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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사과 세 알

201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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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 용우

 

 우리는 연말쯤 해서 이웃들에게 집에서 구운 쿠키를 돌린다. 우리 집을 중심으로 골목을 따라가며 ‘치과집’ ‘고

양이선생’ ‘싱글아줌마’ ‘쌍둥이네’ ‘죠지영감’ ‘동네반장’등 대 여섯 집이 그들이다. 아홉 살짜리 딸 하나를 데리고

줄기차게 담배를 피워대며 씩씩하게 살고 있는 ‘동네반장’네를 빼고는 모두 목조다리가 놓인 개울 아래쪽에 살고

있다.

쿠키트레이에 찹쌀떡크기 만한 반죽덩어리를 적당한 간격으로 얹으면 꼭 16 개의 호두쿠키가 올라간다. 전기오

븐에 그런 쿠키트레이가 두 개 들어가니까 한 번에 32 개의 쿠키가 구어 지게 된다. 가끔 그린의 도움을 받을 때

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아내가 하룻저녁에 두 트레이 이상 쿠키를 구워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주 중에는 시간이

마땅치 않아 쿠키 굽기는 대게 주말에 이루어진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격주로 만나는 순모임이나 지인들의 초대에 응하려면 어쩔 수없이 주중에라도 쿠키

를 굽는다. 가끔은 대놓고 쿠키타령을 하는 이들까지 있어서 연말이 되면 우리 집은 항상 쿠키냄새가 서려있다.

우리(아내)는 어차피 ‘쿠키집’으로 소문이 났고, 또 그것 말고는 우리가 들고 갈 마땅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큰 접시만한 플라스틱 용기에 호두쿠키를 가득 넣으면 열 서너 개쯤 들어간다. 그러므로 여섯 집에 쿠키를 다 돌

리려면 월초부터 서둘러야 겨우 해가 가기 전에 마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올해도 성탄 전후로 해서 여섯

집의 쿠키배달을 무사히 마쳤는데, 전부는 아니지만 그들도 답례로 작고 소박한 선물들을 가지고 왔다.

 우리 쿠키가 미처 가기도 전에 일찌감치 ‘동네반장’ 알렌이 딸 케일리를 앞세우고 문을 두드렸다. 두 모녀가 레

잌타호에서 찍은 사진으로 만든 엽서카드를 건네주며 “메리크리스마스!” 했다. 몇 주 전 이혼한 남편과 단지 입구

에서 큰소리로 다투는 모습을 못 본채 지나쳤는데 씻은 듯 태연한 표정이었다.

 금요일부터 비가 온단다, 이번 주는 춥지만 내주부터는 따듯해진다더라, 내일 정오에서 저녁까지 단전이 되니

까 준비해라, 저 모퉁이의 까만 머스탱이 항상 주차를 잘못한다, 어느 집이 이사를 갔는데 두 달째 비어있다, 관

리사무소에서 나뭇가지를 잘라낸다니까 패티오의 파라솔을 접어놓으라는 등, 동네반장 알렌은 눈만 마주치면

무엇이든 정보를 전해주려고 말을 걸어온다.

 우리와 벽 하나 사이로 왼쪽 집에 살고 있는 미스터 죠지는 백발의 아내와 함께 조용히 살아가는 전형적인 백인

영감님이다. 평생을 비행기 정비사로 일해 온 죠지 영감님은 리빙룸으로부터 침실까지, 집안 전체를 모형비행기

와 기념사진들로 항공박물관처럼 꾸며놓고 산다. 죠지영감도 동네반장 알렌만은 못하지만 이런저런 동네소식을

전해주는 일에 게으르지 않은 친절한 이웃이다. 죠지 영감님은 예쁜 카드 속에 10불짜리 인엔아웃카드를 넣어가

지고 찾아와 초인종을 눌렀다.

 죠지 영감네와는 반대로 우리의 오른쪽 벽을 사이한 ‘쌍둥이네’는 아내가 쿠키를 들고 가자 애기 엄마가 마치 물

물 교환하듯 분홍색 물비누를 건네주었단다. 일 년여 전 어린 남매를 두고 살던 북 유럽계의 백인부부가 경제 한

파로 직장을 잃자, 집을 버리고 떠난 이후 비어있었는데 지난 봄 젊은 한국인 부부가 이사를 왔다.

