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건너 오두막-한밤의 침입자
2013.10.23상세 본문
한밤의 침입자 /홍순복
뒤척이다 살짝 잠이 들었다. 잠결에 방문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다 귀찮아 그냥 누었다. 그
소리는 잠시 그쳤다가 이번에는 문짝을 박박 긁는 소리가 났다. 나의 애완용강아지 구찌였다. 남편은 일
어나려는 나를 붙들었다. 방문을 열지 못하게 하는 그가 야속했지만 어쨌든 녀석이 제발 제방으로 돌아
가 주기만 기다렸다.
결혼을 하면서 나는 강아지를, 남편은 딸아이를 데리고 왔다. 구찌는 자정부터 두 시간 간격으로 우리
방에 오는 모양 같았다. 오랫동안 나와 동거하던 녀석을 딸아이 방에 잠자리를 만들었다. 갑작스레 낯선
얼굴이 두 사람이나 합류하니 동물인 녀석도 불안했나 보다.
다음날 아침 녀석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결혼 전 늦은 밤에 귀가하는 날에
는 녀석이 안쓰러워 돌아오는 차안에서 좌불안석이 된 적이 많았다. 그런 나를 두고 엄마는 말했다.
" 개는 개야, 이서방 하고 자는 침대에 강아지 올리지 마라."
" 알아요, 허지만 늘 데리고 자던 버릇이 있어서……"
구찌는 싱글살이의 적적함을 메워주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구찌가 우리 방을 찾아온 다음날 밤 지진이
나는 것처럼 누운 침대가 심하게 흔들렸다. 누군가 침대위로 몸을 던진 것이었다. 어두운 밤이라 낯선
물체의 공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누구야!"
" 무서워서 못자겠어, 나 여기서 잘래."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딸아이가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남편과 함께 11년을 살던 아이는 제 아빠
를 누군가에게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었으리라. 나의 강아지 구찌처럼. 가끔 딸아이가 우리침대에서 같
이 자겠다고 어리광을 부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한밤중에 들이 닥치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 그럼 내가 네 방에서 잘께 아빠랑 자 !"
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아이의 방으로 갔다. 착잡한 기분이었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어쩌나 은
근히 걱정이 앞섰다. 잠시 후 남편이 나를 쫒아와 비좁은 침대 옆에 눕는다. 아이와 함께 잠자지 왜왔냐
고 핀잔을 주자 도리어 그가 언성을 높인다.
" 내가 어떻게 다 큰애와 자!"
그의 말이 고맙긴 했지만 왠지 보이지 않는 안방분위기가 험할 것 같았다. 소심한 나는 겁부터 났다. 어
떻게 일을 처리하려고 그러는지 말이다.가슴이 답답해와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침대위에 바위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아직 정도 들지 않은
상태라 아이와 나 사이엔 어색한 기운이 돌았다. 하지만 무언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더 나빠질 것 같
아 끌어안고 스킨십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부를 맞대는 것처럼 서로의 관계를 좋아지게 하는
묘약은 없을 것이다. 나는 아이의 어깨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 왜 잠이 오지 않니?"
" 응, 무서워."
"낮에 무서운 영화를 봤나보구나, 그럼 오늘은 나랑 자자."
벽하나 사이에 우리가 있고 강아지도 곁에 있었지만 새집에서의 잠자리가 아직은 편안치 않은 모양이
었다. 아니면 그 어떤 낯선 느낌이 아이를 잠들지 못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두운 방안은 아이와 나의 숨소리만 가늘게 들려왔다. 나는 가만히 아이를 만져봤다. 조금은 비만하지
만 한창 크는 아이라 건강하게 느껴졌다. 그가 염려한 대로 다른 곳은 괜찮은데 유난히 양 팔뚝만 두들
거렸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팔과 다리에 아토피스 증세가 조금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피부에 좋다는
오트밀 비누를 목욕할 때 쓰도록 했지만 나아지는 기미는 없는 것 같다.
잠이 쉽게 오지 않아 창가로 갔다. 바티클 사이로 들어온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서늘했다. 나는 잠시 생
각에 잠긴다. 아이는 제 아빠에게서 두 가지를 느끼며 사는 것 같았다.아빠이면서 동시에 엄마로 여기며
말이다. 엄마 몫까지 해내는 그에게는 특별한 면이 있었다. 저녁에 돌아와 아이와 대화하는 것을 듣고
있자면 학교에서의 이야기는 물론, 머리핀 꽂은 모양까지 참견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
럴 때면 그가 더 아이 같단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정말 어린애 같다고 하면 그는 그래야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스스로 터득한 것일 거다. 제 엄마와 살아온 기억이 거의 없는 아이, 덩치가 큰데도 얼
굴과 행동은 어리다. 어미 없이 크는 아이라 불쌍해서 그는 딸아이를 더 물고 빨고 했는지 모른다. 늘 그
는 아이를 볼 때마다 포옹과 뽀뽀를 한다. 가끔은 아이 앞에서 내게도 키스를 하는데 그러면 아이는 당
연한 것으로 여기며 씩 웃는다. 아직은 여느 모녀간처럼 엄마와 딸이란 호칭을 못하고 있지만 머잖아 그
런 시간이 오리라.
며칠 전엔 아이가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내게 와서 말했다.
" 나 여기 아파, 엉덩이…….자전거에 쿠션이 없어서 그래."
아이는 정말 아기처럼 제 엉덩이를 내 쪽으로 내밀며 말했다. 응, 그래? 하며 쳐다만 보자 아이는 멋쩍은
지 제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건성 답했던 게 걸렸다. 나중에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오! 아프겠다. 어디 보자, 하며 엉덩이를 살짝 만져줬어야 했다고 말했다.
제 딴에는 엄마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었던 것인데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 내가 그 마음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 방에서 잠든 그의 코고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왔다. 나도 침대로 갔다. 아이는 이불을 둘둘 말아
가랑이에 끼고 침대 한가운데를 차지하며 자고 있었다. 잠든 아이를 꼭 껴안아 봤다. 아이가 잠결에 입
맛을 쩝쩝 다시며 나의 품을 파고든다. 나는 가슴에 안긴 아이에게 젖이라도 물리고 싶어졌다. 내안에
꼭꼭 숨겨져 있던 모성애가 비 맞은 풀잎처럼 일어났다.
2010년 12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