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재의 톡톡QT-풍선타고
2014.01.29상세 본문
1976년.
시어머니는 미국에서 결혼한 톡이에게 편지를 보내셨다.
(큰 며느리인 너와의 대화를 위해 교회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 따라 어머니는 동네에 있는 교회를 성실하게 다니셨다.
1988년.
어머니는 톡이의 손을 잡고 서빙고 온누리교회로 나오기 시작했다.
열려 있는 모든 성경 공부와 JDS, 아웃리치 그리고 실버 성가대에 이르기까지
어머니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모든 시간 돈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12/10(화) 어머니 패혈증으로 중환자실 입원.
산소 호흡과 신장 투석을 거쳐 다시 일반 병실로 돌아옴.
담당 의사의 놀람 속에 90세의 어머니는 패혈증을 딛고 그렇게 일어났지만..
1/19(일) 다시 중환자실 입원.
1950년 6. 25 전쟁이 터지면서 26살 어머니의 모진 세월이 시작되었다.
안동 김씨. 무남독녀 외동딸. 사랑 독차지. 이런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정신대에 끌려가기 싫어 결혼했던 26살 새 댁의 품에는 5살, 2살짜리 두 아들만 남았다.
졸지에 행방불명이 된 남편과 부모님.. 하지만 울 수 있는 여유조차 없었단다.
하나님은
그 모진 풍파와 거친 파도 속에서도 어머니를 여고 교장 선생님으로 키우셨고
하나님은
이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는 하늘나라로 데려 가셨다.
1/20(월) 새벽 3시 30분.
톡이: 엄마~ 그렇게도 좋아하던 하용조 목사님 계신 천국에 가 있어 응?
하목사님이랑 나 기다려 응? 나도 곧 갈게..
(어머닌 두 눈을 동그랗게 뜨셨다.)
톡이: 엄마~ 엄만 A뿔 인생 살았어.
엄마~ 고마워! 건재(톡이 짝꿍)를 A뿔로 키워줘서 고마워!
(어머니의 왼쪽 눈에 눈물이 고였다.)
지난여름.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와 함께 작은 어머니네로 갔었다.
친척들을 보자 흥분한 어머니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오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야! 모두들 알지?”
1/23(목) 믿음이 있어야 하는 이유(히 11:1-7)
4->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고 이로써 그는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믿음으로 여전히 말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도.. 믿음으로 여전히 말하고 있습니다.)
1/21(월) 위로예배: 이상준
1/22(화) 입관예배: 반태효 위로예배: 이재훈
1/23(수) 천국환송예배: 박종길 하관예배: 박태영
문막 온누리 동산.
하이얀 눈 속, 구름 한 점없이 파아란 하늘로 날아간 엄마..
톡이도 그 파아란 하늘 속으로 날아갔다. 풍선 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