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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기도의자

2018.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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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자 / 이 용우

크리스마스를 한 주 앞두고 전 수영권사 댁에서 성탄파티가 있었다. 우리 기쁜 6순의 여섯 가정이 선물 하나씩을 들고 와 서로 교환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그렇게 모임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말했다.
-여보, 예담이 엄마가 말이야 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송구영신 새벽기도회에 자기도 참석하겠데, 목사님이 보여준 기도의자를 꼭 받고 싶다는 거야.- 아내의 말에 나는 슬며시 웃음이 났다. 새벽기도의 중요성을 길게 설명하는 대신 슬그머니 기도의자를 들어 올리며 짓던 권 목사님의 자신만만한 미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도의자는 단동에 있는 선교사님들이 만들었다고 하니 의미가 더 남달라 보였다.
-그래? 힘들 텐데, 하루 이틀이면 몰라도. 어떻게 세 주간을 새벽마다 아이를 깨워서 데리고 나온다는 거야?-
-예담이가 한 번 잠들면 아침에 흔들어 깨울 때까지 자는 아이라며 자기 혼자 얼른 새벽기도에 다녀가겠다고 하네. 난 좀 걱정스러운데.- 나는 강하게 반대했다.
-무슨 소리야, 아이들이 엄마가 곁에 있으니까 맘 놓고 자는 거지 없어봐, 당장 잠을 깨서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고, 그건 안 돼, 새벽기도에 오려면 아이를 들쳐 업고라도 데리고 와야지 집에 혼자 두고 오는 건 위법이야.- 내 말에 아내는 맞는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뭔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글쎄 나도 그렇게 생각해. 헌데 그 기도의자가 꼭 갖고 싶은가봐, 예담이 엄마가 그동안 사십일 작정기도를 해왔는데 송구영신새벽기도회 시작할 때쯤 끝나나봐, 그러니까 자기 생각에 기도를 더하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이 든 거지. 기도의자 받아서 계속 릴레이기도를 이어가겠다는 마음이 들 수도 있는 거잖아?- 아내의 말에 가슴이 찡했다.
S자매는 아내와 일대일 공부를 한 인연으로 우리 순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림에 소질이 있는 다섯 살짜리 딸 예담이를 데리고 사는 싱글 맘이다. 연예인 같이 아름다운 외모에 자존심이 강하고 매사 똑 부러지는 성격의 현대여성이다. 첫 순예배 나눔 시간에 ‘자신의 결핍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겠다.’ 라고 말해서 공감을 얻었다. 허지만 현실은 결심만으로 순항이 보장되는 세상이 아니기에 그녀는 40일 작정기도를 하고도 기도의자의 필요성을 더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드디어 송구영신 새벽기도회가 시작되었다. 집을 나서며 아내에게 물었더니 S자매가 아이를 깨워서 같이 온다고 했단다. 내가 ‘그거 잘 될까, 하루 이틀이면 몰라도’ 했더니 아내도 ‘글쎄 말이야, 이따 전화해보면 알겠지’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아무래도 S자매가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궁리를 했다.
-우리 부부가 받은 기도의자 하나를 S자매에게 줄까? 아니야, 안 받을 거야. 분명 그녀는 불편해 할 거야, 차라리 퍼즐 하나를 더 받아서 S자매 몫으로 만드는 게 좋겠어, 우리가 받은 의자를 줄게 아니라 완성된 퍼즐 판을 주면 그녀도 덜 미안하고 좋아할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본당로비로 들어갔다. 새벽기도회 첫날이라서 그런지 장로님들을 비롯한 안내봉사자들 여럿이 출입구 양쪽에 늘어서서 퍼즐 판을 나눠주고 있었다. 나는 어떤 봉사자에게 가서 하나 더 달라고 하면 좋을까 눈치를 살폈다. 김재동 장로님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그 앞에 서자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작기 몫을 주었는데 하나 더 달라고 하면 이상하게 볼 거 같았다. 기도의자 하나 더 받겠다는 욕심을 뻔뻔하게 드러내는 꼴이었다. 얼른 생각을 바꾸었다. 지금이 아니라 기도회 끝나고 나올 때 말하자, 그게 좋겠어. 그래서 나는 멈칫거리다가 그냥 본당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나는 주중에 새벽기도회를 가면 목사님 설교가 끝나고 기도가 시작될 때 곧 바로 일어서서 본당을 나온다. 출근시간에 쫓겨서다. 그러므로 우리 부부는 차를 따로따로 운전해 간다. 나는 떠나고 아내는 교회에 남아서 더 기도한다.
