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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남편의 소원/홍순복

2018.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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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소원/홍순복

 

 오랜만에 아침밥을 지었다. 고장났던 압력솥은 수리후 힘차게 김을 뿜어낸다. 소리가 요란하다. 남편은 밥솥을 바라보며, 이제 됐네, 밥맛이 좋겠다, 했다. 국과 김치 뜨거운 밥을 놓고 그가 기도를 올린다. 

 "주님, 감사합니다.아내가 주일 아침에 밥을 지었습니다. 이제 오늘부터 함께 예배드릴 것을 생각하니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성가대 봉사를 하는 나는 매주일 아침 6시에 일어나 그의 잠을 깨운다. 아침밥을 차려놓지 못하고 교회로 향한 것이 어느덧 8년이다. 

 어느날 내가 먼저 가요, 아침 차려먹어요,했는데 남편의 대답이 없었다. 언제나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알았어, 하고 짧게 대답했었다. 내가 재차 물었더니 그제야 겨우 퉁명스럽게 언제 밥 한 번 차려줬어? 이제 그만 성가대에서 내려올 수 없어? 나 정말 혼자 교회가기가 싫단 말이야. 나 좀 챙겨줘, 라는 그의 목소리가 애원처럼 들렸다. 

 그린이가 차를 갖게 되면서부터 남편은 혼자 교회를 간다. 그러니까 우리 세 식구는 모두 따로따로 교회를 가는 것이다. 오랫동안 장거리 출퇴근에 지친 남편은 가까운 거리도 운전대를 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토요일 새벽예배나 같이 외출을 할때면 내 옆에 앉아 너무 행복해 한다. 

 남편은 예배시간에 싱글처럼 홀로 앉아 예배를 드리는것이 싫다고 했다. 특히 축복송을 부를 때 손을 뻗혀 옆사람 혹은 앞뒤로 인사를 할때는 괜히 주눅이 들고 위축된다고 했다. 혹 자기 옆에 여자교인이 자리하면 더 곤혹스럽다고 했다. 그럴때 아내가 같이 있으면 활짝 웃으며 축복송을 부를 수 있을텐데 , 하며 푸념을 했다.

 나는 많이 망설였다. 여고때부터 하던 성가대를 접는다는 생각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동안 남편은 한 번도 속내를 비치지 않아서 눈치를 못챘다. 언젠가 내 목소리가 플랫 될 쯤에 나 스스로 미련없이 그만 두리라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몇년 더 할 자신이 있다. 결국 나는 남편의 요구에 순응하기로 했다.

 지난 연말부터 남편은 기회만 있으면 만나는 이들에게 아내와 함께 예배당에 가게 되요, 라며 공공연히 공표를 했다. 그러면 듣는 이들은 모두 진즉 그랬어야 했다며 그의 편을 들었다.

 나는 성가사님에게 1년간 쉬겠다고 하자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다른일도 아니고 가정사역이니 조금 쉬다가 다시 오라고 했다. 엘토파트에서 나와 각별한 사이인 K권사님의 반응도 대단했다. 나에게 엘토 음잡이라고 추켜세우면서 제발 내려가지 말라고 달래기도 했다. 그러다 나의 사정을 듣고는 남편이 원하니 한 6개월만 쉬고 다시 합류하라고 했다. 우선은 1년간 남편과 함께 한다고 약속했는데 K권사님이 그렇게 간곡히 말하자 마음이 흔들렸다.

  2부 성가대 엘토파트는 특별하다. 내가 유방암 수술을 받을 때 집으로 찾아온 대원들 가운데 6명이 유방암이었다고 했다. 나는 넘버 세븐이 됐다. 당시 14명의 대원중에 어떻게 이리 많은 사람들이 같은 병을 앓았을까 의아했다. 근래에 위암병력이 있는 전직 닥터 권사님이 와서 8명이 됐다. 여유있는 권사님들은 돌아가며 점심을 쏘기도 한다. 주로 나이든 권사님들이라 오고가는 대화가 솔직해서 수위가 높지만 그래서 더 즐겁고 재미나서 늘 웃음바다를 이룬다. 이렇게 우리 엘토 파트는 화기애애하고 사랑이 넘친다. 나도 이런 성가대를 내려가기 싫다. 나처럼 성가대를 내려오라 하는 남편들은 없다. 여자 혼자 성가대를 하는 남편들은 아내들의 연습이 끝나길 조용히 기다린다고 했다. 사실 남편의 목소리는 미성이고 노래를 잘한다. 언젠가 함께 성가대에 서자고 했을 때 자기는 불편한 다리로 오래 서 있기도 힘들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이 편치 않다고 했다. 

 새해 첫 주일날 그의 옆자리에 앉은 나는 이상하리만큼 어색했다. 나는 늘 강단위에 서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밑에서 거기를 바라봐야 하니 쓸쓸하고 서운했다. 시간이 되자 성가대원이 줄을 지어 단에 올랐다. 모두 자리를 잡고 서서 찬양하는데 나만 거기에 없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자리에 남편을 돌아보니 흐믓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다. 

 가장 젊은 삼십대 J자매는 직장을 잡아 엘에이로 가게 됐고 40대 파트장인 S집사는 아들이 대학가기전에 함께 시간을 갖기 위해 6개월을 쉰다. 이젠 엘토의 연령대가 60대에서 70대 흰머리 소녀들이다. 내가 처음에 성가대를 시작할 때 소프라노와 엘토 경계에 서게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자리를 모두 피했다. 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고 서면 옆의 소프라노의 눌려서 음이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습을 더하게 됐다. 

 아무리 귀 기울려도 엘토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올라가 목소리를 내고 싶다.  좀 더 크게 부르세요, 나는 하마터면 소릴 지를뻔 했다. 

 엘토들의 수다와 웃음, 아침으로 먹는 간식시간, 함께 했던 기차여행과 콘서트 공연, 연습가운데 느껴지는 뜨거운 마음과 기쁨, 매달 작은 돈을 모아 선교지로 보내는 일, 어려운 일이 있을때 함께 기도하던 시간들이 그립게 생각난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남편은 아이처럼 좋아했다. 당신하고 함께 가니 정말 좋아, 하며 손을 번쩍 들어 흔든다. 

 나는 흔들거리는 차창너머를 바라보며 혼자 궁리에 빠져본다. 6개월, 아니면 1년 후에 다시 성가대에 설 수 있을까? 저렇게 좋아하는 남편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