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건너 오두막- 나도 그가 되거든요/ 홍순복
2018.10.10상세 본문
나도 그가 되거든요/ 홍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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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도 일하는 이유가 있어요
집에 있으면 뭐해요
눈먼 남편과 티비를 볼 수 있나 눈을 맞출 수 있나
답답증이 나서 일하는 게 나아요
먹을 건 다 해놓고 나오지요
어느 날은 국을 데워먹으라고 했더니
부엌 스토브를 못 찾아 여기저기 부딪혀 온 몸에 멍 투성였어요
어쩌다 그렇게 됐냐면요 ,홀아비로 살며 아무거나 집어먹어 당뇨병에 걸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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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아빠가 내 나이 서른아홉에 간단 말도 없이 세상을 뜨고
살기 막막해서 미용을 배워 애들 먹여살렸어요. 젊은 내가 불쌍했던지
미국의 동생이 남편을 소개했어요. 처음엔 영국신사 같았어요
5개월은 꿈처럼 좋았어요. 그런 후 남편의 앞이 보이지 않는 거에요
무슨 팔자가 이리 기구한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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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찬양하는 사람였데요
그가 좋아 하는 곡을 시디로 구워 주면
일주일 내내 연습해요 오늘은 헌금송을 한다고
옷 차려입자 교회친구들이 그를 데리고 갔어요
참 희한하게 그가 찬양을 부르면 모두가 운다네요
가여워서 우는 건지 어떤 울림 때문인지 모르지만
심지어 거짓말처럼 밖에 나뭇가지마저 울듯 떤다고 하데요
다행에요 할 일이 있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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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떠나지 않고 사는 것은
무식하고 경우 없는 막돼먹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죠
불을 끄고 깜깜한 방에 함께 누워 이야기할 때가 제일 좋아요
그때 그의 어둠을 보게 되고
그러면 나도 그가 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