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메뉴바로가기
     

개울건너 오두막-눈으로 말해요

2014.01.26

상세 본문

눈으로 말해요 / 용우

 

부부학교세미나 때였다. 프로그램 중에 부부가 서로 시선을 맞추고 눈으로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다. 침묵 속에 5

분간 상대의 눈동자만을 바라보며 생각으로 서로를 읽고 마음으로 교류하는 것이 과제였다.

그런데 별것 아닐 것 같은 그 행위가 실지로 실행해보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연애할 때는 제법 긴 시간을

바라보기만도 했던 것 같은데 기껏 살다가 갑자기 서로 눈만 빤히 바라보려니까 어색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5분

이라는 시간이 너무도 길었다.

 나는 그나마 남자라서 그런지 억지로라도 보고 있는데 아내는 단 이삼십초도 못 참고 히히히,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꾸며내어 아닌 척 하는 행위를 절대 못하는 아내는 좌우의 다른 커플들 모습을 훔쳐보는

것으로 아예 내 눈을 피해버렸다.

‘여보, 다른 사람 쳐다보지 말고 내 눈을 보라구, 나를 봐.’ 내가 그럴수록 아내는 더 킥킥거리며 ‘아이, 않되, 우스

워서 쳐다볼 수가 없어, 이상해.’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 역시 아내의 눈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시선을 맞춘다고 하면서도 기실은 타투한 눈

썹으로, 좁은 이마로, 그리고 콧등주변의 땀구멍을 세고 있었다.

 타의에 의해서지만 새삼스레 가까이서 바라보고 있자니 아내의 말처럼 이상했다. 쟁반만한 테이블에 턱을 괴고

앉으니까 서로간의 얼굴간격이 1피트도 되지 않아 착시현상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얼굴이 넙적하단 생

각도 들고, 시커먼 영구눈썹이 쳐다볼수록 징그럽게 느껴졌다.

‘아이고, 이러면 안 되지, 눈을 봐야지.’ 나는 굳은 결심으로 눈에 잔뜩 힘을 주어 아내를 건너다보았다. ‘어머, 왜

그래? 다정하게 쳐다봐도 어색해 죽겠고만 그렇게 째려보면 어떻게 눈을 맞춘데.’ 아내의 불평에     나는 ‘아, 참,

이게 아니지.’ 하고 얼른 표정을 풀며 바보처럼 허허 웃었다.

지난 주말, 토요일 오전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5번 프리웨이를 타기위해 버뱅크 블러버드를

달리던 중에 신호등에 걸렸다. 그런데 옆 차선의 오픈카 뒷자리에 큼지막한 검정개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레바

도 종의 점잖고 늠름한 녀석이었다.

 나는 그 검정개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일부러 옆 차의 속도에 맞춰 적당한 거리에서 정지를 했다. 내 차의 운

전석과 옆 차의 뒷자리가 평행선이 되게 한 것이다. 시커먼 두상을 휘두르며 두리번거리던 녀석은 곁으로 붙어

선 나를 발견하더니 고개를 쑥 내밀었다. 나는 얼른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하이, 하고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

런데 잠시 무슨 냄새라도 맡듯 코를 벌름거리던 녀석이 앞쪽으로 고개를 훽, 돌려버리는 것이었다. 한 번 머리를

돌려버린 녀석은 이후 내가 아무리 손짓을 해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어쩔 수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검정개를 실은 자동차는 스포츠카답게 쌩하고 달려

나갔다. 그런데 다음 신호등에서 또 걸렸다. 다른 차들과의 관계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검정개의 차보다 한 칸 앞

쪽에 정차했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접으며 백미러로 녀석의 모습을 살폈다.

 내 뒤를 따르던 하늘색 폭스바겐이 속도를 줄이더니 방금 전의 나처럼 오픈카의 뒷자리와 열을 맞추어 섰다. 운

전석에서 중년의 금발머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이번에도 검정 레바도는 머리를 휘두르더니 자기 곁에 다가선 사

람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금발이 얼른 자기 얼굴에서 선글라스를 벗겨내며 하이, 하는 입모습을 만들었

다. 그러자 녀석은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며 꼬리를 흔들었다.

저 놈이 또 고개를 돌리겠지 하고 나쁜 기대를 가졌던 나는 예상 밖의 광경에 눈이 불거졌다. 왜 나와는 눈을 맞

추려고 하지 않던 녀석이 뒷사람에게는 꼬리까지 흔들며 반가워할까, 저 사람이 백인이라서 그런가, 저 놈이 지

금 인종차별을 하는 건가, 제 놈도 검으면서.

 섭섭한 마음에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한순간 머리를 치는 깨달음으로 하여 잡고 있던 핸들을 탁 쳤

다. 나는 내 얼굴에서 선글라스를 떼어냈다. 바로 그것이었다. 금발머리는 검정개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자기 눈

을 가렸던 선글라스를 벗었는데 나는 무례하게도 검은 안경을 그대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검정개에게 외면당한 것이나 아내와 눈 맞추기 어려운 것이나 모두 눈을 바르게 맞추지 못한 결과이다.

 

2013.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