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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짬짜면 파티

201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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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짜면 파티 / 용우

 

 어제 저녁 에나하임힐에 위치한 유 집사님 댁에서 석식 모임이 있었다. 지난여름까지 순장으로 우리 긍휼 2순을

섬겼던 유 집사님이 비장의 무기인 중식요리를 선보인다며 순원들을 초대해서 이루어진 자리이다.

 지난 달 초순, 아침 조식으로 모였던 베이글하우스에서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누던 끝에 누가 뜬금없이 짜장면

얘기를 꺼냈는데, 평소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유 집사님이 아예 ‘짬짜면’으로 모시겠다며 손을 들었다.

지난 정초 모임이나 이번 짬짜면 파티 모두 정식 순모임은 아니다. 겨울방학 동안을 그냥보내기 섭섭하다고 이

심전심 만남의 자리를 원해서 급조한 번개모임이다. 그렇기는 여름방학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여름방학에도 젬

보리와 바랑카의 빅보이와 사우스코스트 플라자에 있는 멕시칸 식당에서 만남을 가졌다. 우리 긍휼 2순은 격주

로 순모임을 갖는데 방학이 되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것을 불문율처럼 지키고 있다.

 유 집사님은 2년 전 교회 주차장에서 열렸던 바자회에 자신의 이름을 딴 [유성반점] 간판을 걸고 짜장면과 탕수

육, 군 만두 등을 팔아 성공적으로 하루 창업을 이룬 전력도 있다. 요리라면 스파게티와 타코는 물론, 스테이크와

곱창전골을 거쳐 함경도의 김치말이 밥까지 전 세계 음식을 모두 꿰고 있는 분이다.

이런 유능한 셰프가 순장으로 있음으로 하여 우리 긍휼 2순은 자연스레 풍성한 음식잔치로 순모임을 활성화시키

는 전통이 자리를 잡았다. 우리 순은 성령 충만했던 초대교회 사람들처럼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

한 마음으로 음식 먹기’ 에 힘쓰는 것이다.

 우리 순은 금요일이나 토요일 중 하루 저녁을 택해 모임을 갖는다. 각 가정의 형편에 따라 의견을 조율해서 모임

날을 정하는데 금요일은 저녁 7시, 토요일은 오후 5시쯤으로 한다. 이렇게 모이면 먼저 식사를 하는데 이구동성

으로 그 날의 음식에 대한 나름의 칭찬과 평을 하게 된다.

 이런 시간에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이도 바로 유 집사님이다. 특히 자신이 만든 요리는 더욱 열정적으로 설

명하고 해설한다. 재료 구입처 정보에서부터 가격대비 품질의 차이와 원산지 정보까지 확실하게 제공한다. 식재

료의 적절한 배합과 조리 순서는 물론, 불의 세기와 그날의 날씨까지 감안하는 요리의 노하우를 설파하는데, 그

럴 때면 여자들은 모두 유 집사님을 둘러싸고 레시피를 적느라 부산하게 질문을 던진다.

 -아니, 무를 먼저 넣고 물이 뽀글뽀글 끓을 때 간장을 부어요, 네네, 그렇지요. 정종도 한 컵 넣으세요, 그럼요,

음식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게 불 조절이라니까요.-

 자신을 둘러싼 여성들과 함께 요리 토론에 몰입해 있는 유 집사님의 진지한 모습이 처음에는 몹시 낯설었는데

이젠 꽤 익숙해졌다. 더구나 이론 못지않게 맛으로 그 실력이 증명되고 보니 그의 여성스러운 모습이 프로의 자

상함으로 비쳐졌다.

‘짬짜면 파티’가 있은 어제 저녁, 퇴근하는 길로 에나하임을 향해 열심히 달려갔지만 이미 식사가 시작된 후였다.

긴 식탁위에 짬뽕과 짜장면, 그리고 탕수육접시가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 열 사람 모두가 각각 짜장면과 짬뽕

그릇을 따로 받아놓고 있었다. 거기에 음료수잔과 김치접시까지 더해, 수 십 개의 그릇이 식탁을 덮고 있었다.

 나는 현재의 순장인 손 집사님 차에 편승해온 아내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는데, 오늘 모임에는 특별한 손님이 참

석해 있었다. 바로 유 집사님 직전에 우리 긍휼 2순의 순모님이었던 송 집사님이다. 2010년 겨울 50대의 늦은 나

이에 소명을 받아 대학에 다니는 딸 하나를 남겨두고 두 내외가 함께 한국의 장신대로 유학을 떠난 박 집사님의

부인이다.

 그러니까 이번에 함께 오지 못한 박 집사님은 떠나기 전 우리 순의 순장님이었다. 아주 잠깐 두세 달 순장을 맡

았다가 떠났는데, 곁에서 보면 너무 진지하다 싶을 정도로 엄정하게 신앙의 길을 걷는 분이었다. 이곳에도 그렇

고 그런 신학교가 많은데, 그런대서 편하게 공부하고 적당히 라이센스를 따면 되련만, 그런 쉬운 길을 마다하고

제대로 공부하겠다며 본국으로 유학의 길을 떠난 분이다. 그런 박 집사님을 떠나보낸 우리는 순모임 때마다 그

분의 만학을 위해 중보기도를 멈추지 않았었다.

 겨울방학의 지루함을 참지 못해 꾸며낸 짬짜면 파티가 때맞춰 돌아온 송 집사님으로 해서 한층 업그레이드 된

환영파티로 변했다. 오랜 미국생활에 길들여졌던 송 집사님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 행복한줄 알라며 한국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밤 한 주일 후면 다시 장신대 대전캠퍼스로 돌아간다는 송 집사님과 밀렸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긍휼 2순

원 열 사람은 유 집사님이 만든 중식을 한껏 즐겼다. 탕수육도, 짜장면도 맛있었지만 닭고기로 국물을 냈다는 짬

뽕국물은 정말 일품이었다.

 

2013.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