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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딸기 다섯 개

201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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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다섯 / 용우

 

 오늘은 긴 겨울방학을 마치고 올 해 처음 갖는 순모임 날이다. 우리 긍휼 2순은 대개 격주로 토요일 저녁에 순모

임을 가져왔는데, 이번에는 사정에 의해 주일저녁으로 정해졌다. 항상 그랬듯이 첫 순모임은 순장님 댁에서 갖

는다.

 특별히 오늘 순모임에는 새로운 교우가정이 참석한다고 한다. 오랜 방학 끝에, 그리고 일 년여 만에 새 식구가

생긴다는 소식에 기대와 흥분이 일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내가 친구들과 함께 문우의 병문안을 가기로

약속이 되어서 우리 집의 트레이드마크인 호두쿠키를 만들지 못하게 된 것이다.

 순모임 날이면 아내는 항상 호두쿠키를 만들어갔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아내는 나에게 시온마켓

안에 있는 제과점에서 롤케잌이나 호두과자를 한 상자 사가지고 먼저 가라며, 자기는 병문안이 끝나는 대로 곧

장 순장님 댁으로 오겠다고 했다.

 나는 순모임시간인 오후 5시를 삼십 분쯤 앞두고 시온마켓 안쪽에 위치한 제과점으로 들어가 무엇을 살까 하고

진열장을 들여다보았다. 아내의 말대로 진열장 안에는 호두과자도 있고 롤케잌도 여러 종류 진열되어 있었다.

 롤케잌으로 할까, 호두과자로 할까, 궁리를 하다가 새 식구가 온다는데 아예 큼직한 케이크를 사가는 게 모양새

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별도의 진열장 안에 예쁘게 장식된 케이크로 눈길을 돌렸다. 초코케이크, 치

즈케이크, 고구마케이크 등이 각기 특색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 중 언젠가 먹어보았던 고소하고 달콤한 맛의 고구마케이크가 좋아 보였다. 케이크 표피를 보슬보슬한 크림

색빵가루로 씌우고 빨간 딸기 몇 개를 이파리 째 살짝 얹은 모양이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다. 동그란 케이크의 모

양을 따라 꼽힌 딸기를 세어보니 네 개였다.

 여종업원이 다가와서 ‘마음에 드는 케이크가 있으세요,’ 하고 물었다. 나는 고구마케이크를 가리키며 ‘저 케이크

위에 딸기 하나를 더 얹어주실 수 있나요?’ 하고 물었다. 여자는 ‘그럼요.’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순은 모두 네 가정이다. 그런데 오늘 새 식구가 오게 되면 다섯 가정이 된다. 기왕이면 케이크위의 딸기도

식구 수에 맞추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마침맞게 떠올랐던 것이다. 나는 다섯 개의 딸기가 올려 진 고구마케이

크를 들고 순장님 댁으로 향했다.

 가서 보니 최 집사님 네가 먼저와 있었는데 잠시 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반가운 얼굴들이 들어왔다. 새 식구

부부도 이내 도착했다. 순장인 손 집사님의 소개로 서로 통성명을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반도체 사업을 한다는

남자 집사님은 훤칠한 모습처럼 시원시원했고 그의 아내는 여성스럽게 조신한 분이었다.

‘경’이라는 흔치 않은 성씨의 남자 집사님은 우리 순의 마담겪인 완선 집사님의 결례에 가까운 호구조사에 덤덤

한 표정으로 성실하게 답변했다. 20여 년 전 S기업의 주재원으로 실리콘밸리로 왔고, 슬하에 남매를 두었으며,

십여 년 전에 독립하여 개인 사업을 한다고 했다.

 그 덕분에 우리도 모두 돌아가며 신상명세를 밝혔다. 한국 사람은 만나면 우선 그 사람의 배경부터 캐고 드는 고

질병이 있는데, 그 위험한 작업을 완선 집사님의 저돌성과 경 집사님의 대범함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무난하

게 마쳤다.

 그렇게 다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열렸던지 경 집사님은 자신의 신앙관을 간증과 함께 풀어 놓았다. 자동차가 대

파되는 사고에도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은 아들이 하나님을 체험했다는 고백과, 신앙의 길을 함께 가는 친구와

의 신비한 영적 교감 등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더불어 자신은 이 땅의 삶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

갈 것이며, 바라는 것은 오직 성령 충만뿐이라는 고백까지 담담하게 했다.

 어떻게 대접해야 새 식구가 우리 순에 마음을 붙일까 하던 걱정은 기우였다. 식탁 중간쯤에 자리 잡고 앉아 조용

한 달변으로 좌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경 집사님을 보며, 우리가 이미 오래된 친구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런

분위기는 저녁식사가 끝나고 후식과 차를 마시는 시간까지도 화기애애하게 이어졌다.

순 예배로 들어가기 직전에 미숙집사(순모)님이 내가 사온 케이크를 들고 나와 경 집사님 부부 앞에 내려놓았다.

“두 분을 환영합니다.”

모두 활짝 웃으며 크게 박수를 쳤다. 경 집사님은 환대해주어서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미숙 집사님이 케이크에

촛불을 켜자고 했다. 생일이 아니어도 케이크에는 촛불을 밝혀야 맛이 난다는 것이다. 누군가 ‘그럼 초는 몇 개를

꼽나요?’ 하자 ‘두 개요.’ 했다. ‘왜 두 개지요?’ 라고 묻자, ‘환영, 두 글자니까 두 개지요.’ 그 말에 모두들 이구동

성으로 ‘아~ 그렇군요,’ 하며 폭소를 터트리고 박수를 쳤다.

그래서 노랑 빨강 초 두 개에 불을 밝혔는데 또 누가 말했다. ‘노래도 불러야 하잖아요?’ ‘물론이지요, 노래도 불

러야지요.’ ‘무슨 노래를 부를까요?’ 그때 경 집사님이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우리 그 노래 부르지

요?’ 했다. 모두 좋다고 찬성했다. 우리는 즐겁게 박수 치며 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

람……- 

 

2013.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