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건너 오두막-깍두기
2014.01.25상세 본문
깍두기 / 이 용우
식탁에 앉아 마늘을 까고 있는데 아내가 궁시렁거렸다. 왜 그러나 하고 부엌 쪽을 넘겨다 보았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던 아내가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서더니 히이, 웃으며 망했다는 표정을 지었
다.
“고춧가루를 너무 들어부었어, 무를 더 사다가 썰어 넣어야지 저대로 그냥 담그면 매워서 못 먹
어. 당신이 얼른 마켓에 가서 무 두세 개만 사와요.”
아내는 그렇게 말하며 미안하다는 얼굴을 했다. 나는 고춧가루를 얼마나 들어부었기에 그러나 하고
부엌으로 가보았다. 바닥에 놓인 스테인 양푼 속에 벌겋게 버무려진 무 조각들이 가득 담겨 있었
다. 고춧가루가 얼마나 들어가야 적당한 것인지 나로서는 짐작이 서질 않았지만, 마켓에 가는 게
귀찮아서 시침을 떼었다.
“괜찮아, 깍두기는 좀 매큼해야 맛있어.”
“그래도 저건 너무 빨개, 매워서 못 먹으면 어떻게 해?”
“매워서 못 먹기는… 당신에게 맵다면 내 입에는 잘 맞는 거지, 그냥 담아봐, 어떤 맛이 나나 한
번 보자고.”
김치는 항상 자기 손으로 담그면서 깍두기는 처음 담아본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실지로 고춧가
루 대중도 제대로 못하는 것을 보니 그 말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가 사람 몸에 얼마나 좋은지 아느냐, 비타민과 단백질의 보고이다, 무는 밥상위의 감초라고 했
다, 총각김치든 깍두기든 무로 만든 것이면 아무 거나 좋으니 한 번 담아봐라, 하고 기회가 닿는
대로 틈틈이 공작을 한 결과 드디어 오늘 그 결실을 맺은 것이다. 아내는 내친걸음에 총각김치까지
담는다고 알타리 무도 서너 단 씻어놓고 있다.
한국 남자들이 대게 그렇듯이 나 역시 짭짤하고 매콤한 음식을 좋아한다. 그런데 아내는 모든 음식
을 싱겁게 먹고 심심하게 만든다.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순한 음식이 몸에 좋다니까 내색하지 않고
먹기는 하지만, 된장찌개속의 시래기를 건져내어 고추장에 비벼먹는 것을 최고의 음식으로 치는 내
게 있어 그것은 적잖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침이면 항상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출근을 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같은 부서의 동료 몇 사
람과 둘러앉아 각자 싸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함께 식사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서로의 반찬을 나
누어 먹게 되는데, 이 때면 어김없이 약간의 소요가 일어난다.
무슨 소리냐 하면, 내 도시락의 음식물을 집어먹은 동료들이 어떤 모습으로든 나름대로의 독특한
반응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입안에 넣은 음식을 오물오물 씹으며 배시시 웃는다던지, 아니면 역시
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미세스 리의 반찬은 종류는 다른데 맛은 다 비슷해요.”
언젠가 뒷일을 하는 미스 오가 아내의 음식솜씨를 그렇게 평했다. 모든 음식이 한 결 같이 싱겁다
보니 콩나물무침이나 시금치무침이나 그 맛이 그 맛이라는 말이었다. 무슨 말에든 참견을 빠뜨리지
않는 H씨가 그 때 역시 큼큼, 헛기침을 하며 턱을 내밀었다.
“네에, 그렇기는 하지만 매일 먹어서 훈련이 되었는지 이젠 홍 여사님 반찬도 먹을만하다고요. 맛
있어요.” 라고 위로인지 빈정거림인지 모를 말로 너스레를 떨었다.
아내는 가리는 음식도 많았다. 오리고기, 염소고기, 돼지고기는 물론 닭고기까지도 잘 먹지 않았
다. 생선 쪽으로도 참치나 민어 같은 제법 고급스러운 것을 선호한다. 바다가 없는 유일한 내륙,
충청북도에서 자란 나의 입맛은 염장 고등어나 꽁치 따위를 기억할 뿐이다. 그런 나와는 반대로 서
해바다 인천을 고향으로 둔 아내는 그까짓 고등어나 꽁치가 무슨 생선이냐며 쳐다보지도 않는다.
소금과 후추를 뿌린 소고기를 은은하게 오븐에 굽고, 셀러드를 드레싱에 묻혀내든가 아니면 삶은
콩에 참치튀김으로 상차림을 마치고는 잘했지, 하는 얼굴로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아내가 부엌바닥에서 끙, 하고 일어서더니 싱크대위에 큰 김치 병 두 개를 턱하니 올려놓았다. 하
나는 푸릇한 잎사귀가 드문드문 섞인 총각김치 병이고, 다른 하나는 깍두기 병이었다. 가만히 바라
보니 과연 깍두기 병은 고춧가루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상당히 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지만 싱
거운 음식으로 뱃속이 니글거릴 때마다 고 매큼한 깍두기로 입가심할 생각을 하니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생겼다.
“수고했어, 여보. 그리고 걱정하지 마, 그 빨간 깍두기 내가 다 해치울게.”
“정말이지? 김치는 찌개라도 해먹을 수 있지만 깍두기 남은 건 아무것도 못해, 당신이 안 먹으면
버려야한단 말이야. 자신 없으면 지금이라도 마켓에 가서 무를 더 사오고.”
“아, 됐다니까 그러네, 깍두기에 대해서는 절대 걱정하지 말라고.”
그때 그린이 위층에서 내려오다가 거창하게 싱크대 위를 차지한 깍두기 병을 보더니 갑자기 손가락
질을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오우, 저거 무서운 거야! 냄새가 무서운 거야, 이우~!”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깍두기의 책임소재를 다투던 우리는 한 목소리로 그린을 향해 항변했다.
“아니야, 깍두기는 무서운 거 아니야! 깍두기는 맛있는 거야!”
2012.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