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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예수와 부활

20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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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2016

2016년 개봉한 영화 ‘부활’은 색다른 시각의 영화 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이 확실했지만 유대인들은 안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죽기 전부터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고 제자들은 물로 그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급기야 빌라도를 찾아가 무덤에 병사를 세워 달라고 요청했고 빌라도는 소요가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그들의 터무니 없는 요청을 들어주었습니다. 무덤은 장정 6명이 밀어야 할 정도의 거대한 돌로 입구를 막았고 혹시나 모를 부활에 대비해 병사를 세워 놓았습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 숨을 거둔 예수는 시신을 닦을 겨를도 없이 그대로 무덤에 안치되었고 금요일밤, 토요일밤 이틀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토요일 자정이 지난 지금의 일요일 아침 돌문은 옮겨진 채 무덤은 텅 비워져 있었고 시신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황급히 빌라도를 찾아 갔습니다. 빌라도는 곧 있을 황제의 방문을 앞두고 이 사태를 빨리 해결하고자 예수의 죽음을 지켜 보았던 호민관에게 시신을 되찾아 올것을 명했습니다. 호민관은 높은 직급의 로마의 관리였습니다. 총독의 명을 받은 호민관은 로마에 입성하여 총독이 될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죽은 예수의 시신을 찾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로마에 입성하기도 바쁜 상황에 없어진 유대인의 시신을 찾으라는 명령앞에 호민관은 온 이스라엘의 공동묘지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썩은 냄새로 가득한 골짜기 마다 시신을 다 뒤집어 보았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던 호민관은 급기야 예수와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을 찾아가 취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사람이라는 존재 만으로 누구나 벌벌떨던 시절이었지만 호민관이 만난 사람들은 예수에 관해 증언할 때는 다른 사람들로 변했습니다.
표정이 달라지고, 목소리는 밝아졌으며, 눈빛이 살아났습니다. 더욱 더 예수의 존재가 궁금해지기 시작한 호민관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저런 대답을 가능하게 한다는 말인가. 저들은 왜 예수를 믿고 따르는가..
계속 예수를 추적하던 호민관은 드디어..

보통 신적인 능력으로 무덤을 깨뜨리고 화려하게 부활하시는 예수님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이 영화의 주인공인 호민관은 영화 내내 시신 더미 속에서 허덕입니다. 그리고 그는 무덤을 넘어 드디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너무도 쉽게 할렐루야 예수 부활하셨네!! 를 외치는 우리에게 썩은 시체더미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이는 호민관의 거친 숨소리는 우리에게 질문하는 듯 합니다. 당신은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셨습니까? 당신은 그곳에서 무엇을 발견하셨습니까?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동시대에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알기 원한다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기 원한다.
나는 죽음을 경험할 것이고 결국 살아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누구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강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의 부활 발언으로 수 많은 소동이 있엇습니다.
그는 거의 죽을 만큼 얻어 터지기도 했습니다.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미쳤다고 하는 사람에게 내가 쇠사슬에 매인 것만 빼고는 당신이 나와 같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채찍을 맞는 것도 괜찮다.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슬에 묶여도 괜찮다.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질문합니다. 당신에게도 부활의 소망이 있는가

지금 온세계가 갇혀있습니다.
미국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도 점점 힘겨워집니다.
답답합니다. 생계도 큰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관계도 정서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온 세계가 그렇게 같은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그야말로 절망이자 죽음입니다.
그런데 진짜 절망은 그 상태가 아닙니다. 소망이 없는 것이 절망입니다.
진짜 죽음은 그 상태가 아닙니다. 부활이 없는 것이 죽음입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아무 소망없이 묘지를 찾아 헤매이던 호민관도 부활을 만났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면 나는 그분의 부활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해답은 오히려 시체더미와도 같은 삶의 상황에서 찾게 될 것입니다.
시신은 여기에 없구나. 그는 죽지 않았구나. 그는 살아났구나. 부활은 분명한 사실이구나!!

이번 코로나 사태도 끝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이 오기 전에 미리 부활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말입니다. 이번 부활주일 그 소망으로 가득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부활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