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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심플라이프

201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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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라이프/ 홍순복

 

 이른 아침부터 문밖에서 쓱쓱 비질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어둑한 시간인데 옆집 조지가 부지런히 우리 집 앞

까지 쓸고 있다.

 키 큰 유클립스나무가 집 앞을 가려 화단 앞은 언제나 그늘진다. 이웃집처럼 꽃을 심지 않고 햇빛 없이 크는 플

랜트만 있다. 허지만 낙엽들이 쏟아져 내려 자주 쓸어야 한다. 문을 열고 굿 모닝을 할까  망설이다 그냥 있기로

했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가끔 이웃집까지 쓸기도 했는데 요즘은 통 시간을 못 낸다.

 조지의 옷차림과 빠른 걸음은 그를 83세 노인이라고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내가 차에서 시장봉지라도 꺼내고

있으면 언제 왔는지 도와주겠다 했다. 내가 도와야 하는데 그는 부득부득 내 짐을 들고 집 앞에 놓고 간다.

 한가한 오후  구찌 녀석은 문 앞에 서서 끙끙거렸다. 콧바람 좀 쐬겠다는 것이다. 녀석을 데리고 나오니 불라인

더 사이로 조지 아내 말지가 저녁을 준비하는지 오븐 곁에 선 뒷 모습이 보였다. 힐끗 안을 들여다 보자 말지가

나를 보고는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한다.

 “ 순, 어서 와,  오랜만이네. 바쁘니 옆집인데도 자주 못 보네.”

“ 그러네요,”

 그녀는 문을 열면서 이층을 향해 조지를 부른다. 조지는 젊은이처럼 빠르게 층계를 내려왔다. 하이 순, 인사를

한 뒤 곧바로 보여줄 게 있다며 내 손을 잡고 이층으로 안내했다. 나는 멋쩍게 끌려가듯 그의 손을 잡고 층계로

올라서자 말지는 내게 눈웃음을 보내며 올라가란 손짓을 했다.  이층 방으로 들어서니 조지 부부가 쓰는 베드가

깔끔하게 놓였고 서랍장 하나로 기본적인 가구만 갖췄다. 우리집 방과 같은 사이즈인데 훨씬 커 보였다. 비행기

정비사였던 그는 모형비행기를 많이도 모았다. 벽에 액자에는 정비사 유니폼을 입은 젊은 날의 조지가 비행기를

배경으로 서있었다.이것 저것 설명을 하는 그는 영락없이 관광지의 안내원 같았다. 평소에 청바지와 체크무늬

셔츠를 즐겨입는 그의 옷장 속엔 온 통 복잡한 체크무늬 셔츠로 채워졌다. 심플한 사람인데 체크무늬를 좋아하

냐고 묻자 밋밋한 것은 싫다며 무늬를 바라보면 재미가 있다고 했다. 내게는 체크무늬가 현기증을 일으키던데

말이다.

  말지는 조금만 더 있다 가라며 금세 따뜻한 차를 가져왔다. 구찌는 남의 집인 줄 알고 체면이라도 차리는지 점

잖게 조지 옆에 앉아있었다. 조지는 가끔씩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지 머리는 숱이 달아난 듯 바람만 불면

날아갈 정도로 한 주먹도 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조지를 만났냐고 묻자 기다린 듯 어릴 때 한 동네에서 자랐다

고 했다. 말지는 소녀처럼 들떠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70 년을 함께 한 셈이다. 말지는 조지를 보며 수줍

은 듯 쳐다본다. 말지는 조지의 고등학교때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며 다시 한번 조지를 보며 윙크를 했다. 그때

나는 장난기가 돌아 이렇게 물었다.

 “ 아직도 조지가 그때 청년 같아요?”

“예스, 예스,”

 그러자 조지도 질세라 말지의 10대 모습을 말해주었다. 너무 예쁘고 스윗해서 누구에게 뺏길 까봐 손가락 걸고

자기에게 시집오라고 했단다. 그 한마디 약속을 지킨 말지를 그때처럼 지금도 사랑한다고 했다.

 언젠가 딸아이가 내게 말한 것이 기억이나 웃음이 났다. 지금 말해야 하는 절호의 기회 같았다. 어느 날 우리 집

앞을 지나는 조지를 보며 딸아이는 말했다.

“ 이 다음에 결혼하면 조지 같은 사람하고 하고 싶어.”

“ 왜? 백인 하고 할거야?”

내가 그렇게 묻자 아이는 그게 아니고 멋있게 늙어 가잖아. 나이보다 생각과 모습이 젊어. 할아버지 느낌이 않나.

 조지에게 말했다. 그린이 결혼하면 조지 같은 사람과 하고 싶다고. 조지는 잠시 멍하더니 멋쩍은지 나를 툭 치며

웃는다. 말지도 좋은지 그래, 그래, 내 남편 멋져, 라며 박수를 쳤다.

 그들은 큰 굴곡 없이 살아온 인생처럼 보인다. 허지만 어느 누가 비바람을 맞지 않고 해볓만 쪼이고 살았을까?

문제를 지혜롭게 넘겼으리란 추측을 해본다. 언제나 밝은 두 사람을 보며 느낌이 많아진다.주말에 데니스 레스

토랑을 다녀오면서도 행복해 하는 말지, 검소한 소시민인 그들 부부처럼 늙어 가고 싶다. 두 부부는 한때 교회를

출석했는데 교회가 없어져 쉬고 있다고 했다. 다른 교회를 찾으라고 말했다.

 딸아이가 전화를 해서 나는 아쉽지만 일어섰다. 조지가 집 앞을 매일 쓸 듯 나 역시 불필요한 마음의 쓰레기를

날 마다 비질해 버리고 싶다.

 

2013.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