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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오는 세월

201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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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세월 / 용우

 

 올 해 1월 21일은 내가 이 미국 땅에 발을 디딘지 만 30년이 되는 날이다.

성공적인 이민살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3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기에 이런저런 상념에 젖게 된

다. 10년이 되었을 때는 ‘아니, 벌써 십년이나 지나갔단 말이야?’ 하고 문득 놀랐었다. 20년이 되었을 때는 ‘이십

년이라니, 이제 나는 이 미국 땅에서 살아야 할 팔자인가보다!’ 라는, 절대로 감격이 아닌, 어떤 슬픔 비슷한 감정

에 잠시 빠졌었다.

 그런데 30년이 되는 날을 앞두고는 꽤 오래전부터 ‘삼십년’이라는 숫자가 주는 중량감이 의식의 저변을 흐르며,

자꾸 뒤를 돌아보게도 하고 또는 저만치 앞을 바라보게도 했다.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시간은 어제 죽은 사람이 간절히 바라던 시간이다’라는 경구처럼 30년이라는 기간은 어

느 짧은 인생에게는 간절히 소망하고도 남을 만한 세월일 것이다.

 -10년만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한 가지는 이룰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문학 지망생들에게 하는 나의 단골 멘트이

다. 내 입으로 한 그 말로 계산한다면 나는 지금 세 가지, 아니, 다만 한 두 가지쯤이라도 그럴듯한 결과를 가지고

있어야 마땅하다.

 내가 이룬 것은 무엇인가? 아니, 이룬 것은 고사하고 내가 갖은 것이 무엇이나 있는가? 라고 엄격한 잣대로 훑

어본다. 없다, 이거요, 하고 내놓을 만한 게 없다. 겨우 변명처럼 ‘나는 중단 없는 열성으로 문학을 합니다!’ 라고

외쳐보지만 ‘아빠 소설은 돈도 못 벌잖아.’ 라는 그린의 말처럼 나의 글쓰기는 이렇다 할 성취가 없다. '내게는 착

한 아내와 나보다 2인치나 키가 큰 10학년짜리 딸이 있다!’ 라고 항변하지만, 그것마저 특별히 자랑할 만한 것은

되지 못한다.

 이십 칠팔년 전쯤의 일이다. 미국생활 초기, 지인의 소개로 LA 다운타운의 봉제공장에서 일할 때였다. 사이즈텍

이나 라벨 분류, 또는 번들 따위 허드렛일을 하는 나와 달리, 서울에서부터 일류 기술자로 그 봉제공장에서 특별

대우를 받던 J 씨가 있었다. 나 보다 서너 살 연상이어서 친하게 된 후로는 형이라고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그때 4가와 아드모어 부근 아파트에서 하숙집을 뛰쳐나온(언제 기회가 되면 써야할 이야기) 하숙생 동기

두 명과 함께 룸메트를 했고, J형은 올림픽과 후버에서 하숙생활을 하고 있었다.

허드렛일을 하는 나는 소형 중고차나마 끌고 다녔는데, 최고 기술자로 좋은 보수를 받는 J형은 오히려 버스를 타

고 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내 차로 함께 출퇴근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술도 한 잔 같이하

고 작업시간 틈틈이 주차장 귀퉁이에서 함께 끽연하는 담배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한 일 년쯤 지난 어느 날 문득 J형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브랙타임에 밖으로 나오

면 팔짱을 끼고 어슬렁거리기만 했다. 하루에 두 갑 이상 담배를 피워대던 골초였다. 의아해서 물었더니 한참 심

각한 표정으로 뜸을 들인 후, 담배 안 피운지 일주일이나 되었다고 하며 몹시 충격적인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미국에 온지 벌써 삼사 년이나 되었는데 아무것도 한 게 없어. 주급 받아 술이나 마시고 밤새워 카지노에

서 갬블이나 하는 것이 내 모습이야, 그런 내가 싫어졌어. 그래서 금연에 성공하면 미국생활도 성공할 것이요, 실

패하면 귀국한다는 각오로 내 의지를 시험하는 중이야- 라고 했다. 나는 J형이 카지노 출입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말을 들으니 때때로 미심쩍었던 그의 행동이 한 순간에 풀렸다.

 나는 J형의 시험을 충심으로 격려했다. 그런 한편으로 나 자신에 대해서도 그 기준을 대입해보았다.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J형이 카지노에서 겜블하는 시간에 나는 글을 쓰든가 읽든가 하는 차이를 빼고는 그와 다를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이룬 게 없는 것은 고사하고, 신분마저도 둘 다 불법체류자였다. 금연으로 의지를 시험할 이유가 내

게도 충분했다. 나도 그날로 담배를 끊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다. 어느 날 주차장 그늘에 나갔는데 J형이 천연덕스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

라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했다. J형은 담배연기를 후우, 내뿜으며 그냥 피우기로 했어, 라고 짧게 말했다. 너무도

표정이 담담해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캐물을 생각조차 없었다.

 얼마 후 J형은 다른 봉제공장으로 옮겨갔다. 직장이 서로 달라지니 아침저녁으로 같이하던 출퇴근도 그만두게

되었다. 가끔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그마저도 어느 땐가부터 단절되어 버렸다. 뜬구름처럼 J형이 선불을

받아 챙기고 공장을 옮겨버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더니 급기야 J형이 서울로 돌아 가버렸다는 말이 들렸다. 어느 날 밤, 같은 방을 쓰는 하숙생의 차를 빌려

타고나갔다 만취상태로 귀가하며, 좁은 골목에 주차된 차량 여러 대를 추돌했다고 한다. 겁이 난 J형은 차를 버

려둔 채 지인에게로 피신했다가 바로 다음날 그 사람의 주선으로 항공권을 얻어 귀국해버렸다는 것이다.

 자기가 한 말대로 금연에 실패하고 서울로 돌아간 J형은 그 후 하청공장을 차려서 큼직한 밴트럭 외에 그랜저라

는 최고급 승용차를 끌고 다닐 정도로 성공했다는 말이 전해져왔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자기

실험에 실패한 J형은 잘되고, 금연에 성공한 나는 3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단풍 든 나무숲에 두 갈래 길,

한 몸으로 두 길을 다 가볼 수 없기에

난 한참 서운한 마음으로

잔나무 숲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간데까지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똑같이 아름다운 딴 길을

어쩌면 더 나을 성싶었던 그 길을 택했다.

 

이 시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의 일부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여러 갈래의 길 중 더 나을 성싶은 하나를 택해서 걸어간다. 인생은 왕복차표를 발행하지 않기

에 일단 출발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한번 선택한 길은 거칠든 휘었든 불평하지 말고 스스로 피하고 뛰어넘으

며 전진해야한다.

 50세가 되어야 40년 동안의 잘못을 깨닫게 된다는 말처럼, 누구나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지만 그렇다고 반드

시 대가를 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말은 모든 인간의 안타까움이 절절

히 배인 문장이다.

 우연히도 평등과 박애博愛를 외치다 간 마틴루터킹과 내 이민살이의 기념일이 같은 날이다. 사람에 대한 믿음

과 사랑으로 이타利他를 실천하라는 메시지라 생각해본다.

산다는 것은 서서히 태어나는 것이라고 생떽쥐베리는 말했다. 지나간 30년의 아쉬움을 잊고, 서서히 태어날 새

로운 생을 위해 두 팔 활짝, 벌리고 ‘오는 세월’을 맞이하리라.

 

2013.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