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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큰 산이 되어줘

201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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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산이 되어줘/ 홍순복

 

 토요일 아침 파내라 빵집에 앉았다. 아는 이들이 속속 들어오다 내게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조금 늦게 들어온 친구는 늦잠을

잤어, 하며 앉는다. 이민 후 만난 유일한 친구다. 우리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에 친구는 두 딸들을 맡기고 볼일을 봤었다. 집안

끼리도 친 형제처럼 지내는 사이다. 나이는 나보다 세 살 위이라 그녀를 언니라고 부른다. 그래서 서로의 고충을 알고 나누며

살아온 세월이 꽤나 길다.

 보리빵위에 납작보리가 얹혀있고 그 속엔 달걀흰자, 시금치와 아보카도를 넣어 만든 새 메뉴사진이 먹음직스러웠다. 우린 그

두 개를 주문했다. 친구는 속이 아파 커피 반잔에 뜨거운 물을 섞었다.

 그녀는 직원이 아침을 테이블에 갖다 놓자 내게 식기도를 부탁했다. 기도를 마친 내게 그녀는 반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 꼭 홍권사님이 기도하는 것 같아. 너무 똑같아. 대 물림 했나봐. 정말 좋다. 권사님이 살아계실 때엔 언제나 내 뒤에 큰 산이

되어 계셨다고 믿었어. 바람막이처럼 춥지 않고 든든했어. 우릴 위해 특히 딸들을 위해 기도해주심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힘들 때 친정엄마에게 하듯 전화해서 죽을 것 같아요, 하며 펑펑 울기도 했어. 그러면 전화통에 대고 기도해주셨어. 그러면 서

러움도 분노도 다 사라져. 홍권사님의 기도와 위로의 말이 내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셨는지 정말 감사해. 덕분에 아이들

도 신앙으로 잘 컸어. 그런데 이젠 그 큰 산이 없다는 것이 왜 그렇게 허전하고 슬픈지 몰라.―

 우리 엄마를 큰 산이라고 표현하는 그녀 눈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그녀 때문에 나도 울컥 엄마 생각이 났다. 그녀

의 말을 계속 듣고 있었다.

 – 아이들이 결혼 할 나이가 되니까 더 기도하게 돼. 기도 부탁해. 큰애는 이번 7월에 변호사시험 치러야 하고. 두 아이들 정말

좋은 사람들 만났으면 해.―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말했다.

 – 많은 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과 해야 해. 그것이 어떤 조건보다도 제일이야. 상대가 다 좋은데

가장 중요한 그 부분을 함께 나눌 수 없다면 허공을 치는 것과 다름없어. 자녀들이 이뤄야 할 미래의 가정을 위해 기도해야 하

는 것이 우리 부모의 몫이야. 부모세대는 지나가고 그 바통을 우리가 이어받아야 해. 요즘엔 우리엄마의 기도소리와 찬양이 몹

시 그리워. 하늘나라로 가시기 며칠 전에 한 마디 말을 못해도 찬양하고 기도할까요? 하면 닫혀졌던 가는 눈꺼풀을 힘겹게 끌

어올려 끔벅거리며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면 나는 엄마의 18번을 불렀어.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저

하늘을 소망하는 엄마가 되게 하소서. 지금까지 도우신 주님, 끝까지 지켜주소서, 라고 기도했어. 엄마의 신앙을 본받고 싶어

졌어. 그렇게 담담하게 하늘나라에 갈 차비를 하는 걸 보며 부럽단 생각까지 했어. 내가 어릴 적부터 엄마는 늘 찬양을 흥얼거

렸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힘들었던 엄마 인생 같아. 그 찬양이 엄마를 살린 것 같아. 그 음성이 얼마나 힘차고 즐거운지 몰라.

특히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와‘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는 엄마의 애창곡이었어. 임종 전에 더 많이 엄마 곁에

서 찬양을 부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돼. 일하고 피곤하니 매일 병원에 들르지 못한 것이 죄송한 일이야. 근데 참 신기해. 임종

을 지켜본 이 없지만 돌아가시기 15분 전에 담당간호사가 하이 Mrs. 홍, 인사하니 엄마가 웃으며 손을 흔들더라는 거야. 그때

가시려고 굿바이를 하신 걸까? 그걸 생각하면 그 간호사가 나 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 까하는 생각이 들어.―

 내 목소리에 떨림이 있었다. 그 순간에 엄마의 젊은 날의 모습과 마지막 얼굴이 빠르게 지나갔다. 우린 잠시 아무 말 없이 앞

에 놓인 커피를 홀짝홀짝 마셔댔다.

 친구는 일을 많이 해서인지 손목밴드를 했다. 작은 체구에 억척같이 일하는 그녀는 열심히 산다. 이젠 자신의 몸도 관리했으

면 좋겠다. 벌써 친구는 60이 되어간다. 나이에 비해 젊게 보이지만 손가락 관절이 성하지 않으니 걱정이 된다. 언제 까지 일

할 거냐고 묻는 내게 웃으며 칠십까진 해야지. 쉬면 더 몸과 마음이 더 쳐지고 아플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핸드백에서 차 박스 하나를 꺼내어 내게 내밀었다. 좋은 차야, 라고 했다. 차 마시기를 즐기는 친구에 비해 난 그렇지

않다. 내가 만든 생강차나 현미차를 마시는 정도다. 고맙게 받아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엄마처럼 큰 산이 되어줘. 기도해줘, 라며 차창 문에 머리를 내밀고 소리쳤다. 그녀는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며 차를 몰고 떠

났다.

 내가 무엇으로 그녀를 막아줄 큰 산이 될까? 엄마를 닮고 싶다. 그러면 될 것 같다.

갑자기 눈앞에 먼 산이 보였다. 늘 거기에 있는 산이 오늘따라 가깝게 내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