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메뉴바로가기
    목회칼럼  

목회 칼럼

변화산은 어디에 있을까?

2023.11.19

상세 본문

성경에는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단어중에 변화산이 있습니다.(변화는 나옵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께서 높은 산에 (소위) 수제자들인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데리고 올라가셨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의 눈에 보기에는 예수께서 세명만 따로 데리고
좋은 곳에 간 것 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예수께서 높은 산에 오르셨을 때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시고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어마어마한 고백을 한 뒤 그제서야 비로서 고난을 이야기 하시는
예수를 혼내던(rebuke)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신
참 어색한 상황이 있은 지  6일 후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는 실제로는 수제자가
아닌 수제비보다 못한 제자들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후에 야고보와 요한은 어머니를 데리고와
당신의 나라(하나님 나라가 아닌 제국)에서 우리 두 아들에게
한 자리씩 달라고 합니다. 이 일로 인해 제자들은 분노에 휩싸입니다)
그런 제자 셋을 데리고 주님께서는 (변화산이 아닌)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높은산

성경은 분명히 높은 산에 오르셨다고 기록합니다. 
헬라어 성경은 ‘높다’를 ‘우뚝 솟았다’고 썼고
이 말은 성격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사람중에 ‘높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눅 16:15

예수께서는 높은 산에서 변형되셨는데 그 모습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흰 광채가 눈 부셨습니다.
(후에 주님은 이 모습으로 사울(바울)앞을 가로 막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변형되신 것이 아니라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본래 예수님은 인간의 눈으로는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영광과 빛으로 가득한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모세와 엘리야가 내려와
예수와 함께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막을 짓겠습니다.

이 광경을 본 베드로는 그 (높은) 곳에 장막 셋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무서워서 내 뱉은 말로
자신도 알지 못하는 말을 한 것입니다.
어떤 설교자는 베드로의 말에서 무의식중에
그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가 튀어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꿈꾸는 나라

베드로는 예수께 ‘주는 그리스도(메시야!)이십니다!’
고백하고 엄청난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에게 고난과 십자가를 이야기 하셨을 때
오히려 예수를 혼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메시야를 꿈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처음 만난 예수는 텅빈 그물에 물고기를
가득 채운 기적과 능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베드로를 사람을 낚는(복음으로 전도하는)
사람이 되게 하겠다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눈 앞에 출애굽의 기적과 광야의 민족이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율법을 만들어준 모세가,
우상숭배와 타락한 정부로 인해 고통받던 이스라엘을
아합과 이세벨, 바알의 손아귀에서 구한 구국영웅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베드로는 어쩌면 변화산을 로마를 무너뜨릴 새로운 제국을
시작할 곳으로 착각했는지 모릅니다.

높은산

예수께서는 높은 산을 이미 경험하셨습니다.
40일간 굶주림 속에서 사탄의 유혹을 견디고 계실 때
사탄은 아담이후로 모든 인류를 쓰러뜨린 세가지 기술을 가지고
예수를 무너뜨리고자 했습니다.
돌이 떡이 되게해라(하나님의 창조질서 네 마음대로 바꾸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라 니가 하나님이다!)
뛰어 내려라 천사가 네 발을 받아줄거다
(나도 시편쯤은 안다. 말씀을 변질시켜라 네 삶을 지켜줄거다!)
이 두가지가 전혀 통하지 않자 사탄은 마지막 필살기를 꺼냈습니다.
 
높은산

그곳은 모든 것이 내려다 보이는 우뚝 솟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서면 내가 주인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단, 그곳에서 그 모든 것을 누리려면 사탄에게 절(경배)해야 합니다.
내게 절하라 내가 이 모든 것의 주인이다. 다 너에게 주겠다. 
악마와의 거래가 이루어지던 곳이 높은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내려오셨습니다.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가셨습니다. 
예수께서 (가장 문제가 많은) 세 제자들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신 이유는 내려오기 위함 이었습니다.

내려올 줄 알아야 하나님이 다시 높이시는 영광스러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채로 죽었고,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과 400:1로 싸움에서 이긴 후
자살하고자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의 변화산은 어디입니까

예수께서는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십니다.
그곳은 우리가 그토록 꿈꾸던 자리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분은 우리를 데리고 다시 내려오실 겁니다.
우리가 변화되는 진정한 변화의 장소는 높은 산이 아니라 낮은 곳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