내가 출입문을 향해 바쁘게 걸음을 옮기며 살펴보니 본당 뒷벽 앞에 퍼즐 판을 쌓아놓은 테이블이 보였다. 소등을 해서 어둑어둑한 실내를 헤집고 다가가보니 여분의 퍼즐이 쌓인 작은 접이식테이블에 김재동 장로님이 얼굴을 묻은 체 기도하고 있었다. 주변의 다른 교우들도 모두 목사님의 인도에 따라 통성기도를 하느라 머리를 숙이고 열심이다. 나는 김 장로님을 깨울까(이 말이 맞지 않지만)하다가 열심히 기도하는데 방해가 될까 싶어 그냥 퍼즐판 하나를 들고 나왔다. 어차피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라고 놓아둔 것이니 구지 기도하는 장로님을 성가시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저녁에 직장에서 돌아온 내가 S자매가 새벽기도회에 왔느냐고 아내에게 물었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아이를 깨워 업고 3주를 완주할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대책을 마련해놓았으니 걱정 말라고, 꼭 필요한 사람이 기도의자를 받게 해주겠다고 큰소리 쳤다. 그러자 아내는 어떻게? 하며 자꾸 꼬치꼬치 물었다. 나는 매일 퍼즐 하나씩을 더 받아서 마지막 날 S자매에게 완성된 퍼즐판을 주련다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퍼즐조각은 매일 하나씩 가져오면 되지만 판이 없잖아?-
-있어, 내가 오늘 아침에 나오면서 하나 가져왔어.-
-아니, 그 큰 걸 훔쳤어?-
-이 사람아, 말조심해, 훔치다니! 필요한 사람 가져가라고 쌓아 둔거 하나 가져온 거지, 훔치기는 뭘 훔쳐!-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깔깔 웃었는데, 그 후로도 아내는 한 번 더 ‘퍼즐 훔치는 거 잘하고 있어?’ 라고 물어서 나의 면박을 받았다. 아내와 나는 S자매를 위해 퍼즐 한 판 더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비밀로 하자고 약속했다. 아내가 가끔 S자매 퍼즐 잘 맞추고 있는지 묻는 이유는 이렇다. 우리 부부 퍼즐은 아침에 교회를 같이 가니까 아내가 집으로 가져가고, S자매의 퍼즐은 내가 출근하며 들고 나와 차 안에 두기 때문이다. 아내는 퍼즐 두 판을 우리 집 리빙룸 티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나는 차 뒷좌석에서 한 판을 맞추고 있는 거다.
-여보, 예담이 엄마에게 이번 토요일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라고 해. 순장님이 기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기도의자를 줘야한다며 하나 받을 수 있게 해준다고, 예담이 깨워서 마지막 날 하루 만은 꼭 참석하라고 말해.-
나는 송구영신새벽기도회가 끝나는 마지막 주간이 되어 아내에게 그렇게 말했다. 닭살 돋게 내 입으로 ‘순장님’을 앞세운 것은 어쩌면 계면쩍어서 안 올지도 모르기에 순장이라는 영적 권위에 복종한다는 명분을 주기 위해 그렇게 했다. 그래서였을까, 새벽기도회가 끝나는 날 예배 후에 아내가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왔다!’ 하고 얼른 뛰어가더니 S자매를 데리고 왔다. 제 엄마 손을 잡은 예담이도 눈을 또랑또랑 굴리며 관심을 보였다.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다가온 S자매는,
-혹시 순장님이 타신 것을 제게 주시려는 거 아니에요?- 했다.
-아니요, 우리 것은 여기 두 개 있잖아요. 자, 오늘 퍼즐 두 개 받았지요?- 하자 네, 하며 예담이가 들고 있던 퍼즐조각 두 개를 내밀었다. 나는 마지막 두 개가 비어있는 퍼즐 판을 주며 말했다.
-이 두 빈칸을 그 퍼즐로 채우고 저 줄에 가서 기도의자를 받으세요.- 그제야 S자매는 평안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순장님. 우리 같이 가서 받아요.- 우리는 줄에 서서 기도의자를 하나씩 받아들고 식당으로 들어가 봉사자들이 마련한 무 소고기국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였다. 저녁에 퇴근해서 돌아오니 아내가 여보,여보, 하며 팔을 붙잡아 안으로 끌어들였다.
-뭐야? 왜 그래?-
-여보, 글쎄 예담이가 그 기도의자에 앉아서 기도를 한다네!-
-그래? 예담이가? 그거 정말 할렐루야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