 문학 소년이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 즈음 나도 꿈 많은 문학소녀였다. 그와 나는 같은 책을 읽고 서로의

감상문을 나누었다. 가끔 그 아이는 내 이름을 넣어 즉석에서 시를 지어 칠판에 쓰며 시인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낭송하기도 했다.

 어느 여름날 모임을 끝내고 둘만 남게 되었다. 정신 없이 문학 이야기를 하다 보니 통금시간이 다되어갔다. 집으

로 달려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아담한 교회의 모임 방에는 긴 벤치가 두어 개 놓여있었다. 스펀지가 든 방

석을 여러 개 벤치 위에 깔고 각자 벤치에 누워 잠을 청했다. 서너 시간만 지나면 통금이 해제될 것이었다. 그런

데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억지로 숨소리를 고르게 내쉬며 자는 척 했다.

 어느새 새벽이 됐는지 누군가 문을 열고 있었다. 살며시 실눈을 뜨니 교회에서 일하며 사시는 사찰 아주머니였

다. 나는 숨소리를 죽인 채 그 아주머니가 제발 돌아가 주기만을 빌었다. 그때 우리가 함께 밤을 새웠다는 걸 알

았다면 얼마나 교회가 떠들썩했을까 지금도 아찔하다. 교회를 연애 당으로 보던 그 시절이 이였다.

 어느 날 교회친구가 내게 와서 도현이가 아프다며 가보자고 했다. 그때 도현이는 자취방에서 나와 교회사택의

문간방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입술이 파리한 도현은 기운 없이 방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그가 벗어놓은 하늘색

교복 셔츠가 마구 구겨진 채 머리맡에 놓여있었다. 나는 무엇이든 해야 될 것 같아서 그 교복 셔츠를 수도가로 가

져가 빨았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른다. 여학생인 내가 남학생의 교복을 세탁한다는 것이 쑥스러워서

다.

"쟤가 아프니 어쩌니, 우린 친구잖아."

 나는 같이 간 친구에게 그렇게 변명을 했다. 그러는 중에 교회 사찰아주머니가 도현에게 먹을 것을 가져왔다. 다

행스럽게도 도현은 며칠 후 기운을 차리고 일어났다.

 우리는 고3이 되었고 서로 공부하느라 모임에 뜸해졌다. 어느 저녁 누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러 나갔더니 놀랍

게도 도현이가 서있었다.

" 내가 사는 집에 한 번 놀러 가지 않을래?"

 도현이는 불쑥 그렇게 말했다. 그 즈음 도현이는 잠시 머물렀던 교회사택에서 나와 새로운 자취방에서 살고 있

었다. 나는 조금 의아했지만 어떤 곳에서 살고 있는지 내심 궁금해서 그를 따라 나섰다.

우린 밤길을 걸었다. 집이 어디쯤인지 내가 궁금해 하자 그는 조금만 가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걸어가던 중에 그

는 어느 순간 발걸음을 멈추고 내게 부탁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게 무언지 말해보라고 했다. 도현은 어는 구멍가

게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가게 한편을 가리켰다.

" 나 저 노란 달걀 하나 사줄래?"

"그래? 알았어. 그런데 동전이 하나밖에 없네. "

" 괜찮아 계란 하나만 먹으면 돼.”

 도현은 달걀 하나를 호주머니에 넣더니 어서 가자며 내 손을 끌었다. 스산한 가을밤인데도 내 손바닥에는 땀이

흠뻑 배어났다.

 제법 높은 언덕 위에 작은 판잣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곳에는 희미한 불빛이 집집마다 새어 나왔고 아

이들의 울음소리, 술 취한 노동자의 갈 짓자 걸음과 흥얼대는 유행가 가 어우러져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도현은

어떤 집 행랑채 앞에 서더니 잠긴 문을 열었다. 작은 부엌을 통해 들어간 쪽 방엔 책상 하나에 사람 하나가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전부였다. 그의 난쟁이 책상머리 위에는 흑백사진 하나가 붙어있었다. 어디서 본 얼굴인데

하며 누구냐고 묻자 그가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아인슈타인이야."

방바닥은 그리 따뜻하지 않았다. 그는 부엌에서 쇠젖가락 하나를 가져와 내 앞에서 호주머니에 넣은 달걀을 꺼

내 탁탁 치더니 양쪽에 작은 구멍을 내어 쪽쪽 빨아먹었다.

" 이제야 힘이 난다 정말 맛있다. 고마워 잊지 않을게……황금알을 낳는 닭이 있어서 매일매일 하나씩 낳았으면

좋겠다."

 도현은 밤길에 숙녀를 혼자 보낼 수 없다며 갔던 길을 되돌아 우리 집 앞까지 함께 돌아왔다. 도현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내가 많이 걸어 힘들겠다고 하자 그는 기분만점이라며 두 팔을 어깨위로 치켜 올렸다.

그날 이후 나는 도현을 다시 볼 수 없었다. 내가 어떤 사정으로 그곳을 떠나 서울로 갔기 때문이었다. 대학은 들

어갔는지 어디에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끔은 아이들 이름은 거의 잊었지만 그의 이름 석 자와 까까머리 그의

모습은 뚜렷이 떠오른다.

 도현의 근황을 알게 된 것은 엘레이의 어느 서점에서 한국교회소개란 책자를 무심코 넘기다 그의 사진을 보게

되어서였다. 30년이 넘었는데도 그의 모습은 동안이고 변하지 않았다. 훗날 우리 서로 성공해서 만나자 하던 그

의 말이 생각났다. 그는 예전 내가 살던 곳에서 장애 우들을 위한 특수교육을 하는 목사가 되어있었다. 그의 뭉뚱

그려진 손이 그를 특별한 사역의 길로 가게 한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했다.

 "아직도 그는 그 황금알의 맛을 기억하고 있을까? 누군가 그의 옆에서 또 다른 황금알을 낳아주고 있겠지."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노란 달걀 하나를 꺼내어 쇠젖가락으로 톡톡 쳐서 양쪽에 구멍을 내고 쪽쪽 빨아 먹었다.

 

2013.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