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건너 오두막-다시 기도의 자리로(이용우)
2016.03.02상세 본문
다시 기도의 자리로 / 이 용우
오늘 새벽기도회에서 손 영호집사와 만났다. 부인인 미숙권사는 우리 부부와 토요새벽기도회의 단짝
친구지만 영호집사는 매번 나오는 편이 아니라서 그 얼굴이 보이면 새삼스러울 만치 반갑다. 영호집사도
같은 마음인지 악수와 함께 건네 오는 미소가 남달랐다.
그런 영호집사는 설교가 끝나자마자 작은 소리로 카페로 갑시다, 했다. 곁에 앉은 미숙권사도 눈짓으로
카페 쪽을 가리키며 같은 신호를 보낸다. 나는 얼른 아내를 돌아보았다. 아내는 곤란하네, 라는 표정을
지었다. 잠깐 고민하던 나는 카페로 가자, 고 했다.
우리 부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토요새벽기도회 후엔 파네라에 가서 오트밀로 아침을 먹는다. 아내는
식당 음식이 부실하다며 사과, 딸기, 불루베리 같은 과일과 호두, 잣, 아몬드 따위를 전날저녁에 미리
준비한다. 오늘 역시 그런 것들이 차에 실려 있다. 식당에서 주문한 오트밀위에 그것을 얹어먹는 것이
우리 부부가 토요일에 치르는 즐거운 아침의식이다.
오늘은 두 주후에 개강하는 순예배를 위해 다른 날보다 좀 더 충실한 기도시간을 갖은 후에 식당으로 갈
계획이었다. 그러므로 누리카페로 가는 것은 우리가 생각한 일이 모두 어긋난다는 말이다. 나는 본당을
걸어 나오며 아내에게, 카페에서 샌드위치 먹고 다시 들어와 기도 하자, 고 말했다. 아내는 좋은 생각은
아니지만 할 수 없다는 얼굴로 그래야지 뭐, 했다.
이번 학기개강은 우리 부부에게 다른 때와는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전에는 맡아오던 순을 그대로
이어나가면 되었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순을 배정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순은 물론 다락방도 바뀐다.
순장으로 봉사하던 기쁜 3순은 부순장에게 물려주고 맑은다락방으로 옮긴다. 원활한 공동체 운영을
위한 담당목사님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새 사람들과 만들어갈 따듯한 소그룹을 위해
어떤 무엇보다도 기도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카페에서 제법 시간을 보낸 후 손 집사부부와 헤어진 우리는 다시 본당으로 들어왔다. 그때까지
기도하고 있는 교우들은 대여섯 사람에 불과했다. 넓은 강당이 텅 비어있었다. 나는 우리가 늘 앉던
가운데 줄 중간 자리로 들어가다가 말고 아내를 툭 쳤다. 우리 저 맨 앞자리로 가서 기도할까? 내 말에
아내는 실내를 한 번 휘둘러보더니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가운데 줄 맨 앞자리 두 번째 열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만 바꿨을 뿐인데 기분이 새로웠다.
허지만 기도를 하려고 허리를 굽혔더니 배가 불편했다. 식음 후에 곧바로 가슴을 숙이니까 그러잖아도
비만한 복부가 압박을 받은 모양이다. 곁눈으로 아내를 훔쳐보니 벌써 기도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여자들은 정말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나는 허리를 펴고 심호흡을 크게 하다가 무심코 저만치
떨어진 목사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언젠가 우리를 찾아와 위로를 베풀고 다시 당신의 자리로
돌아가 기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지난 해 7월이었다. 그날도 토요새벽기도회 시간이었다. 유방암 수술로 한 달쯤 쉬고 있던 아내가
처음으로 교회에 간 날이었다. 설교가 끝나고도 꽤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다른 때 같으면 파네라에
간다고 일찍 자리를 떴을 텐데, 그 날은 아내가 큰 수술을 한 뒤라서 간절한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누군가 작은 소리로 집사님, 하고 부르기에 머리를 들었더니 권 목사님이 서 있었다. 권
목사님은 아내의 수술경과를 묻더니 치유와 회복을 위해 간곡한 음성으로 기도했다. 온누리교회
신자라면 누구나 잘 알듯이 높은 영성과 신뢰감이 넘치는 권 목사님의 기도에 그날 우리 부부는 회복의
확신과 마음의 큰 평안을 얻었다.
권 목사님이 떠난 후에도 우리는 한참 더 기도하고 일어났다. 시간이 꽤 흘렀던지 그 날도 기도하는
사람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습관처럼 본당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저만치 앞자리에서 낯익은 모습을
발견했다. 당장에 나의 글쟁이 기질이 살아났다. 낮은 조명아래 식별이 가능한 거리까지 슬그머니
다가가서 넘겨다보았다. 우리와 헤어진 후 본당을 떠난 줄 알았던 권 목사님이 거기 당신의 자리로
되돌아가 다시 기도하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그 날 여운이 오래 남을 감동을 받았다.
부른 배로 인해 기도를 시작하지도 못했던 나는 다시 기도의 자리로 돌아갔던 목사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허리를 굽혔다. 두 손을 모아 쥐고 눈을 질끈 감았다. 이미 정상에 오른 아내의 기도소리는
적진으로 쳐들어가는 용사처럼 기세가 등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