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건너 오두막-괜한 걱정
2014.01.26상세 본문
괜한 걱정 / 이 용우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그런데 자나 깨나 북한 얘기로 뉴스가 들끓으니 혹시나
하는 걱정이 생겼다. 퇴근 후에 집에 들어가면 한국으로 전화해봐야지, 하고 며칠을 벼른 끝에 드디어 지난 토요
일 저녁에 숙제를 해결했다.
첫 전화는 청량리에 사는 작은 누나에게 넣었다. ‘걱정이 돼서 전화 했어, 북한이 당장에라도 미사일을 쏘아댈
것 같잖아. 비상시에 대비한 준비는 좀 해두었어?’ 내 말에 작은 누나는 어이없다는 듯 힝, 코웃음을 치더니 ‘준비
는 무슨 준비, 난 요새 신나게 돈 벌러 다닌다.’ 하며 깔깔 웃었다.
‘아니, 위가 안 좋아서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돈 벌러 다닌다니 건 또 뭔 소리야?’
‘야, 내가 놀기 심심해서 간병인 자격증을 땄잖아. 그래서 하루 서너 시간씩 일을 하는데 아픈 사람 도와줄 겸 용
돈도 벌고 일거양득이라고, 한 달에 오륙십 만원은 벌어.’
‘오륙십 만원? 겨우 그 돈을 벌려고 애쓰고 다녀? 아니, 매형이 직장에 다니고 조카들이 용돈 넉넉하게 주는데 뭐
가 아쉬워서 그 힘든 간병인을 한데.’
‘얘는, 너 노는 거야 말로 얼마나 힘든지 알어? 많이 하는 것도 아니도 그저 운동 삼아 서너 시간 일하는 건데 뭔
걱정이래. 아니, 그건 그렇고 얘, 나 위병 다 낳았다.’
‘그래? 어떻게 수십 년 묵은 위병을 고쳤어?’ ‘응, 아주 간단해. 매일 아침저녁 두 차례 양배추를 갈아 마시는 거
야. 우리 집안 내력이 위가 약한 거잖아, 그러니까 너도 한 번 해봐. 믹서에 양배추를 갈면 좀 뻑뻑하거든, 그래서
나는 우유를 타서 마셔. 자기 식성대로 쥬스를 배합하던가 아니면 샐러드로 만들어 먹어도 되고. 다만 물에 삶아
먹는 건 않되, 왜냐하면 익히면 특수 물질이 파괴되어서 효과가 없어. 양배추가 위장에는 정말 좋아, 올케에게 말
해서 한 달만 꾸준히 먹어봐, 알았지?’
북한의 협박이 걱정스러워 전화를 했다가 엉뚱하게도 양배추 예찬론을 듣는 것으로 작은 누나와의 통화를 마친
나는 어린이 대공원에 근무하는 남동생에게로 전화를 돌렸다.
'얘, 나는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했는데 작은 누나는 태평세월이더라.’ 내 말에 동생은 하하 웃으며 ‘아이고, 형도
참말로, 여기 전쟁 날까 봐 걱정하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또 전쟁이 난다 한들 어쩌겠어, 어디로 피난을 갈 거요,
아니면 맞서 싸울 거요. 난 요즈음 퇴직 후에 뭘 할까 하는 게 가장 큰 고민입니다.’
‘아하, 네 나이도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정년퇴직이라니… 참 세월 빠르다. 그래, 퇴직 후에 뭐 좋은 계획이라도
세워둔 게 있니?’ 나는 이번에도 또 동생의 가장 큰 관심사항으로 대화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글세, 아직 확실하게 결정한 건 아니지만 자연환경 좋은 영월이나 정선 쪽으로 들어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
고 있어요. 요새는 귀농학교가 있어서 교육받으면 여러 가지 지원도 해주고 정착에 성공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
을 줍니다. 형, 내가 산수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을 테니까 돌아와서 함께 삽시다.’
나는 갑작스러운 동생의 제안에 답을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사실 이 문제는 목의 가시처럼 껄끄러운 일이다.
그렇잖아도 가끔 ‘끝까지 이 땅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고국으로 돌아가서 여생을 마칠 것인가,’ 라는 고민을 하
고 있다.
언젠가 아내에게 이 문제를 슬쩍 떠보았더니 ‘뭐라고? 한국에 가서 살자고? 어유, 난 싫어, 갈려면 당신 혼자서
가.’ 하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형제들이 모두 이 오렌지카운티에 모여 사는 아내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허지만 잠깐의 고민도 없이 그렇게 한 마디로 딱 자르는 모습에 서운한 마음이 앞섰다. 수구초심이라고 동물도
죽을 때는 태어난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데, 고국 땅에 무슨 만 정이라도 떨어 진양 그리 매정하게 싹둑 자르는지
몰랐다.
‘고맙다, 그렇게 말해주니. 네 말대로 정선 쪽 어디 물 맑고 경치 좋은 곳에서 노후를 보내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
만 해도 기분이 좋다. 그래, 아직 시간이 있으니 우리 천천히 좋은 방향으로 연구해 보자.’ 나는 동생에게 그렇게
말하고 통화를 마쳤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잠시 고국의 아담한 농촌풍경을 그려보느라 회상에 잠겼다. 야트막한 산허리를 끼고 돌면
삼십여 호 농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향마을이 눈에 선연하다.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고종사촌형
님네 담배건조실이고, 그 다음이 작은고모네 양철지붕이다. 형님네 담배건조실과 작은고모의 양철집 사이에는
경사가 급한 도랑이 흐른다. 이 도랑 위에 통나무 두 개를 걸쳐놓고 다리삼아 왕래한다. 캄캄한 그믐날 밤에도 고
향사람들은 이 통나무다리를 잘도 건너 마실을 다닌다.
‘여보, 전화 끝났으면 어서 샤워하고 자야지, 벌써 열두 시가 다 됐는데.’
아내의 말소리에 나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몽롱한 눈을 들어 아내를 바라보았다. 눈은 째렸지만 입은 웃는다. 나
는 그런 아내의 모습에 용기를 얻어 꿈같은 소리를 했다.
‘여보, 길우 동생이 한국에 와서 같이 살자내.’ 아내의 얼굴은 당장에 일그러졌다.
' 한국이 걱정스러워 전화한다더니 엉뚱하기는, 내가 말했잖아 싫다고.'
이것 참, 걱정할 곳은 한국이 아니라 여기네.
2013.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