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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뉴잡/ 홍순복

201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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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잡/ 홍순복

 

 텅 빈주차장을 지날 때 마다 불안한 마음이 든다. 그 많던 차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새벽 어둠을 뚫고 그들의

일터로 하나둘 가버린 거다. 덩그러니 남겨진 내 차를 바라보니 괜스레 우울해진다. 24년을 넘게 한 직장에서 일

했으니 쉴 자격이 내겐 있어, 라고 자위하지만 그때뿐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출근하던 일을 불평하며 쉬고 싶

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막상 일을 놓고는 하릴없이 하루하루를 보낸 것이 두 달이 되어간다.

 쓰레기 봉지를 쓰레기통에 던지려다 움칫 놀라는 한 노인과 마주쳤다. 하마터면 그를 맞출 뻔했다. 그의 손에는

쇠꼬챙이가 다른 손엔 플라스틱 백이 들려져 있었다. 그 안엔 빈병들이 오글대고 있었다. 밀짚모자를 깊이 눌러

써 그의 얼굴은 볼 수 없지만 70대쯤 되어 보이는 아시아계 노인 같았다.

 까마귀 한 마리가 칼스주니어 봉투를 석공이 돌을 깍듯 연신 방아를 찧고 있다. 나는 서둘러 강아지 목줄을 당기

며 공원으로 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집에 있는 것도 적응이 되고 그런대로 지낼 만하다. 오히려 정해진 시간에 어딜 가야 한다는 것

이 부담이 되어갔다.

 늘 피곤함에 젖어 퇴근하는 남편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생각 끝에 그의 몸을 마사지하기로 했다. 남편은

샤워를 한 후 침대위에서 간단한 팔다리운동을 한다. 부족한    운동량인 그의 몸에 자극을 주면 혈액순환에 좋을

것 같았다.

 누워있는 그의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다리를 주무르며 자랐기에 그 일엔 이력이 났

다. 그것도 한참 하다 보니 재미도 없고 힘만 들었다.

 이번엔 몸을 두드리기로 했다. 양팔, 다리 그리고 배 부분까지 골고루 두드렸다. 그의 몸은 악기 같았다. 배를 두

드리면 ‘펑펑 미’ 정도의 음이 나고 다리부분은 ‘퍽퍽 라’ 음정도의 낮은 소리를 냈다. 확연히 부분별로 음이 틀렸

다. 배는 북소리를 냈다. 늦은 식사를 한 날은 꽉 채어져 둔탁한 소리를 낸다.

 이번에는 몸을 돌려 엎드리게 했다. 등을 두드린다. 내 손바닥이 아프도록 그의 살과 마주친다. 마찰음이 났다.

그는 새로운 기법이라며 좋아했다. 나는 신바람이 나서 몸을 흔들어 춤을 추듯 장단을 맞추었다. 상모를 쓴 사당

패처럼 머리를 흔들며 두드렸다. 맨살에 내 손바닥이 닿자 그의 몸은 붉게 피돌기가 시작됐다.

옆에 있던 구찌 녀석이 무슨 짓인가 하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엎어진 그는 내게 항복하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

았다. 장난기가 돌았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를 찾아 두드렸다. 신기하게 대충 음이 들어맞았다. 배와는

다르게 눈을 감고 맘대로 두드려도 괜찮았다.

  아아, 살살해 그 다리는 , 라는 그의 비명소리에 눈을 떴다. 아픈 다리도 세게 쳤던 것이다. 잠옷을 걷어 올린 후

종아리를 주먹으로 쳤다. 가끔씩 다리에 쥐가 나서 새벽녘에 잠을 깨우기 때문이다. 발바닥도 세게 쳤다. 머리도

미용사처럼 손가락을 사용해 누르고 튕겨 주었다.

 그는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입가에 웃음을 띠고 지그시 눈을 감고 마사지를 즐겼다. 빈말이라도 그만 하라고 하

지 않는다. 종당엔 코까지 골았다. 나는 신명이 나서 두 팔에 장단을 실었다. 훨씬 힘이 덜 들었다. 그러나 한참

하다 보니 침대가 낮아서 허리가 아파왔다. 의자를 끌어다 앉아서하니 침대 밑에 다리를 넣을 수 없어 그것도 얼

마 할 수 없었다.

 남편은 매일 마사지 받는 것을 이젠 의례 해주려니 하고 바랐다. 사실 오랜 타이핑 생활로 오른쪽 어깨가 정상이

아니다. 그래도 남편이 좋아하니 일없는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나도 그렇게나마 수고하는 남편을 위

로하는 것이 새로운 직업이라 생각하고 즐기기로 했다. 내 마사지를 받으며 깊은 잠이 든 남편을 보며 어느새 어

깨 아프던 것도 사라졌다. 새로 잡은 뉴잡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하며 혼자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