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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레베카의 향내

201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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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의 향내/ 홍순복

 

  출근한 아침에 레베카의 책상을 지나치다 주인잃은 대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호리병안의 대나무가 말라가고

있었다. 나는 화병의 물을 가득 채우며 대나무를 무척 좋아했던 빨간 머리 그녀를 떠올렸다.

  수요일 아침이였다. 출근하자 마자 레베카는 채팅을 해왔다. 돈을 빌려달라며 금요일 급료를 받으면 돌려주겠

다는 이야기다. 같은 회사에 오래 근무했지만 돈을 빌려달란 사람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현금이 없어 미안하지

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했다. 허지만 레베카는 나밖에 말할 사람이 없다고 했다. 버스 비도 없고 먹을 것이

없단 말이 걸렸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해 왔다. 그리곤 인터폰으로 불러 살짝 그녀 손에 쥐

어 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은 생기가 돌며 고맙단 말을 수없이 했다.

  금요일이 되자 레베카는 주급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야 했다. 교통편이 없는 그녀는 룸메이트 남자를 불렀다 .그

의 콧수염은 길게 늘어지고 꼭 히피 같은 차림으로 70년대 탱크 같은 캐들락을 몰고 왔다. 요즘 기름값이 금값이

라 그런 차는 누가 그냥 준다 해도 거절할 판인데 어떻게 그런 차를 몰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은행계좌도

없는 모양 이었다. 요금을 내고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니 말이다. 

  레베카는 현금을 찾아 점심도 사고 말 보로 담배 한 곽을 사 들고 왔다. 그리고 내게 돈을 갚았다. 그러나 한 주

도 거르지 않고 돈을 빌리는 그녀가 점점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러던 어느 날 매주 수요일에 빌리던 것을 월요일 아침부터 돈 이야기를 꺼냈다. 금요일에 받은 주급은 어디에

다 쓰고 단돈 20불도 없느냐고 묻자 여기저기 쓰고 보니 없다며 우물거렸다. 그러고 보니 머리는 언제 붉은색 하

이라이트를 했다. 얼마 주고 했냐고 물으니 80불이라고 했다.  직접 약을 사서 하라고 하자 그건 귀찮은 일이라

고 손을 내 저었다. 배꼽 위엔 옛날 남자친구 이름이 태투로 새겨졌다.혼자 살기 힘든 미국생활이지만 이곳 출신

백인인 그녀가 공부도 하고 열심히 산다면 지금보다 나은 직장으로  힘겹게 살지 않아도 될 턴데 하는 아쉬움이

그녀를 볼 때 마다 느껴졌다.

그녀가 처음 회사에 왔을 때 첫인상은 꽤 스마트 해보았다. 어카운팅을 하는 그녀는 일 처리가 깔끔하고 신속하

다고 다른 동료가 귀띔을 했었다. 어카운팅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돈을 규모 있게 쓰는 것 같았는데 그녀만은

열외였다.

 너무 오랫동안 돈을 빌리는 그녀 태도가 싫어졌다. 담배를 끊거나 점심을 만들거나 머리염색을 하지 말던가 내

가 봐도 불필요한 것에 돈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레베카 내 옆을 지날 때면 향긋한 냄새가 났다. 어느 날 내가 이게 무슨 냄새냐? 고 묻자 그녀는 웃으며

향수야. 향수라면 유별나게 알러지가 있어 웬 종일 머리가 아파지는데 잠시라도 그 향수는 괜찮은 것 같았다.

 그러던 레베카는 금요일이 되고 한 주가 지나도 돈을 갚지 않았다. 말도 없이 나를 피해 다니고 있었다. 나도 채

팅으로 왜 갚지 않냐고 독촉을 하자 많이 결석을 해서 지난주는 돈이 없다고 했다. 정말 그녀는 아파 보였다. 진

하게 하던 화장도 없이 생얼로 초췌한 모습으로 출근한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너무 했나 싶어 그래, 아프

지 말라고 말했다.

  점심을 위해 키친에 들르니 레베카가 얼은 베글을 오븐에 녹이고 있었다. 한 주 내내 그걸 먹은 것 같았다. 고개

숙인 그녀 목덜미엔 전에 없던 테투가 보였다. 그녀 뒷모습이 유난히 서늘해 보였다. 나는 그녀가 미안해 할까 봐

얼른 키친에서 나와버렸다.

  일주일 동안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아프다는 거였다. 어디가 얼마나 아프면 하루 벌어 먹는 그녀가 결근까지

하는지 궁금했다. 오랫만에 다시 회사로 나왔다. 그러나 그녀를 해고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픈 것이 아니라 알

코올 중독자란 이유였다. 술이야 집에서 마시면 누가 알겠나 싶지만 월요일 아침이면 술이 덜 깬 정신으로 온 것

을 누군가가 고발하고 만 것이다. 내 코에 맡아진 향긋한 향수가 와인냄새인 것을 나는 전혀 몰랐다. 들은 바로는

알코올 중독이라 한 직장에 오래 머물지 못해 가족들도 외면 하는 마당에 오로지 외할머니만 그녀를 거두었다

했다. 그러나 얼마나 지겨우면 그 늙은 할머니마저 그녀를 내쳤을까 말이다.

 친하게 지내는 노니가 내게 와서 혹시 레베카에게 돈 빌려줬냐고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렇다고 하자 그녀는

나보다 훨씬 많은 액수를 빌려주었다고 했다. 우린 30살 먹은 레베카가 알코올중독에서 치료되면 좋겠단 말을

주고 받았다.

  그 까짓 작은 돈 달라고 말하지 말 것을, 식사라도 한번 같이 할 것을 때늦은 미안함이 마음 한 켠에 일렁였다.

  언젠가 레베카는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며 보기 좋던 대나무 순을 댕강 잘라버리곤 새순이 나기를 기다렸다. 아

직도 그녀가 쓰던 책상위엔 긴 유리병이 놓여있다. 그안엔 대나무가 뿌리를 길게 내린 채 살아있다. 추운 겨울인

데 지금쯤 얼마나 중독에서 치료는 됐는지 그녀가 궁금해진다.

 

2013.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