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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새벽기도 의상

201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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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 의상 / 이 용우

 

 본당 안으로 들어서며 습관처럼 가운데 줄 중간좌석을 바라보았다. 카라와 소매에 흰줄이 쳐진 청회색스웨터가

오늘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아내를 툭 치며 그쪽을 가리켰다. 아내는 벌써 봤다는 표정으로 호,

웃었다.

 K집사님은 항상 그 흰줄 친 스웨터를 입고 새벽기도에 나온다. 소매 선을 따라 흰줄이 박음질되어서 얼핏 보면

같은 색의 긴팔 옷에 조끼를 덧입은 것 같은 효과를 주는 옷이다.

또 한 사람이 있다. 역시 본당 가운데 줄의 앞쪽에 자리하는 J 집사님이다. 비교적 얇다는 느낌을 주는 K 집사님

의 옷에 비해 이 분은 연말새벽기도에 어울리는, 올려 세운 카라 깃이 귀밑까지 덮는 방한복을 입고 있다. 그런데

J 집사님의 잠바도 카라 끝과 어깨선을 따라 선명하게 흰 줄이 쳐진 옷이다. 마치 새벽기도 잘나오는 사람은 줄

친 옷을 입는다는 표식 같았다.

 내가 늘 뒷자리에서 바라보니까 기억을 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교우의 참석은 예사로 보면서 그

두 사람의 출석여부만은 꼭 확인하게 되는 것이 어쩌면 선명하게 줄쳐진 의상효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내 기억에 두 집사님은 꽤 오랫동안(적어도 2년 이상) 그렇게 같은 복장으로 새벽예배에 나오고 있다. 2월부터

11월까지의 평월에도 그 분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새벽기도를 나오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는 연말 이외에는 새

벽기도를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다만 한 여름에도 그 옷을 입고 새벽기도를 나오지는 않겠지, 하고

짐작할 뿐이다.

 나에게도 새벽기도용 재킷이 있다. 따듯한 홈스펀 내장제가 붙은 검은색 잠바이다. 엔간한 추위쯤은 끄떡없이

버텨낼 만큼 두터워서 가끔 난방이 잘된 실내에서는 이마에 땀이 배어나기도 할 만큼 방한이 잘되는 옷이다. 그

런데 이번 겨울은 날씨가 춥지 않다하여 우정 얇은 잠바 하나를 새로 준비 했다.

새벽기도 가겠다고 잠바까지 새것으로 사서 준비를 마쳤는데 문제가 생겼다. 연말이면 으레 비철로 접어들던 회

사가 이번 겨울엔 어쩐 일인지 주문이 밀려들었다. 11월의 주문량만도 명년 2월까지 오버타임을 해야 할 만큼 일

감이 밀려든 것이다.

 모든 비즈니스가 다 그렇겠지만 우리 회사는 할리우드 영화사와 거래하는 일이어서 예측하지 못할 일이 수시로

발생한다. 계약한 날짜에 납품을 못해서 문제가 아니라, 자기들이 필요하다면 계약일 이전에라도 만들어 내라고

하는 것이 문제이다. 계약대로 하자고 하면 되겠지만, 다음 일을 기약할 수 없는 하청업체로서는 어떻게 하든 원

청업자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 이렇게 살얼음판을 걷는 직장에 3~4개월 작업량이 밀렸으니 긴장하

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평소에는 못나가는 새벽예배를 40일 특새 때나 나가보겠다고 작정을 한 터라 시작하는 첫날 눈 딱 감고

참석했다. 첫날이라서 당연히 그랬겠지만 설교가 끝났을 때는 7시가 거의 다되어 있었다. 출근길을 바삐 서둘렀

지만 회사에 도착한 시간은 9시가 넘었다. 작업지시를 받지 못한 직원 두 사람이 내가 오기를 기다리며 일손을

놓고 있었다.

그날 일하는 내내 ‘새벽기도 참석 전면 수정안’을 마련하느라 하루 종일 머리를 굴렸다. 저녁 무렵이 되어 ‘이번

새벽기도는 참석 못함’을 결론으로 내렸다. 다만 토요일은 참석 한다,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 뒤로 두어 주간을 토요일에만 새벽기도를 나갔다. 그런데 왠지 시원스럽지 않았다. 혼자서도 열심히 새벽기

도를 나가는 아내를 보는 마음이 불편했다. 새벽기도 십일조 한다고 큰소리 쳤는데 실언했다는 자책감이 밀려왔

다. 그렇게 끙끙 앓다가 문득 ‘절반만 참석하지 뭐,’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새벽기도에 참석했다가 6시 전에 직장

으로 출근한다는 궁리이다. 아주 훌륭한 방법은 아니지만 그런 정도로 불편한 마음과 타협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지난 40일 새벽기도를 마쳤다. 1월 첫 주부터 끝 날까지 후반부는 완주한 것이다. 항상 설교 중간에

나왔으니까 정확하게 계산하면 절반의 반이라고 해야 맞겠다.

아무튼 그렇게 특새를 마치며 나는 엉뚱한 생각 하나를 했다. 나도 어깨선에 흰줄이 들어간 옷을 하나 장만하면

어떨까, 성실한 새벽기도꾼들을 따라가려면 우선 복장부터 비슷하게 차려입어야 하잖나. 옷이 날개라고 했다.

흰줄이 선명한 재킷을 입고 그들 사이에 비비고 앉아, ‘나도 새벽기도 용사요.’ 하면 그 말대로 이루어질 수도 있

다. 새벽기도 마치고 아내가 좋아하는 파네라에서 느긋하게 커피 마실 형편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