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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위로한다는 것은

201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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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한다는 것은/ 홍순복

 

 E에게서 카톡이 왔다. 그녀가 운영하는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으란 내용이다. 그녀의 프로파일 사진이 바뀌었

다. 꽃으로 장식된 두 마리 애완견은 앙증맞고 귀엽게 보였다. 메시지에는- 사랑해 애기들-이라고 되었다. 한 마

리는 지난해 죽었는데 또 데려 왔나 싶어 물어보니 죽은 쎄리라고 했다.

 한 동안 E를 볼 수 없었다. 많이 아팠다는 소식에 만난 그녀는 너무 말라 금세 쓰려질 것 같았다. 쎄리가 아파 병

원에 안고 가던 중 자신을 한번 쳐다보고는 그녀 품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언젠가 쎄리가 아프다는 말을 했었다. 남들은 그깟 동물에게 비싼 돈 들여 수술까지 할 필요 있냐고 했지만 쎄리

를 수술 해 줄 거라 했다.

 편애라는 게 있을 법도 했다. 하나는 그저 평범한 강아지이고 쎄리는 사람처럼 뭔가를 아는 특별한 반려견이였

다. 자신이 아플 때엔 다른 식구에게 가서 짖으며 알리는 것부터 달랐다고 했다.

쎄리를 잃고 힘들어 할 때 치유사역자 목사님이 그랬단다.

 “ 집사님, 쎄리는 지금 천국에 갔어요. 이제 그만 정신 차리세요.”

 “ 네,”

 그때 그 한 마디가 정신을 들게 했다는 것이다. 영혼 없는 동물은 죽어 땅으로 가는 것을 알지만 말도 안 되는 말

이 위로가 되더라는 말이다. 지난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쏟아내는 그녀가 이지적이고 차가운 외모보다 여리고

감성적임을 알게 됐다. E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오래전 아기 주먹만 한 오리를 일 년간 키우다

호숫가에 놓고 보름을 울었던 일이 있다. 동물에게도 정이 있는가 보다. 칠흑 같은 어두운 밤 따라오며 울던 이야

기에 더욱 아팠던 기억이다. 오리는 노래를 하면 따라 했고 제 이름을 부르면 열 번이라도 꽥꽥, 하며 대답을 했

다. 그일 후 다신 어떤 동물도 키우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는데 구찌를 어떤 이유로 키우게 되었다.

 요즘에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있자 구찌는 내 주위를 맴돈다. 녀석 때문에 맘 놓고 먹을 수도 없다. 먹는 것 마다

달라고 끙끙대기 때문이다. 제 밥만 먹어야 하는 구찌를 남편이 나 몰래 조금씩 준 것이 버릇이 된 모양이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엔 12시간도 낮잠을 자던 녀석이 요즘은 내 꽁무니를 졸졸 쫒아 다닌다. 컴퓨터 앞에 앉기

라도 하면 내 허벅지를 박박 긁으며 안으라고 한다. 안긴 녀석의 등은 노인처럼 굽고 한껏 잡히던 살은 다 빠지고

등뼈만 만져진다. 녀석과 산지 어느새 14년이다.

 소파에서 잠을 자던 구찌는 내가 위층에라도 오를라치면 소리를 지른다. 그 낮은 높이도 내려오지 못하는 겁쟁

이가 되었다. 한번은 내리뛰다 마룻바닥에 미끄러져 고꾸라진 적이 있다. 구찌 엉덩이를 치며 내려, 내려 밀어내

면 그때야 뛰어내린다. 어릴 땐 침대까지 오를 정도로 점프력이 컸었다. 전 같으면 무슨 소리만 나도 지저대던 녀

석이 한 쪽 귀가 좋지 않아서인지 잘 못 듣는다. 숱이 없어진 곱슬머리는 빗기지 않으면 서로 뭉쳐 볼품없고 눈에

는 눈물이 흘러 주위엔 벌건 색으로 변한다. 발 주변도 빨아서 색깔이 붉은색으로 된다.

 한국 사람이 우리 집에 방문하면 짖지 않고 꼬리를 치고 외국인이 오면 마구 짖는다. 제 눈에도 뭔가 다르게 보

이는 게다.

 오늘은 외출했다 집에 돌아와 구찌를 불러도 기척이 없다. 이층에 제 침대에서 한껏 몸을 구부린 채 잠들어있다.

마미가 와도 몰라, 라고 소리치니 그때야 눈을 거슴츠레 뜨고 나를 바라본다. 그리곤 바로 머리를 이불속에 묻는

다.

 강아지는 영물이다. 주인의 마음을 읽는다. 울기라도 하면 그윽한 눈으로 쳐다보다 내 옆구리에 제 머리를 박고

주둥이로 마구 부빈다. 꼭 괜찮아, 괜찮아, 라고 하는 듯하다.

남을 위로하는 것이 별거 아닌 듯싶다. 누군가 울고 있으면 그 옆에 있어만 줘도 위로가 된다. 올 한 해 나 역시

누군가 위로가 필요할 때 함께 하고 싶다. 거창한 이야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