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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 – 나를 부른 이유/홍순복

2013.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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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른 이유/홍순복

 

 노동절연휴를 앞둔 목요일이었다. 하나 둘 서둘러 퇴근하는 바람에 나도 조금 일찍 일을 마치고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메니저 베어리가 할 말이 있다며 회의실로 불렀다.

 의자에 엉거주춤 앉은 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제넷이 오면 말 하자고 했다. 오늘 따라 깡마른 그의

체구가 더 외소하고 초라해 보였다. 그는 양손을 비비며 내 눈을 맞추려 하지 않고 좌불안석 이였다. 그

런 모습을 내게 보인 적이 없었다.

 인사계 제넷이 내게 무슨 볼일이 있는지 잠시 동안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몇 년째 묶여 있는 내 임금을

올려 줄 리는 만무하고 근무 중 스마트폰을 썼다고 보고를 한 건가? 쪼잔하기 이를 데 없는 그가 무슨 

고자질을 했는지 그래서 상담까지 하는 걸까 궁금증이 증폭됐다.

 제넷은 회의실에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 별로 좋은 예감이 아니었다. 회의를 할 때는 주로 문을 열어 놓

지만 상사와 사원의 심각한 대화가 오갈 때면 문을 닫았다. 먼저 베어리가 말문을 열었다.

 “ 순, 나는 더 이상 너와 함께 일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의 보스가 아니라고.”

 그는 누가 봐도 과장된 몸짓으로 양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 무슨 말에요. 은퇴라도 하나요?”

 내가 그렇게 묻자 그는 곤혹스런 표정을 지며 제넷에게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무언의 바턴를 넘겼다.

차갑고 사무적인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스가 없는 부서에 나만 혼자 둘

수 없어 나의 포지션을 다른 부서로 합류시킨다는 요지였다. 오늘부터 4개월 동안에 새 직장을 찾아 나

가라고 했다. 순간 그녀 말을 알아듣지 못한 나는 눈만 끔벅대다 정신을 가다듬었다.

 나는 대뜸 메니저에게 질문했다.

 “ 그럼 당신은 언제 은퇴할 건가요?”

 “ 음음……”

 그는 내 공습에 당황했는지 얼굴이 벌게지며 아무 말도 못하고 우물거렸다. 나보다 더 오래되고 늙은

당신은 그냥 있고 왜 나만 나가야 하는가, 라는 질문처럼 들렸을 거다.

 제넷은 새 직장을 위해 이력서도 만들고 웹사이트에서 내게 맞는 직장을 찾는데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제넷이 나를 바라보다 크리넥스통을 건네주었다.

  10월 11일이 입사한지 24년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나를 고용한 사장 부부는 이미

고인이 되었다. 미국에서 처음 갖은 직장이다.

 페니세이버란 광고잡지에 실린 사원모집을 보고 수없이 전화를 걸다 끊기가 일수였다. 정말 용기를 내

어 전화했을 때 맘씨 좋은 사장 아들이 인터뷰를 했고 나를 뽑아주었다.

처음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나만 이리 오랫동안 남겨져 있는 걸까?

눈물을 보이는 내게 잠시나마 예의를 갖춘 듯 두 사람은 나의 감정이 안정되길 기다렸다.

 나가라면 나가야지. 여기 아니면 갈 곳이 없을 라고, 나는 들릴 듯 말듯 입속으로 웅얼거렸다. 그러자 두

사람은 번갈아 말했다. 혹시 다른 직장을 잡을 때 나에 대해 물어오면 훌륭했다고 말할 거고 인터뷰를

갈 때면 얼마든지 그 시간을 지불할 거고, 당장 직장을 잡으면 년말 까지 기다리지 말고 갈 수 있다고 말

했다.

이 일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건지 짐작이 같다. 제프녀석의 아이디어다. 몇 년 전 우리 부서의 일들을

조금씩 빼앗아 자신의 부서에 사람을 늘리고 힘을 키웠다. 그래서 나만 남고 동료 세 사람을 집단으로

나게 한 장본인이 제프였다. 그때도 보스인 베어리는 강 건너 불 보듯 한 마디도 우리를 보호하지 못

다. 

 제프녀석이 요즘 들어 피자를 사서 먹으라며 친절을 베풀고 인사도 수없이 해대던 녀석의 행동이 어째

석연치 않았다. 오버였다.

 사실은 그때 나도 나갔어야 했는데 직업소개소에서 한 번도 나의 일이 있다고 부르지 않아 그대로 있게

되었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화초를 매만졌다.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둔 동료가 내게 주고 간 화분 이다. 늘 화초를

죽이는 나지만 이것만은 살리려고 물을 주고 말도 걸었다. 그 덕에 잘 자랐다. 그린 색 화분 옆에 붙은 노

란색 스마일 스티커가 보였다. 웃고 있었다. 나도 한번 따라 웃었다. 거울 속 웃는 얼굴이 가을 저녁 바람

처럼 스산했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진동으로 놔둔 전화기는 몸을 떨듯 움직였다. 스크린에 남편얼굴

이 나타났다.

 “ 왜 전화를 안 받아? 여러 번 했는데.”

 그의 목소리는 웃던 사진과는 다르게 피곤과 짜증이 묻어났다.

 “ 나도 무슨 일이 있어서 ……”

 남의 속도 모르고 그깟 전화 좀 안 받았다고 그의 목소리 톤이 차가운 것이 순간 서글펐다.

“ 그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조금 전에.”

 “네?”

 무슨 일이 한꺼번에 생기나.

 

2013.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