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건너 오두막-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2014.01.26상세 본문
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이 용우
올해도 어김없이 ‘40일 특별새벽기도’를 한다고 공고가 났다. 예상은 했지만, 아니 으레 그럴 것이려니 했지만 막
상 목사님의 ‘특새’ 발표를 듣고 나니, -아, 또 고난의 시기가 돌아왔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나는 아내에
게 물었다.
“여보, 다음 주부터 특새 시작한다는데 어떻게 할 거야?”
내 물음에 아내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올해는 스킵 합시다, 지난 이 년 연속으로 했으니까 한번쯤 쉬어도 되잖아.”
아내의 대답에 나는 헛헛, 웃음을 쏟았다. 매몰차게 “뭘 어떻게 해, 가야지!” 했더라면 마음이 무거웠을 탠데, 그
렇게 한 발 물러서니 한결 기분이 밝아졌다.
“그럼, 한 번 쉬어도 되지, 아주 훌륭한 결정이야. 여보, 우리 저녁 먹고 차 한잔하러 나갈까? 특새 불참기념으
로.”
내 말에 아내는 단번에 표정을 바꾸며 쌩, 하니 바람을 날렸다.
“무슨 그 따위 기념이 있어, 지금 빨래거리가 산더미같이 쌓였고, 내일 점심도시락 준비도 해야 한다고, 집에 차
가 없어서 밖에 나가남, 그럴 시간이 있으면 특새를 가겠네.”
“어, 그 말 잘했어, 그럼 특새 갈까?”
“당신 뭐야? 헷갈리게 하지 말고 분명히 해, 가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가장이 확실하게 결정을 내려야지.”
“음, 나도 사실 어째야 좋을지 고민이야. 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라고.”
지난해도 그랬지만 ‘특새’를 가기로 결정하면 그 때부터 우리 집에는 비상이 걸린다. 새벽기도가 오전 5시 20분
에 시작되니까 4시 30분에 알람을 맞춘다. 그렇게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는 적어도 전날 11시 전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아침 6시쯤에 기상하던 것을 1시간 30분이나 일찍 일어나게 되니 처음 며칠 동안은 리듬이 깨져서
하루 종일 헤매게 된다.
나를 비롯해 아내와 그린 모두 점심도시락을 싸가기 때문에 그 준비를 저녁에 해두어야 하니 직장에서 돌아온
아내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빨래나 장보기 등 예사롭게 주중에 하던 일들도 전부 주말로 미뤄야 한다.
새벽기도를 가는 길도 제각각 차를 몰고 나가야 한다. 새벽기도를 마치면 나는 곧바로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
다. 아내는 집으로 와서 그린에게 아침을 먹여 학교에 데려다 주고 출근해야 하니 바쁘기는 나보다 더하다. 나 역
시 아침으로 아내가 끓여주는 오트밀을 먹고 출근하는데 ‘특새’ 기간에는 그런 호사를 포기하고 회사에서 컵라면
으로 때워야 한다.
연말연시에는 각종 모임이 몰려있는 시기이다. 아내와 함께, 또는 나 혼자 참석해야 할 망년회와 신년하례식이
네댓 개쯤 된다. ‘나 새벽기도 때문에 참석 못해.’ 이렇게 말했다가는 얼간이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그리고 꼭 참
석하지 않으면 안될 모임도 있다. 여기에 생각지 않은 경조사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결국 모든 일상을 예정대로 수행하며 새벽기도를 다녀야 하니 연말연시는 진정 고난의 시기가 아닐 수 없다. 언
젠가 친구 몇이 모인 자리에서 우연히 연말연시에 행해지는 한국교회의 ‘특별새벽기도’에 대한 얘기가 화제에 올
랐다.
-왜 ‘특별새벽기도’를 꼭 춥고 바쁜 연말연시에 해야 하는가, 날씨 좋은 춘삼월에 하든지, 시원한 추수감사절 근
방에 하면 안 되는 것인가, 꼭 좁고 험한 길로 가야 은혜를 받나, 그런 논리라면 난방 된 교회 안에서 하지 말고
차가운 주차장바닥에 앉아 하면 더 효과적이지 않나.-
물론 그렇게 말한 친구는 믿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서너 명의 크리스천들도 딱히 반박할 말이 없
는지 모두 허허 웃기만 했다.
-이 친구야, 연말연시는 한 해의 특별한 시간이잖아,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자는
의미로 특새를 하는 것이지, 일부러 추운 계절을 택한 게 아니라고. 연말연시가 봄이나 가을이었다면 특새도 마
땅히 그 때에 했겠지. 일부러 추운 겨울을 택한 게 아니라니까.-
내가 그렇게 설명했지만 술을 한잔 걸친 그 친구는 ‘새해나 묵은해나 다를 게 뭐 있어, 그날이 그날이지. 크리스
천들이 괜스레 특별이라는 말을 붙여놓고 유난을 떠는 거지.’ 라며 심통을 부렸다. 그 친구는 아직도 나 홀로 신
神을 섬기고 있는데, 이제 슬슬 힘이 떨어지는지 예전처럼 어깃장을 부리지는 않는다.
“여보, 우리 특세 첫 주는 참석하기로 하자.”
저녁상을 물리고 아내가 끓여주는 집 차를 마시며 그렇게 말했다.
“첫 주만 가자고? 그 다음은 어쩔 건데?”
“음, 그 다음엔… 그 때가서 또 결정하지 뭐. 그러니까 한 주 단위로 참석여부를 결정하는 거야, 부담되지 않게.”
그렇게 말하며 내 아이디어 괜찮지, 하는 얼굴로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한 주 단위로 결정한다? 그다지 훌륭한 생각은 아닌 듯 한데… 오케이, 좋아 그렇게 하자고. 당신 말처럼 부담이
없어서 좋네.”
우리는 그렇게 현명한 결정을 내리고 그 밤 편안한 잠자리에 들었다.
2012.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