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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따듯한 장례식

201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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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장례식 / 용우

 

 장례식장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나는 그린에게 조문카드를 건네며 먼저 쓰라고 했다. 그린은 멀뚱하게 쳐다보더니 정말 그래

야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선선히 카드를 받아들었다. 잠시 후 그린은 자기 친구에게 주는 위로의 글을 또박 영어로 완성했다.

Dear Grace and Sharon,

We were all very sad when we heard that your mother had passed away. She was always so nice everytime we saw

her at church…..이렇게 시작하여 ‘힘든 시간을 잘 견뎌내도록 우리 모두 기도하겠다.’로 맺는 내용이었다. 그레이스는 그린의

EM 고등부 친구이고 샤론은 그레이스의 한 살 적은 동생이다.

 내가 그레이스 아빠와 인사를 나누게 된 것도 아이들이 먼저 친구가 된 때문이었다. 교회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그레이스와

샤론이 나타나면 그린은 밥그릇을 들고 그리로 갔다. 가끔은 그레이스와 샤론이 그린이 곁으로 와서 낄낄 깔깔 수다를 떨며 놀

았다. 그럴 때마다 그레이스 아빠와 나는 아이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다가 시선이 마주치게 되어 자연스럽게 눈인사를 나누었

다. 그의 곁에 앉은 여인이 그레이스의 엄마라는 것도 이내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멀찍한 눈인사 이후 우리는 교회 주차장이나 로비를 지나치다 맞닥뜨리게 되어 정식으로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

었다. 그럴 때면 곁에 선 그레이스 엄마와도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그레이스 아빠도 그렇지만 엄마 역시 말수가 적은 사람 같

았다. 우리가 나누는 인사는 고작 ‘안녕하세요’가 전부였다. 이 짤막한 인사나마 우리 남자들끼리만 주고받을 뿐, 그레이스 엄

마는 목례만 했다.

 어느 날 아내와 무슨 말을 하다가 그레이스네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때 아내로부터 그레이스 엄마가 중한 병으로 여러 차례

수술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중한 병을 앓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더라, 고 하자 아내도 ‘글쎄, 정말 그렇지?’ 라고 내

말에 동조하며, ‘이제는 다 나았나봐’ 라고 했다.

아내와 그런 대화를 나눈 것이 엊그제 같은데 갑작스레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지난 독립기념일 연휴 아침에 새벽기

도를 갔는데 앞자리에 앉은 Y집사님이 아내에게 그런 비보를 전했다. 그녀가 정기적으로 하는 수술을 받다가 깨어나지 못하고

끝내 사망했다는 것이다. Y집사님은 바로 그녀가 속한 순의 순장님이었다.

 박재영 목사님의 사회로 진행된 천국환송예배는 엄숙하면서도 잔잔한 슬픔이 깔린 가운데 진행되었다. 박신웅 목사님의 뜨거

운 기도와 김미정 목사님의 감성 넘치는 말씀에 이어 고인의 큰 딸 그레이스의 조사가 이어졌다. 그레이스는 조사 중간에 가슴

이 복받친 듯 눈물을 흘리며 엄마의 사랑을 추억했다.

 어느덧 환송예배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고인과 작별하는 의식이 시작되었다. 비교적 뒤쪽에 자리했던 우리는 관례에 따라 다

른 사람보다 먼저 뷰잉하게 되었다. 앞에 선 그린이 친구와 포옹할 때 나는 그레이스 아빠의 손을 잡았다. 내 손을 잡은 그레이

스 아빠는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부디 용기 잃지 마시고 힘내십시오.’ 했다. 그린이 6살 때 아이의

생모를 중병으로 떠나보낸 나로서는 누구보다도 그 아픔을 잘 알기에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일찍 밖으로 나온 우리는 참석 교우님들과 인사라도 나누려고 잠시 기다렸다. 그런데 뒤를 이어 나오는 조객들을 보니 하나같

이 모두가 우리 온누리교회 교우님들이었다. 형제의 슬픔에 적극 동참하는 교우들의 모습은 나의 가슴 깊은 곳까지 뜨거운 감

동을 쓸어 내렸다.

그날의 일정상 하관예배에는 참석할 수 없어 곧장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또 한 번 사랑의 실체를 맛보았다. 다름이

아니라 장의사를 나오며 받아든 종이봉투 때문이었는데, 그 속에는 샌드위치 두 쪽과 작은 물병 하나, 그리고 냎킨과 물수건이

정갈하게 들어 있었다. 조문객들에게 나누어준 그 종이봉투가 유족을 돕기 위해 교회가 마련했다는 것과, 그 작업을 위해 고인

의 순식구들을 비롯해 자원한 30여명의 교우들이  이틀간 수고한 결과라고 아내가 말해 주었다.

나는 물수건을 꺼내어 깨끗이 손을 닦았다. 플라스틱 용기에 든 보리빵샌드위치를 조심스레 꺼내어 두 입 베어 먹었다. 작은

패드병을 열어 물 한 모금을 천천히 마셨다. 하얀 냎킨으로 입을 닦았다.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뉘었다. 슬프지 않았다. 가슴이

따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