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건너 오두막-천사2
2016.04.27상세 본문
천사 2 / 이용우
이번 4월은 우리 S공동체의 맑은다락방이 주방봉사를 하는 달이다. 나는 지난주처럼 우리 3순의 봉사자들을 그룹카톡방
에 올렸다. 얼마 후 다락방장인 최 헌장집사가 각 순에서 올라온 명단을 토대로 주일날 시간대 별로 봉사할 사람들의 이름
을 고지했다.
-4월 10일 주방봉사자 명단-
A (7시~8시) 정우철, 이용진, 홍주완, 이용우.
B (9시~10시30분) 최헌장, 최종민, 이용범, 정은영, 천사1.
C (10시~11시30분) 여연구, 조경래, 송희경, 전명성, 천사2,
D (11시30분~13시) 김종수, 김현숙, 오성재, 서원재, 한진옥, 홍순복, 김희범, 유명숙, 8순 2명, 10순 4명.
E (12시30분~14시) 이현정, 김성훈, 홍원호, 김영주, 2순 2명.
PS:B조와 C조에 인원이 부족하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다락방장이 봉사자명단을 올린 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카톡이 울려서 열어보니, ‘C조 여연구 요번 주 출장이라 봉사 못
합니다, 빼주세요’ 라는 댓글이 달렸다. 그러자 곧바로 ‘네, 천사 3으로 대체하겠습니다.’ 라고 다락방장이 답했다. 나는 ‘뭔
천사가 저리 많아, 다락방장님이 아주 대비가 철저하신 분이네,’라고 감탄했다.
주일 아침 일찍 교회식당으로 갔더니 이미 주방책임자인 하 권사님과 다락방장 내외가 나와 있었다. 무슨 일을 할까 물으
니 쌀을 씻으라고 했다. 김밥 팀이 가져갈 밥은 다 됐으니 세 솥 꺼리만 씻으면 된단다.
큰 플라스틱버켓 세 개에 나누어 담긴 쌀을 각기 다섯 번씩 씻으라고 했다. 쌀통은 바닥에 손이 닿으려면
팔 하나가 다 들어갈 만큼 깊었다. 겨드랑이가 젖을 정도로 손을 집어넣어도 바닥의 쌀까지 고루 씻기 어려웠다.
겨우 한 통을 다 씻어갈 즈음 7순장 이용진 집사가 들어오더니 자기에게 맡기라며 나를 밀어냈다. 못이기는 척 물러나온
나는 계란프라이를 부치고 있는 다락방장 곁으로 갔다. 오늘 메뉴가 뭐냐고 물으니 비빔밥이라고 했다. 내가 일이 너무 많
지 않냐는 뜻으로 ‘계란프라이 생략한다고 불평할 사람 없을 텐데요’ 했더니 다락방장은 ‘그건 하 권사님이 결정하시는
데요, 권사님이 뭐든 대충하는 분이 아니라서… 음식재료도 여러 마켓을 다니며 가격대비 좋은 것으로만 구입한답니다, 교
인들이 힘들게 낸 헌금을 마구 쓰면 안 된다고 하시며, 그렇게 해도 전에 식당에서 주문할 때보다 비용을 많이 절감 한다는
군요.’ 했다.
나는 머쓱해져서 ‘저도 계란이나 부칠까요?’ 했더니, ‘어이구, 좋지요, 그러잖아도 제가 솜씨가 없어서 이렇게 빈대떡을 만
들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한다. 그러고 보니 정말 다락방장의 계란프라이 솜씨가 말이 아니었다. 빈대떡도 잘 만든 빈
대떡이 아니라 뜯어먹다 내던진 것처럼 들쭉날쭉이었다. 나는 그때껏 계란프라이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셀 수 없도록 많이
먹어는 보았기에 그까짓 것 못 만들랴 하고, ‘네, 그러지요.’ 라며 자신 있게 덤벼들었다.
다락방장이 한꺼번에 계란프라이 여섯 개를 만들어내기에, ‘저렇게 욕심을 부리니까 그렇지.’ 하며 나는 프라이팬위에 네
개만 깨 넣기로 했다. 네 개를 서로 떨어지게 배치하면 각각 동그랗고 예쁜 계란프라이가 만들어지겠지 하는 생각에서였
다. 헌데 그렇지 않았다. 한껏 조심한다고 깨뜨려 넣은 계란은 세 개째에 이르자 주르륵, 미끄럼을 타며 한 덩어리로 쩔꺽
붙어버렸다. 나는 서둘러 그것들을 떼어내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채 익지 않은 흰자위가 주걱에 마구 달라붙어서 더욱 당
황스러웠다.
‘어머, 이게 뭐야? 아유 뵈기 싫어, 계란프라이는 이렇게 하는 게 아니야, 저리 좀 비켜 봐요.’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 나
는 고개를 들었다. 한 칠십 중반쯤 되었을까, 짧은 커트머리에 온통 노랑 물을 들인 권사님이 눈살을 찌푸리고 서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군말 없이 물러나는 게 상책인데 나는 바보처럼, ‘보기는 싫을지 몰라도 맛은 같잖아요?’ 했다. 그랬더니
노랑머리 권사님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옛말도 몰루?’하며 눈을 째렸다. 나이는 많아도 에너지가 철철 넘치는
권사님이었다. 당장 팔씨름을 해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나는 노랑머리 권사님에게 주걱을 넘겨주고 오븐 앞
에서 물러났다. 다락방장은 아예 상황판단을 내렸는지 벌써 저만치 비켜서 있었다.
불판을 모두 차지한 노랑머리 권사님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더니 각각 계란 여섯 개씩을 깨 넣고 그 위에 물을 한 국자
씩 끼얹었다. 그러고는 싱크대위에 씻어놓은 밥솥뚜껑을 가져다가 프라이팬을 덮었다. 아하, 솥뚜껑에 갇힌 수증기로 계
란을 익히는구나, 설명하지 않아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계란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으며 굽는 것이 아니니 수고도 덜
고, 계란의 모양도 상하지 않을 게 당연하다.
노랑머리 권사님이 돌아보기라도 할까 겁이 난 나는 이미 다른 일을 차지하고 있는 다락방장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갔다.
작은 스티로플컵에 반찬을 담고 있던 다락방장은 나를 보더니 씩 웃었다. 멋쩍어진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궁금했던 카톡 내용을 대화에 올렸다. ‘천사가 일, 이, 삼까지 있던데 도와주는 사람이 그렇게 많습니까? 그 천사들은 방장
님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오나요?’ 내 말에 다락방장은 하하하, 웃었다.
‘천사 일번은 고정천사예요, 바로 주방책임자 하 권사님입니다, 그리고 이번 삼번은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지
요.’ 거기까지 말한 다락방장은 목소리를 한톤 낮추더니, ‘저기, 저 계란프라이 하시는 권사님 같은 분들이지요.’ 했다. 그
말에 어이가 없어진 나는 ‘네에? 저 노랑머리 권사님이요!’ 하고 목소리를 올렸다. 하마터면 나는 ‘무슨 천사가 저렇게 거칠
어요?’ 라는 말까지 할 뻔 했다.
내 맘을 읽은 다락방장이 씩 웃으며 ‘도움을 주면 천사 아닌가요?’ 했다. 머리를 치는 말이었다. 천사는 당연히 나이스 할
것이라는 내 생각은 편견이었다는 깨달음이 왔다. 그래도 물론 석연치 않았지만 나는 노랑머리 권사님이 ‘천사 2’ 가 맞다,
라는 쪽으로 생각을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