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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권의 영혼의창-대신 죽어주셔야

201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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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죽어주셔야

 

몇 해 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을 방문해 루벤스의 <아브라함과 이삭>이라는 그림을

감상했습니다. 아들 이삭을 향해 칼을 꽂는 아브라함과 이를 제지하는 천사의 모습

이 그려져 있었는데 숨이 막힐 정도의 긴박감이 느껴졌습니다.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이 장면을 두고 혹자는 비윤리적인 하나님의 명령이지 않느냐

며 의구심을 품기도 하고, 아브라함의 순종이 대단하지 않느냐면서 아브라함의 믿음

에 초점을 두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그림을 볼 때 제 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에 칼을 꽂고 있는 나의 모

습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슬펐습니다. 나의 죄와 무지 때문에 나의 손으로

신을 죽이게 된 상황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나의 유년시

절은 그런 가르침 속에서 자랐습니다. 갈보리 십자가를 부르며 눈물 콧물 다 흘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한편으로는 그렇게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이 감사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예수님을 죽였다는 어느 정도의 죄의식이 내 마음 한구

석에 자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죽은 상태로 태어난다는 절망적인 실존에 서서히 눈을 떠가면서

깨달은 것은 신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대신 죽는 방법 외에는 내가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나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는 이래야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로 찾아가 예수님께 요청을 해야 했던 것

입니다. “당신이 나를 위해 좀 죽어줘야겠습니다. 그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

입니다.”라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뻔뻔해 보이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대신 죽어달라

고 애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손에 칼을 들고 예수 그

리스도의 심장에 칼을 꽂을 수밖에 없는 유일한 구원의 길을 갖고 태어난 것이었습

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자살이요,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살해에 해당하는 이

무시무시한 범죄를 초월해가며 우리는 유일한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 입장에서도 우리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것을 기뻐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며 우리와 하나가 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저주스러운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과 우

리가 서로 윈윈한 것입니다. 가장 수치스러운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하나

가 되었고,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것을 막아섰을 때 예수님이 베드로를 책망

한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셔야지만 예수님도 살고, 베드로도 사

는 유일한 길임을 베드로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을 것

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가 “그래요, 주님, 나를 대신해 죽어주셔야겠습니

다”라고 했다면 예수님은 베드로의 참다운 깨달음을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나 대신 죽어달라고 예수님께 매달리고 간청하기도 전에 예수님이 먼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우리의 살해를 용서하셨

습니다. 자신의 자살을 용서하신 것처럼 말이죠. 이 어마어마한 불균형적인 사랑 앞

에 우리가 서 있는 것입니다.

칼을 내리 꽂는 아브라함을 볼 때, 그리고 십자가를 볼 때, 이제는 눈물을 거두고 그

것이 하나님과 우리가 모두 살아나는 유일한 길이었음을, 그리고 그것이 완성되어

우리가 주님의 참된 자녀가 되었고,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하늘나라를 통치하는 법

을 배워나가고 있는 것임을 하루하루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시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차명권 전도사(온누리교회, HEART min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