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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 건너 오두막 – 종이 비행기

2018.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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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비행기 / 용우

  송구영신예배 후에 버려야 할 것들을 종이비행기에 써서 날리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주일 낮 예배에서 ‘변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다!’라는 권 목사님의 설교말씀이 마음에 남아 있었기에 비행기 양 날개위에 ‘고집’‘화냄’이라고 굵직하게 썼다. 그랬더니 옆에서 곁눈으로 힐긋 쳐다보던 아내가 톤을 한껏 낮춘, 그러나 아주 통쾌하다는 음성으로 “옳지, 잘하네!” 했다. 나는 웃음이 나면서도 짐짓 ‘당신은 자신의 버릴 것이 무엇인지나 찾아봐!’하는 표정으로 눈을 째렸다.

 아내와 나는 지난 이삼 일간 근래 드물게 심히 다퉜다. 나는 ‘처가 형제들 다 불러다 놓고 따져보자, 누가 틀렸나!’ 했고, 아내는 ‘저렇게 아내 말을 안 듣는 사람하고 어찌 살겠어.’ 라는 말까지 했다. 송구영신예배를 앞두고 내가 물러서며 극적으로 화해를 했지만 지금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아내가 틀리고 내가 옳다는 생각이 여전히 남아 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내 탓으로 돌리고 져준 것이다.

 나는 ‘고집’ ‘화냄’이라고 쓴 종이비행기를 힘껏 날렸다. 아내가 이번에도 또 “옳지, 잘하네!” 했다. 그런데 내 앞에 앉은 나이 지긋한 권사님이 당신 의자 밑에 있는 종이비행기를 꺼낼 생각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나는 얼른 그 분의 의자 밑에 있는 종이비행기를 꺼내어 어깨너머로 건네주었다. 그랬더니 그 권사님은 힘을 얻은 듯 벌떡 일어나 종이비행기를 앞으로 날렸다. 예상외로 멀리까지 날아갔다. 나이 많은 여자 분의 손짓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멋진 비행이었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옳지, 잘하네!”

 불쑥 튀어나온 내 칭찬에 권사님은 얼굴을 돌려 나를 쳐다보며 유쾌하게 웃었다. 나도 웃고 아내도 웃었다. ‘옳지, 잘하네!’ 라는 감탄사가 존칭어미를 생략한 채, 아주 딱 맞는 상황에 사용되어서 빛을 발했다.

 아내와 내가 서로 신통한 짓을 할 때면 사용하는 이 ‘옳지, 잘하네!’라는 칭찬 겸 감탄사는 You Tube에서 배운 말이다. 양팔 없이 태어나 친부모에게서 버려진 태호라는 아이가 사회복지시설에서 양육되는데, 네 개뿐인 발가락에 숟갈을 끼워 밥을 먹고, 온몸을 데굴데굴 굴려 방을 옮겨 다니면서도 ‘옳지, 잘하네!’를 연발한 데서 차용해 왔다. 이 아이는 심장에도 질환이 있어 이미 여러 차례 수술을 했고, 입천장도 갈라진 중증 장애아이면서도 함께 수용된 다른 장애아들에게 글씨도 가르쳐주고 놀이도하며 때 마다 ‘옳지, 잘하네!’라고 동네아저씨처럼 능청스러운 억양으로 칭찬을 한다. 아내와 나는 그 영상을 함께 시청하며 감동을 받았고 그 감동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옳지, 잘하네!’를 우리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예배당을 가득 매운 교우들은 자기 주위로 날아온 종이비행기를 되 집어 던지며 한껏 즐거워했다. 모든 근심과 걱정거리를 가는 해에 날려버리고 산뜻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너나없이 힘껏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아이들은 까르르거리고 어른들은 하하 웃었다. 그러던 중 나는 발밑에 날아 내린 종이비행기를 집어 들어 던지려다가 팔짓을 멈추었다. 문득 그 종이비행기에는 어떤 사연이 쓰여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나는 손바닥위의 예쁜 연보라색 종이비행기를 살며시 펴보았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나는 종이비행기를 뒤집었다. 그랬더니 비행기몸체 뒤쪽, 모아진 종이를 삼각형으로 접어 올려 매듭지은 꼬리부분에 가늘고 작은 글씨들이 빼곡이 적혀있었다.

-그리움

우울

약한 체력

섭섭함

자존심

몸의 질병

슬픔 ————-

‘병을 견디는 것’이라는 글이 하나 더 있었지만 아래쪽의 ‘몸의 질병’과 겹치는 것 같아서 생략했다. 아무튼 그 보라색 종이비행기에 글을 쓴 주인공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가늘고 작은 글씨체로 보아 여성일 거라는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종이비행기를 펼쳐 남의 사연을 훔쳐보는 남편이 못마땅했던지 지켜보던 아내가 또 한 마디 했다.

 “그런 거 읽으면 그 사람 위해서 기도해줘야 돼, 남의 아픔을 알았으면 신자로서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거라구.”

 아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내 마음은 몹시 무거워져 있었다. 그 보라색 종이비행기에 나열된 7가지 항목은 남녀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품고 있기에도 너무나 버거운 것들이 아닐 수 없다. 우울, 몸의 질병, 슬픔…. 단순한 낱말만으로도 어둡고, 아프고, 더 나아가 어떤 위기감까지 느껴지게 하는 단어들이다.

 공연히 봤다는 후회감이 들었다. 이제 와서 모른 척 종이비행기를 되 날려 보내며 ‘옳지, 잘하네!’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슬그머니 버리자니 죄책감이 들고, 손에 쥐고 있자니 어색했다. 나는 종이비행기를 얼른 바지주머니에 찔러 넣어버렸다. 마침 새해를 시작되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있었다.

 “칠, 육, 오, 사, 삼, 이, 일! 와아!” 교우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모든 걱정근심은 묵은해에 버려지고 마침내 새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