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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사도의 발

201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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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발 / 이 용우

 

 ‘사도의 발’ 담당 전도사님으로부터 2월 달 리포트가 도착했다. 수입재정은 이 천불쯤 되었고 지출도 엇비슷한

금액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김00/300불, 박00/200불 하는 식으로 이름을 숨긴 수혜자들의 명단과 함께, 각종 재

능 기부자들의 연결 상황도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사도의 발’은 우리 얼바인온누리교회가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취지로 시작한 봉사프로그램이다. 정확하지는 않

지만 한 1년쯤 되었을 것이다. 본당 현관의 서점옆벽에 참여판이 설치되어 도움을 베풀거나 또는 받으려는 뜻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신청서를 작성하여 네모 칸에 꽂으면 된다.

 나는 이 봉사프로그램이 시작된 첫 주간에 참 좋은 사업이라는 생각으로 선뜻 참여를 결정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할까 에서 잠시 고민을 했다. 길은 두 가지밖에 없다. 재능 아니면 재정이다.

 먼저 재능 쪽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가진 재능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생업으로 하는 영화의상 만드는 일이

고, 다른 하나는 문학이다. 헌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두 가지 모두 기부품목으로는 썩 훌륭한 아이템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전자는 혹 원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내 직영사업체가 아니어서 가르쳐줄 형편이 되지 못했고, 후자는 아

예 베품 이라는 종목에 들어갈 수도 없는 호사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사도의 발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는 재정, 즉 돈이라는 품목밖에 없는데… 한 주에 백 달러씩 아

내에게 용돈을 받아쓰는 처지에 얼마를 해야 할지가 고민이 되었다.

나는 몸담고 있는 문학회에 회비를 낸다거나 때때로 회사 직원들과 점심을 사먹고, 가끔은 친구들을 만나 회식

하고 차 마시는 일에 용돈을 사용한다.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린이가 아빠, 인앤아웃, 하면 주저 없이 차를

돌리고, 비전헌금도 내 용돈에서 내고, 매 월 구입하는 ‘생명의 삶’도 가능하면 아내에게 미루지 않는다. 결혼기

념일이나 무슨무슨 날이 되면 아내와 딸에게 선물도 거르지 않고, 1년에 한두 번쯤은 꿍쳐두었던 용돈으로 형제

들을 불러 호기롭게 한 턱 내기도 한다.

가장으로서 그리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나의 얄팍한 용돈은 이렇게 사라져버린다. 그나마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아서 가까스로 이렇게나마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자칫 허세를 부리는 날에는 여

지없이 주머니가 텅 비어버리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절약하여 ‘사도의 발’에 참여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바른 헌신은 나의 희생을 전

제로 하는 것이므로 아내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 아니라, ‘300 불이냐 400 불이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그 때 나의 고

민이었다. 처음에는 500달러는 해야지 하는 작정을 했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서 그건 한 달 용돈이 넘는 액수

인데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럼 한 달치 용돈? 하고 후퇴 했는데, 또 하루가 지

나자 그것도 버겁다는 마음이 생겼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피하고 그린이 좋아하는 인앤아웃도 줄여야 한다고 생

각하니 조금 우울해졌다. 거룩했던 순수가 현실과의 타협에 의해 자꾸 쪼그라들었다. 그런 지난한 길을 통과하

여 결국 가장 낮은 헌신을 어렵사리 실행할 수 있었다.

 올 해의 사순절을 지나며 언 듯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마침 ‘사도의 발’ 리포트가

도착했다. 그래서 아, 그렇지, 사도의 발이 있었지, 하는 깨우침을 받았다.

 우선 지난 해 보다 적게 해서야 되겠느냐는 기특한 마음이 생겼다. 그렇지만 길이 잡히자 지난해처럼 고민은 역

시 시작되었다. 사백 달러냐, 오백 달러냐,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