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메뉴바로가기
     

개울건너 오두막-너무 웃었나?

2014.03.19

상세 본문

너무 웃었나? / 용우

 

 지난 토요일이었다. 새벽예배를 가느라 잼보리 길을 달리고 있었다. 바랑카를 지나며 우리 앞에 주행하는 은회

색 제네시스를 보았다. 나는 아내에게 저 차 권 목사님 아닐까, 라고 말했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지도

모르지, 했다. 목사님의 차량번호판을 외워둔 것도 아니어서 확신 할 수는 없지만, 색깔이나 진행방향으로 미루

어 그런 짐작을 해보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 교회에 한국 차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내가 쏘나타를 구입하던 두 해 전만해도 흔치않던 현대

와 기아 차가 작년 들며 부쩍 늘었다. 차종별로는 쏘나타가 단연 압도적으로 많고 옵티마와 제네시스, 에쿠스를

비롯해 유틸리티 차량도 제법 들고 나는 것을 보았다.

 주일예배 4부까지의 차량을 다 헤아려본 것도 아니고, 일부러 눈여겨본 것도 아니지만 권 목사님이 타는 제네시

스도 심심찮게 눈에 뜨이는 차종이다. 우리 순의 직전 순장이었던 유 집사님도 가격에 비해 성능이 우수한 자동

차라고 자랑하며 타고 다니는 차다.

 잼보리 길 남쪽으로 일차 선을 따라 달리던 차들이 백맨을 거쳐 엘톤에비뉴를 넘어섰다. 앞에 가는 제네시스가

이제 곧 나타날 멕가우에서 좌회전 길로 들어서기만 하면 십중팔구 권 목사님의 차가 분명해 지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앞 차의 진행방향을 지켜보았다. 맥가우 싸인판과 함께 좌회전 라인이 나

타났다. 앞에 가던 제네시스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좌회전 길로 날렵하게 꺾어 들었다. 우리는 합창하듯 동시

에 탄성을 터뜨렸다.

“권 목사님 아니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우하하, 웃었다. 똑같이 그런 결론을 내리고 한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 재미있어서 였다.

 어찌 보면 우리의 판단은 편견일 수도 있다. 좌회전 시그널을 주지 않았다고 해서 목사님의 차가 아니라고 단정

하는 것은 옳은 생각이 아니겠다. 좌회전 라인에 들어선 자체만으로 그 자동차는 왼쪽회전을 하겠다는 의사표시

를 충분히 나타낸 것이다. 좌회전 길로 들어선 차는 신호가 바뀌면 왼쪽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둘

의 생각은 예외 없이 목사님 차가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 우리 교회로 가는 차는 맞지만 목사님은 아니라는 생각

이었다. 목사님이라고 해서 반드시 회전 깜빡이를 켜야 한다는 법은 없는 대도 말이다.

 그런데 좌회전을 한 그 차가 곧바로 나타난 교회주차장의 첫 번째 진입로에서 우회전 깜빡이를 주고 들어갔다.

나는 무릎을 치며 웃었다.

“아하, 그렇지, 완전히 구별된 좌회전 길에서는 신호등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니까 시그널이 필요 없지만, 이런 곳

에서는 깜빡이를 켜서 분명한 의사표시를 하는 게 맞네.” 내 말에 아내도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며 따라 웃었다.

 진입로를 들어선 앞 차는 주차장의 오른쪽을 돌아 중간지점쯤에 주차를 했다. 우리는 조금 앞쪽의 장애인 자리

로 들어갔다. 생명의 삶과 필기도구를 챙겨들며 얼른 돌아보았다. 주차를 마친 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바로 권 목

사님이었다. 즐거웠다. 나는 마구 웃으며 아내의 옆구리를 찔렀다.

 “여보, 저기 좀 봐, 권 목사님이야.”

 “어머, 정말 권 목사님이네.”

 우리는 뱃속에 찬 웃음보를 빼내기 위해 우하하, 호호호, 빠르게 웃어젖히고는 시침 뚝 따고 차문을 나섰다. 권

목사님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나도 마주 걸어가며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했다. 가까이 다

가온 권 목사님이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집사님, 즐겁게 지내시지요?”

 새벽인사를 즐겁게 지내느냐고 하는 것을 보니 내 딴에는 웃음을 감춘다고 했지만 목사님 눈에는 멀쩡하게 보

였던 모양이다. 나는, 목사님 덕분에 즐겁습니다, 라는 말을 꿀꺽 삼키고 권 목사님이 내민 손을 얼른 잡았다.

 “그럼요, 저희들 항상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를 지나 아내와도 인사를 나눈 권 목사님은 당신의 사무실로 걸어가고, 우리는 현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곁으

로 바짝 붙어선 아내가 듣는 사람도 없는데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말했다.

여보, 우리가 너무 웃었나봐.

아내와 나는 스스로의 생각이 지독한 편견이었다는 자각으로 그렇게 웃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