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메뉴바로가기
     

개울건너 오두막-아침 찻집

2014.01.25

상세 본문

아침 찻집/ 홍순복

 

 가끔은 TV를 켜놓은 채 소파에 길게 누워 나 홀로 있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러나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에 함

께 사는 가족이 있으니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더구나 항상 같이 그린이와 있기에 집안의 편한

자리는 아이에게 빼앗기게 마련이다. 그린의 얼마 전 새로 산 책상을 놓아두고 걸핏하면 거실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미가 되어 딸아이와 자리싸움이나 하고 있을 수 없어 그저 작은 집만 원망할 수밖에 없다. 우리 방에

도 언젠가 작은 TV을 놓았으면 한다. 그러나 남편은 방안에 놓을 곳도 없고 언제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수 있냐

고 반대를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남편의 회사가 일이 너무 없어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요즘엔 바빠져서 남편은 토요일에도

일을 한다. 은행잔고가 늘어나서 좋긴 하지만 장거리 운전에 오버타임을 하니 피곤한 남편이 안쓰럽게 보인다.

 주중 근무만 할 때에는 남편과 함께 토요일 새벽 기도 후에 의례 찻집으로 향했다. 처음엔 시온마켙몰에 있는 

칼스쥬니어에서 커피와 함께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리고 가져간 신문이나 책을 읽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

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그곳의 썰렁한 분위기가 싫어져서 좀더 나은 곳을 찾다가 우드버리 몰에 있는  파나라

베이커리로 가게 되었다. 그곳은 포인트가 쌓이면 공짜로 빵이나 음료수를 주기도 한다. 토요일 아침은 7시에 문

을 열기 때문에 가끔 일찍 도착하면 차 안에 앉아 기다리기도 한다. 그렇게 파나라 베이커리는 우리가 첫 손님이

다. 그래서 몇몇 직원들은 우리를 알아보고 밝게 맞이한다.

 그곳에 가면 우리는 늘 같은 메뉴를 시킨다. 얇고 네모꼴의 바삭 한 빵인데 보기도 좋고 칼로리도 적을 것 같아

우리는 그 샌드위치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 샌드위치 이름이 스페니식의 낯선 단어라서 기억을 잘 못한다. 그 샌

드위치는 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메뉴 판에도 적혀 있지 않다. 그래서 주문을 할 때면 마치 미국에 처음 온 사

람처럼 손가락 두 개로 얇은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계란과 치즈를 넣어달라고 한다. 오더 받는 직원은 무슨 말인

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하, 하며 무슨 말인지 알아내고는 그 이름을 알려주지만 다음에 주문할 때는 잊

어버리고 또 손가락 주문을 한다. 디저트로는 달콤한 옥수수 쿠키 하나를 시켜 반으로 나눠먹는다. 따로 하나 시

켜 먹는 것 보다 반쪽씩 나눠먹는 게 재미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했다. 그것은 가능하면 탄수화물을 덜 먹

으려는 뜻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정석 같이 맡아놓은 자리는 입구의 정 반대쪽인 맨 끝자리 구석진 곳이다. 남편은 벽을 등지고, 나는

그 앞에 마주 앉아 있으면 다른 테이블과 격리되어 우리만의 아늑한 분위기를 가질 수 있다. 사방 벽 위에는 빵

그림과 사진들이 크고 작은 액자 속에서 예쁘게 걸려있다. 그 자리의 한쪽 면은 주차장을 내다 볼 수 있는 넓은

창이 차지하고 있어서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다.

 번호표를 테이블에 세워놓고 방금 끓여낸 해즐넛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면 웨이츠레스가 커다란 접시 위에 막

토스트 한 따뜻한 샌드위치를 가져온다. 연 브라운 색으로 그릴자국이 난 얇은 빵은 보는 것 만으로도 나를 행복

하게 한다.

 “ 이 빵은 정말 도회적이고 세련됐지? “

“ 그래요.”

 이름 조차 기억 못하는 빵을 먹을 때면 남편은 목소리를 높여 감탄사를 연발한다. 늘 내 손으로 만들어 먹다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편안히 앉아 받아 먹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남편은 회사에서 있던 일, 나는 집안 이

야기를 서로 들려준다. 그리고 남편은 앞에 놓인 컵을 가리키며 글쓰기 강의를 시작한다.

 " 여기 컵이 있어, 그림과 글씨 그리고 색깔이 있지.컵하나를 놓고도 묘사할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지.이것에

포커스를 해봐."

 남편은 포커스를 하지 못하는 나의 단점을 따금하게 지적한다. 

 " 알았어요. 사부님."

  집에서 하면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가 편안하고 아늑한 장소에서 말하면 가볍게 넘어간다.

 집안에서 그린에게 빼앗긴 공간을 이렇게 나마 보상받는 것이다. 토요일이면 늦잠을 자는 그린이 덕에 우리 두

사람이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2012.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