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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202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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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 성 도마의 의심
카라바조의 성 도마의 의심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1989년 당시 동국대 교수로 재직중이던 배용균 교수에 의해 제작된 한 영화는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 영화제 수상(르카르노 영화제 감독상)을 하게 되면서 한국 영화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배용균 감독 작)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법한 이 말은 이게 영화 제목입니까? 라고 되물어 볼 만큼 달마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유명(?) 문구가 되었습니다.


인도 타미르 출신으로 남중국에 가서 불교를 전했다는 보디다르마(달마)의 인생은 전설로만 존재할 뿐 정확하지 않습니다.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퉁퉁한 얼굴에 짧은 수염이 인상적인 달마대사의 그림도 상상속의 인물일 뿐입니다.

각종 전설과 신비로 무장한 인물인 만큼 신빙성이 없다는 것도 일반적인 견해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영화는 달마를 주인공으로 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찾는 한 구도자의 이야기를 그렸고 담백한 연출로 서구사회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밀양이나, 낮은데로 임하소서 등 좋은 기독교 영화가 많지만 모두에게 회자되는 깊은 인상의 영화가 다시 등장하기를 바래봅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것은 웬만한 기독교인들도 아는 반면 예수님의 제자 중 한명이 동쪽으로 갔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도마는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한 마디가 그를 이런 인물로 기억하게 했습니다. 


내가 그의 손에 못 자국을 보고 손가락을 못자국와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못 믿겠다!! (요한복음 20:25)


이 발언으로 인해 도마는 믿음 없는 자, 의심 많은 자라는 선입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마는 다시 평가받아야 할 인물입니다. 

도마는 오늘날로 말하자면 감각적으로 경험하고 확인된 사실만이 정확하다고 믿는 사실주의적 신앙인이었습니다. 

날아오는 카톡 뉴스나 유투브 주장들을 덥썩 믿지 않고 소위 fact check를 거쳐야하는 유형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도마가 오늘날 살아있다면 많은 가짜뉴스를 분별해 주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


도마는 질문이 많았습니다. 확인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도마의 모든 질문을 다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고, 예수님으로부터 모든 인류를 구원할 대답을 들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요한복음 14:5)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성경 필수 암송구절은 도마 덕분에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도마 고마워요)

이후 도마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오셨을때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줄 모르고 있었고 유대인들이 두려워 어느 한 곳에 문을 잠그고 모여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마는 거기에 없었다니 도마는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성경은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밝히고 있지 않지만 조금 독특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예수의 시신이 없어져 난리가 났는데 숨어있어야지 어딜 돌아다닌단 말인가요

우리는 베드로가 용감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베드로는 작은 계집종이 두려워 예수를 세번이나 부인한 자요

예수께서 오라고 하시는데도 물이 두려워 빠질만큼 허당(?)이셨다면, 정말 겁이 없는 사람은 도마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자들이 늦게 나타난 도마에게 우리가 주님을 뵈었다! 하니 도마는 믿을 수 없었고 손가락 발언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8일 후(그 사이 예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성경은 다 기록하지 않습니다. – 쌓아둘 곳이 없다 요한복음 21:25)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거기에는 도마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27)

카라바조의 성 도마의 의심

카라바조는 사실주의 화가로 유명합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중에 성 도마의 의심이 있습니다.(맨 위 그림)

그림에는 손가락을 넣어보는 도마와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제자들의 얼굴 그리고 예수님이 등장합니다.

도마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합니다. 아마도 죄송해서 였을까요

반면 예수님은 그런 그의 손을 잡아 당신의 구멍난 곳에 직접 넣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도마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my Lord and my God !! (요한복음 20:28)


이 고백은 도마가 유일합니다.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태복음 16:16) 고백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고 제자들에게 물으셨던 질문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마의 고백은 저희들은요~ 가 아니라 저는! 이라고 답한 개인적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이 고백이 있은 후 예수님은 도마에게 이제는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요한복음 20:29)
 

20장이 끝나고 21장에서 베드로에게 숯불 생선을 구원주신 이야기를 끝으로 요한은 더 이상 다른 일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이 외에 다른 표적을 많이 행하셨고 다 쌓아둘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요한복음 20:30, 21:25)

마치 책의 마무리를 하다가 아! 하고 생각난 듯 도마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이제 더는 못쓰겠다. 그러나 도마의 이 이야기 만큼은 뺄 수 없다!” 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후 도마의 행적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도마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그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만약 저와 여러분이 도마처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예수의 부활하신 몸의 구멍에 손을 넣어본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 갈까요?

 


도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도마의 이후 행적은 이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4,000mile (6,000km) 가 넘는 인도의 남쪽으로 갔고

거기에서 첸나이 왕의 신뢰를 얻어 공사 감독관을 하다(도마는 목수입니다) 불가촉 천민들을 도운 사실이 밝혀져 사형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달리트 계급은 인도의 신분계급에 속하지 않는 접촉해서는 안될 대상들입니다)

첸나이에는 도마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입구에는 도마의 고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정확한 사실과 부합되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모를지언정 도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분명히 알겠습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사실주의에 입각한 신앙인이 아니라 사실주의를 초월한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자가 복이 있다 하신 예수의 말씀이 그의 신앙을 부활시켰습니다.


 

저는 인도를 4번이상 방문했습니다. 불교신자들의 소망인 불교성지를 세번이나 방문하였고, 힌두인들의 소망인 힌두사원을 네번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도마의 순교지를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의 사역현장도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고 칼럼을 쓰면서 얼마나 아쉽고 죄송한지 모르겠습니다. 

자료와 인터넷 혹은 외경(外經, Apocrypha)에 나온 내용들이 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이 어려운 부분도 많지만 적어도 도마가 인도에 간 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아름다운 지중해와 달콤한 무화과의 나라에서 살던 한 사람은 예수의 제자가 되었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후 남은 인생을 불교와 신비주의가 가득한 인도에서 가난한 자들을 돕다 생을 마감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난 지원금, 구호물자, 마스크 등입니다.

그러나 나라가 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믿음은 오직 주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십시오. 

그리고 보아야만 믿는 자가 아니라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성도마 기념교회
성 도마 기념교회 – 인도 첸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