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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감사한 딸

201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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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한 딸 / 이 용우

지난주일 1부 예배 때 대표기도를 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2부 예배 성가연습 때문에 일찍 출발하는

아내와 따로 교회를 갔는데 그 날은 시간대가 같아서 아내 차에 동승했다. 3부 EM예배를 드리는 그린은

내 차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내려와 보니 뭔가 허전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성경과 설교노트는 버려두고

기도문만 달랑 들고 왔다. 2부 예배 후에는 동반자와 공부도 해야 하는데 일대일 교재도 가져오지

않았다. 모두 내 차 뒷좌석에 두고 왔다. 안수집사로 임직 받고 처음 하게 되는 공기도 라서 자못

긴장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예배가 끝나는 대로 얼른 집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알람을 맞춰놓고

잠에 빠져있을 그린을 깨워 일찍 오라고 하면 틀림없이 불평을 쏟아낼 터이니 귀찮더라도 내가 후딱

달려갔다 오는 게 편하다.

예배가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달려온 나는 깜짝 놀랐다. 마땅히 제자리에 주차되어 있으려니 했던 차가

없었다. 우리 집은 주차장이 한 자리밖에 없어서 내 차는 길에 세운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도 왼쪽

길가에 얌전히 주차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는데 없어졌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작년 어느

여름날밤에 뒷바퀴 하나를 도둑맞은 일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환한 주일 아침에 그럴 리가 있을까 하는 생각과, 어쩌면 얘가 스타박스라도 갔는지 몰라, 하는

바램으로 그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뚜루루 가는 사이에 혹시라도 그린이 잠 묻은 목소리로

‘Why 아빠,’하면 어쩌나, 그러면 정말 뭔 일이 난건데 하는 걱정으로 가슴이 벌렁거렸다.

“하이 아빠, what’s up?” 다행스럽게도 그린의 밝은 음성이 들려왔다. 불장난 하다 들킨 아이처럼 말투에

장난기까지 실려 있었다. “너 어디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감추며 짐짓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하아, here is New port Beach Sir!” 나는 뉴포트비치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뉴포트 비치? 너 혼자서?”

“아니, 친구 같이.” “친구 누구? 재스민? 브리아나?” “아니, Michelle.” “미셸이 누구야?” “교회 친구,

Sunday school teacher 하는 친구.” 나는 교회친구와 갔다는 말에 금세 마음이 누그러졌다. “주일학교

선생님 하는 미셸이라고? 아빤 누군지 잘 모르겠네, 그래 운전은 잘했어?” “운전 미셸이 했어, 친구

차타고 왔어.” 그 말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그럼 아빠 차는 어디 있어?” 나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그린은 헤헤 웃으며 “교회 주차장에

있어.”했다. 그린의 말에 맥이 빠진 나는 헛웃음을 치며 “아, 교회에서 만나 같이 갔구나,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너 깨우지 않으려고 전화도 안하고 지금 집 앞에 와있다 이 강아지야!”하자 그린은 “Sorry,

아빠.”하며 깔깔 웃었다. 가끔 할 말이 있어서 제 방문을 두드리면 일요일 하루 실컷 자려는데 깨운다고

투덜거리더니 제 친구 만나는 일에는 저렇게 열심이었다.

“오케이, 기왕 갔으니 맛있는 것 먹고 와, 그런데 거기 꽤 비쌀 탠데…” 상황이 종료되었기에 마무리를

지으며 주의나 환기시키려고 그렇게 말했다. 매일 그린의 은행잔고를 점검하는 아내는 딸이 돈을 너무

헤프게 쓴다고 불평한다. 돈 버는 어려움을 모르는 그린이 대학생이 되며 만들어준 대빗카드를 조자룡 헌

칼처럼 휘두르고 다니기 때문이었다.

“나 캐시로 낼 거야, 아빠가 어제 돈 줬잖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단박 눈치 챈 그린은 그렇게 말했다.

“그래, 대빗카드만 긁지 말고 캐시도 쓰고 다녀, 엄마가 네 어카운트 들여다보면 골치가 아프데, 알았지?”

“Okay, don’t worry.”

며칠 전 그린이 학교로부터 매일이 하나 왔다. 지난 1학년 가을학기 성적이 3.50이상으로

엘리트명예그룹에 선정되었다며 장학금을 신청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몇 차례 시험을 치르는 동안

“대학 시험은 어떻더냐?” 고 물으면 그린은 “응, 하이스쿨 보다 쉬워.”라고 대답해서 긴가민가했는데

학생처장이 서명한 편지를 받고 보니 마음이 놓였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어제 주말이 되어 집에 돌아 온

그린에게 백 달러를 주었다. 지금 그 돈으로 비치가 식당에서 우아하게 아침식사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린은 제 엄마와 상선집사, 이렇게 셋이서 영어성경 읽기도 한다. 지난 1월초부터 잠언을 시작으로

하루 한 장씩 읽고 간단한 느낌을 카톡방에 올리는 것이다. 지금은 출애굽기를 하는데 곧 마태복음으로

넘어간다고 한다. 바로왕이 하나님께 불순종해 일곱 가지 재앙을 받는 장면을 읽고는 엄마 말을 잘 안

듣는 자기가 바로 같다고 고백했다는 글을 아내가 들려주기도 했다.

지난 추수감사절부터 시작한 가족 카톡방에도 그린은 감사의 글을 거르지 않는다. 하루 두 가지 이상

감사거리를 올리는 가족방을 통해 전에는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I’m thankful for my mom, 또는 my

dad’ 이라는 소리를 심심찮게 듣는다.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나와 아내는 행복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우리 부부가 감사한 것은 그린이 주말마다 집으로 돌아와 교회에 출석하는 일이다.

대학입학을 앞두고 우리가 가장 걱정한 것은 그린이 교회를 떠나면 어쩌나 하는 일이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대학 들어가면 교회와 멀어진다는 말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부부의 우려를

말끔히 불식하고 그린이 저렇게 공부도 잘하고, 성경도 잘 읽고, 매일 감사를 말하며 주일성수를 한다.

더구나 지금 교회친구와 함께 즐거운 ‘식탁의 교제’를 나누고 있다. 학생신분에 맞지 않게 비싼 음식

즐기는 것이 잘하는 일은 아니지만 전혀 밉지 않다. 오히려 기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