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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청심환

201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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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심환– 홍순복

 

  아이쿠, 7시가 넘었네, 남편의 높은 목소리가 나를 놀래 켰다. 새벽 4시 반에 맞춘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가 2분

만 더, 하고 잠깐 눈을 감았는데 30분이 훨씬 지나갔다.40일 기도를 완주하려는데 늦었어, 울상을 하며 나는 침

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야, 오늘이 주일인걸, 하는 그의  말이 나를 안심시켰다. 허지만 성가대 중보기도엔

이미 늦었다.

 몇 발자국을 디디다 나는 주저 앉았다. 배를 탄 것 모양 메스껍고 현기증이 났다. 내가 왜 그러지, 하면서 요즘

독감이 무섭다는 말이 생각났다.

 “ 아무래도 오늘 교회 갈 수 없어요.”

“ 그래 그럼, CGN TV 로 예배 드려.”

 내 입에서 먼저 교회를 빠진다는 것에 남편은 어지간히 아픈가 보다 하며 비상 약이 없나 중얼댔다. 그러더니

아, 청심환이 있지?

 지난 5월쯤엔가 조인숙씨가 내게 준 청심환이었다. 집에 가져다 놓고 그 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다. 먼지가 수북

한 박스를 남편은 책상 선반에서 꺼내왔다. 청심환 하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는 옛말이 있다. 불교신자인 조

인숙씨는 그런 환약종류를 여러 가지 가지고 있었는데 효험이 크다며 비상용으로 쓰라고 내게 주었었다. 남편은

빨간색 박스를 뜯더니 10개 중 한 개를 집었다. 작은 박스 속에 또 다시 작은 투명한 용기가 들었다. 포장을 여니

순 금박으로 싸인 동그란 환제가 나왔다. 금가루를 넣은 술은 봤지만 비싼 금을 약에 바른 건 처음 봤다. 무슨 효

험이 더 있다는 건지 궁금해졌다. 아무튼 나는 처음으로 그것을 입에 넣고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맛이 달큰한게 

괜찮았다.

 그가 안내서를 꺼내 들고 효능과 효과에 대해 읽어주었다. 뇌졸중. 전신불수 수족불수. 언어장애. 혼수. 정신혼

미. 두근거림. 정서 불안 등…….

  나의 증세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을 갖고 마저 씹어 삼켰다.

  지난해 봄 조인숙씨 미국인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평소 그녀를 볼 때마다 남편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

다. 그렇게 남편을 사랑할 수 가 없었다. 심장병으로 투병하는 남편 폴을 위해 헌신적으로 보살핀 덕에 그가 그나

마 오래 산 것 같았다.

  조인숙씨의 초대로 다른 친구와 함께 처음으로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오래되고 조용한 동네의 단층집이었다.

그곳에는 남편과 단란하게 산 흔적이 여기저기 배어있었다. 거실엔 장례식에 놓였던 영정사진이 있었다. 그녀가

직접 화가에게 의뢰해서 그린 유화그림이었다. 파란 셔츠를 입고 멜빵을 멘 그는 살아 있는 듯 털보 얼굴을 활짝

웃고 있었다. 구레나룻 때문인지 헤밍웨이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벌레였던 부부였다. 서재엔 그가

읽었다는 수많은 소설과 문학서적이 온 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바로 옆방은 조인숙씨의 서재였다. 그 방 역시

발을 디딜 틈 없이 책이 쌓여있었다.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엔지니어로 쓰러지기 전까지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

다고 했다.

 집안 곳곳엔 보살집 답게 부적과 불교에 관한 그림들이 걸려있어 나는 조금 신경이 쓰였다. 허지만 그녀가 들려

준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듣고 불편했던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다.

-글쎄, 홍선생님, 우리 남편이 죽기 전에 나를 따라 믿던 부처를 떠나 예수님에게로 갔다우, 어느 날 남편 병실에

갔더니 미국인 신사 한 사람이 급히 나가더라고요.알고 보니 병원 원목이었지요. 병원의 환자들을 방문해서 전

도를 하는 사람이라는 군요. 내가 병실로 들어섰더니 폴이 나를 처다 보며  .여보 나, 다시 하나님을 믿을래 애원

하듯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잠시 내가 생각하다가 흔쾌히 그러라고 했지요. 남편은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었는데

아내를 사랑한다고 종교까지 바꿔버렸었죠. 폴은 원목을 만난 이후로 자기의 종교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내가 화

를 낼까 봐 몇 날을 망설였다고 하데요.나는 그 후 원목이란 사람을 만나 언제든지 우리 남편을 만나 위로해 주십

사 하고 부탁까지 했어요. 그때부터 폴은 편안한 마음이 되었어요.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임종 때 평안한 마음으로

당신의 하나님께 가라고 했어요. 남편은 아내를 두고 가는 것이 안타까운지 오히려 나를 위로 하더라고요. 나는

그가 운명한 후 머리부터 발끝까지 입맞춤을 했어요, 무섭지도 않고 불결하지도 않았어요. –

  나는 조인숙씨에게 그토록 사랑한 남편이 간 곳을 당신도 따라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내 말에 독실한 불

교신자인 조인숙씨는 천당이나 극락이나 다 같은 길이니 다시 만나게 될 거 아니냐며 내 말을 피해갔다.

 그녀는 가끔씩 내게 전화해서 죽는 날 까지 함께 친구로 지내자고 했다. 종교이야기를 떠나서 하는 그녀와의 대

화는 몇 시간도 지루함 없다. 나는 그녀에게 씨에스 루이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루이스가 60대에 한 여인을 만

나 사랑하여 결혼했는데 그 아내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그는 아내와 함께 살았던 3년을 그리워하며 남은

여생을 보냈단다. 당신은 남편과 30년이나 함께 살았으니 아무 부족함 없는 삶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새해의 전도대상자로 그녀의 이름을 적어 냈다. 목사님을 비롯한 교회 리더십들이 함께 기도해준다고 한

다. 나도 그녀의 회심을 묵상하며 생각날 때마다 조인숙이란 이름을 부른다.

  내가 먹은 한 알을 빼고 청심환이 아홉 개 남았다. 금박의 청심환이 나의 몸살을 씻어갔 듯이 조인숙씨도 그녀

남편이 다시 찾은 주님을 만나기 소원해본다. 

 

2013.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