 이사 올 때 이미 만삭이던 새댁이 몇 달 후 출산을 했는데 쌍둥이 여자아이를 낳았다. 1.5세인 젊은 부부는 우리

온누리교회의 EM 예배에 출석하는데, 교회에서 만나든가 동네에서 만날 때면 인사처럼 쌍둥이의 이름을 물어본

다. 허지만 누가 언니이고 누가 동생인지 아무리 가르쳐줘도 모르기는 여전하다.

 어쨌든 우리 오른쪽은 집터가 아이들을 위한 곳인지 전에도 둘, 이번 역시 쌍둥이 애기들이 사는 집이 됐다. 나

는 애기들 울음소리가 좋다. 물론 울음소리보다는 웃음소리가 좋겠지만, 태어난 지 서너 달밖에 안된 아기들의

유일한 표현방법이란 오직 울음이기에 그 소리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제 머잖아 까르르, 하는 쌍둥이의 웃음소

리가 들려온다면 그 때는 더욱 즐겁고 좋을 것이다.

 우리 교회 얘기가 나왔는데, 우리 골목에 그런 집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죠지 영감네 쪽으로 서너 집 건너에 살고

있는 ‘치과집’이 그렇다. 아내와 동갑인 그녀는 직장이 치과병원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지난 봄 우리 온누리

교회에서 어머니학교를 개설했을 때 아내가 직전 수료자로서 간증을 했는데, 거기에서 ‘치과 집’을 만났다는 것

이다.

 한창 말썽을 부리는 틴에이저 딸 문제로 도움을 받을까 하여 어머니학교를 나왔다는 그녀와 그 만남을 계기로

아내는 더욱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그 후로 아내가 그녀 이름이 헬렌이라고 정정해주었지만, 나는 아직도 ‘치과

집’으로 부른다. ‘치과집’에서는 콜게이트 치약 4개를 선물로 주며, 치약은 콜게이트가 좋고, 칫솔은 크레스트가

부드럽다는 정보를 주었다.

‘싱글아줌마’는 죠지 영감네 앞쪽에 사는 60대의 한국 여인이다. 남편과 자식을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잃고, 혼자

살며 우체국에 다닌다는 여인이다. 아내만 알고 나는 모르는 유일한 사람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인지 언

제나 고개를 숙이고 다니며 말이 없다고 했다. 더구나 직장이 야간 근무라서 사람들과 접촉이 많지 않다고 했다.

‘싱글아줌마’는 아내에게 다진 고기와 완두콩으로 만든 머핀 세 개를 주었다고 했다.

지난 토요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나갔는데 뒤따라 나온 미숙 집사님이 자기 차로 오라고 했다. 아내

와 내가 그리로 가자 손잡이 달린 봉투 하나를 주었다. ‘뭐예요?’ 하고 아내가 묻자, 미숙 집사님은 ‘별거 아니에

요.’ 했다. 봉투를 받아 들었는데 제법 무거웠다.

집으로 돌아와 내용물을 풀어보니 주먹만 한 사과 세 개가 들어 있었다. 크고 먹음직한 사과 세 알, 그것을 보며

나는 마음이 한없이 풍성하고 즐거워졌다. “우리 세 식구 하나씩 먹으라고 순모님이 사과 세 개를 넣으셨나봐?”

내 말에 아내도 “그렇지, 우리 가족을 생각하며 한 알 한 알, 그렇게 세 알을 넣은 것 아니겠어.” 라며 맞장구를 쳤

다.

10달러 인엔아웃 카드,

분홍색 물비누 하나,

콜게이트 치약 네 개,

완두콩머핀 세 개,

그리고……. 사과 세 알.

이처럼 소박하고 정 넘치는 이웃에 둘러싸인 우리 가정은 아주 즐겁고 기쁘게 또 한 해를 살아낼 것이다.

 

2013.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