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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 – 한 번 오면 좋은데

201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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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오면 좋은데/홍순복

 

 오랜만에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선생님은 왜 그렇게 뜸했냐고 하며 반가워했다. 내 전화를 몹시 기다린 듯 했

다.

 전화기 속에서 들리는 소리는 팔십 어른답지 않은 젊은 음성이다. 선생님과 통화할 때엔 세대 차이를 모르고 동

년배처럼 느껴진다.

 뭣하며 소일하느냐고 물으면 선생님은 언제나 똑같은 대답이다.

-나, 혼자 잘 놀아. 여긴 백인 지역이라 우리 집 근처엔 한국 사람이 없어. 시장에라도 가려면 버스를 타지. 가는

길에 맥도날에 들러 커피도 한잔 하지. 여기 교회친구들 만나면 맨 배추 값이 얼마고 꼭 여자들 같은 이야기나 하

고 재미없어. 혼자 노는 것이 편해. 원래 젊어서부터 혼자 책하고 놀았거든. 시간가는 줄 몰랐지. 이제는 나이가

많아 책읽긴 쉽지 않고 겨우 신문이나 보는 거지. 그러고 시 한편 구상하며 쓰고 있어. 집사람이 고생이야. 70이

넘어서도 아직 아들네 돕는다고 일식집에서 음식 만들고 있으니. 내가 청소와 빨래하지. 밥도 잘해. 그래서 자주

시장에 가는 거야. 정말 미안하지. 다리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몸 둘 바를 몰라. 내가 그때 학교선생을 그만두고

입시학원만 하지 안했다면 이 고생을 시키지 않을 텐데. 아니, 미국에 오지 않았지. 남들은 다 문 닫는데 우리가

게는 그런대로 잘돼. 가족끼리 하니까 살아남는 거 같아. 내가 사는 곳은 뉴저지이지만 식당은 뉴욕 맨해튼 브로

드웨이지. 며느리가 목사 딸인데 일본에서 자라서 일어를 잘해 덕을 보는 것 같아. 한번 오면 식당에 데리고 갈

텐데. 맛이 좋아. 집사람이 원래 솜씨가 좋거든.-

 – 네, 꼭 한번 가봐야죠. 아이가 내년에 대학을 가면 시간이 있을 것 같아요. –

 한번 방문한다는 것이 어느새 5년이 지났다. 선생님은 내가 전화할 때마다 젊음의 기를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

다고 한다. 늘 사는 모양이 글감이니 매일 매일 글 쓰라고 당부한다.

 _ 옛날 P여고 도서관의 책은 모조리 다 읽었지. 더 읽을 것이 없어 다른 학교에 가서도 빌려봤지. 순복군은 아직

젊었으니 많이 읽고 써야해. 그래야 좋은 글이 나오지.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해. 산에 나무들을 보면 자식들 같

아. 언젠가 이 땅을 떠날 텐데 저 나무들처럼 자식들을 심겨놓고 가는 것 같아.―

선생님은 나를 순복군이라고 부른다. 사실 여고 때에 뵙고는 줄 곳 편지와 전화로만 연락한다. 남편과 나를 연결

해 준 선생님이다. 늘 잘 살란 말을 잊지 않는다. 지금껏 아무 탈 없이 살고 있는 우리를 보면 보람이 되고 기쁘다

고 하신다.

 -지난번 보내준 책, 용돈 그리고 쿠키 고마워. 조금씩 아껴서 먹지. 보내는 삯이 더 비쌀 텐데. 다음부턴 보내지

마. 글도 잘 읽었어. 소감을 써 보내려고 아직 편지 답장을 못했네.―

 – 네, 사실 보내는 삯이 더 비싸요. 그래도 제가 만든 거니까 한번 커피와 드시라고 보내봤어요.-

선생님은 한 참 옛이야기를 하다가 최근에 가장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며 우울해 했다. 나는 기분전환으로

선생님께 엉뚱한 질문을 했다.

 – 선생님, 전에 제게 첫사랑이란 시 보내신 거 기억해요. 좋아 하셨던 사람 이야기죠?-

그렇게 묻자 선생님의 목소리는 금방 밝아졌다. 웃음 까지 머금은 것 같다.

 – 있었지, 그런데 그 사람 얼마나 냉정한지 말한 번 붙여보지 못하고 말았어. 짝사랑 이였지. 같은 대학 4년을 함

께 다녔지. 그 친구는 가정과에 나는 사대이니 함께 공부할 기회는 없었지. 졸업 후 그 친구는 서울로 나는 인천

으로 선생발령을 받아 떠났기에 소식을 못 들었어. 그런데 이민 오기 전 입시학원 할 때 그 사람 친구가 우리 학

원 강사로 왔지. 그때 그 친구 소식을 들었어. 남편을 일찍 잃었다는 군. 한번쯤 만나 볼 수도 있었지만 그만 두었

지. 잘한 것 같아. 내 기억을 바꾸기 싫더군.-

 나는 궁금해서 사모님에 관해 물었다. 선생님은 작은 동네가 시끄럽게 소문난 연애를 했단다. 사모님이 대학 3

학년, 선생님은 30세에 만나 결혼해 사모님은 졸업 못한 것에 아쉬움을 많다고 한다.

 -이제 내가 얼마나 더 살겠어. 친구들 하나둘 떠나는 걸보면 그래. 부모 잘 만나 편하게 하고 싶은 것 하며 살았

지. 걱정은 우리 딸 하나가 혼자 사는 것이 마음에 걸려. 우두커니 서있을 부실한 나무 같아 안쓰럽지.―

 통화를 끝낼 때면 언제나 선생님은 한번 올 수 있으면 와, 한다. 뭔가를 자꾸 미루다보면 후회 할 일이 생길 것

같다. 올 해 안에 선생님을 뵈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