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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똑바로 걷고 싶지요?

2016.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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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걷고 싶지요?/홍순복

나이가 들면서 남편의 삐딱한 걸음걸이가 한쪽으로 더 기울어진다. 그를 바라볼 때마다 안쓰럽기

그지없다. 백수인 나는 울타리인 그를 꼭 붙들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를 세우고

싶어진다.

신발을 고쳐 신으려면 정형외과 닥터의 처방전이 필요하다. 몇 년을 병원에 가라고 노래를 했건만 그는

지금까지 다음에, 하며 미루고 있는 중이다. 토요일에 문 여는 병원이 없다는 이유이다.

요즈음 남편은 오십견이 와서 왼쪽 팔을 제대로 들지 못한다. 부황을 여기저기 뜨니 검게 변했다.

아무래도 크게 아픈 것 같다. 내게 부황을 떠주면서도 자신의 몸에 대는 것은 질색을 했던 사람이

어지간히 아픈지 등을 들이댔다.

나는 텔레비전에 광고하는 닥터 L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다행히 토요일에 문을 연다는 반가운 소리에

얼른 예약을 해버렸다.

닥터오피스 로비에서 기다렸다. 한 시간이 지나도 남편은 나오지 않았다. 무료해진 나는 문 쪽을 자주

쳐다봤다. 매니저 여자가 밖으로 나오더니 말을 시켰다. 드라마 보실래요? 물었다. 그녀는 스크린에

드라마제목을 클릭하면서 고르라고 했다. 얼굴은 우락부락하게 생겼는데 그녀는 곰살맞은 구석이 있다.

한참 후에 남편이 밖으로 나왔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어요, 하자 남편은 허허, 하며 웃었다.

[글쎄, 닥터가 나를 놔주지 않는 거야. 발 처방전만 해달라고 하니 내 다리를 들여다보며 신기해하는

거야. 이런 다리는 처음이라며 자기가 고칠 수 있다고 하는 거야. 나는 그랬지. 60평생 이러고 살았는데

새삼 몸에 칼을 대고 금속을 집어넣고 하는 것은 싫다고 했지. 그러나 닥터는 밖에 환자가 줄을 섰는데도

내게 애원하듯 한번 해보자는 거야. 자신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은 거야. 닥터의 기질이랄까. 아니면

사명일까. 이런 내 다리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거지. 한 번 똑 바로 걷고 싶지 않아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더군. 그러고 싶기도 하지. 나는 수술과 재활기간까지 꽤 오래 걸릴 테니 은퇴

후에나 생각해보자고 했어. 닥터가 말하더군. 사람의 적응력은 굉장하다고. 이런 다리로 어떻게 살았냐고

말이야.]

아주 어릴 적 돌도 지나지 않았을 때 남편은 사고로 다리를 다쳤다고 했다. 집안의 어떤 일로 화가 난

아버지가 뭔가를 던져 어머니가 그걸 피하려다 벽에 부딪혔단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어머니는 어린

남편을 안고 젖을 먹이던 중이라고 했다. 무지하고 가난했던 시절 그는 그렇게 방치됐던 것이다.

그에게 다리를 고칠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초등학교 2.3학년 무렵 길을 걷고 있는데 어떤 병원 앞에

서있던 의사가 그를 불러 세웠다고 한다. 그 의사는 남편의 다리를 다 살핀후 자신이 고쳐줄 수 있으니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간 남편이 아버지께 의사의 말을 전했지만 아버지는

알았다고만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었다고 남편은 말했다.

밤마다 그의 다리를 만지며 마사지를 해준다. 아픈 다리를 살살 주무르면 어느새 차갑던 다리에 온기가

생긴다. 처음에 남편은 아내인 나에게 조차 자신의 아픈 다리를 보여주는 것을 꺼려했다. 하지만 나는

끈질기게 그의 바지자락을 올리며 마시지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 건강한 왼쪽 다리와 발바닥은 아주 세게 두드렸지만 오른쪽은 차마 두드리기보다 그저 살살

만져야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아픈 다리도 마사지 강도를 조금씩 높여갔다. 그런데 일

년을 넘게 하니 길들여졌는지 빠르게 따뜻해졌다. 강도를 높여 마사지를 해도 아프단 소리가 없는 걸

봐서 좋아진 것 같다.

내가 마사지를 하는 동안 최고의 휴식으로 즐기는 그가 말했다.

[당신은 내가 다리 수술하는 거 찬성해? 나는 이 다리가 좋은데… 어차피 완전한 다리가 되지 않을 건데

찢고, 자르고 그 속에 쇠줄 같은 것을 넣을 텐데 마음이 내키지 않아. 그냥 당신 마사지나 받으며 이대로

살고 싶어.]

백세시대가 열렸는데 남은 시간 똑바로 걷고 싶지 않아요? 라던 닥터의 말에 솔깃해지기도 했던 남편이

마음을 바꿨나 보다. 아니면 아픈 것을 잘 못 참는 남편이 수술을 두려워해서 일까. 하지만 나는 그가

똑바로 걷는 것을 보고 싶다. 똑바른 다리로 지금처럼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을 넘어 경치 좋은

칙스캐년 트래일까지 함께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