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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눈물의 힘/이용우

201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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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힘 / 이용우

목사님이 읽어주는 편지사연에 감동되어 가슴이 짠해있던 중에 언 듯 앞자리를 바라보니 젊은 여자가 울고 있었다. 줄무늬머플러를 목에 두른 여자는 양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쳐냈다. 가만히 눈물만 흘렸더라면 뒷자리 사람이 몰랐을 텐데, 그녀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지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두 손으로 자꾸 눈물을 닦았다.
편지는 우리 교회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위암이 발견되어 한국으로 돌아가 투병하고 있는 지 은영이라는 자매의 글이었다. 권 목사님은 본인의 허락을 받았다며 주일예배시간에 부분 낭독을 하셨는데, 암환자 답지 않은 차분한 심경고백이 오히려 듣는 이의 감동을 배가시켰다.
내외가 모두 전문의로서 자기 영역에 충실하고, 더하여 두 자녀를 둔 화목한 가정의 아내요 어머니로 살다가 느닷없이 닥친 고난을 담대히 이겨내는 사연이었다. 예수를 믿고 오히려 집안에 불어 닥친 여러 나쁜 일들에도 시험 들지 않고 꿋꿋이 이겨내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시험은커녕 되려 감사가 넘치는 삶을 선택했다. 역시 자신처럼 투병 중인 어머니가 불평하지 않는 것도 감사하고, 수술비 비싼 것까지 감사하다며 기분 좋게 잘 먹고 잘 산다고 했다. 감사 일기를 스무 개도 넘게 쓴다고 한다.
암 덩어리를 떼어 내기보다 살살 달래어 좋은 세포로 만들어 살겠다고,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사랑한다고 말했다는 대목에서, 그리고 문병 온 친구들에게 나 일찍 안 죽는다며 오히려 나물 무치고 곰탕 끓여주었다는 내용을 읽을 때, 앞의 여자는 더 자주 눈물을 닦아냈다. 남편이 분명한 그녀 옆자리의 남자는 여자의 눈물을 외면한 채 시선을 강단위에 두고 있었다. 여자의 눈물을 이해하기에 충분히 울도록 내버려두는 모습같이도 보였다.
나도 아픈 이를 생각하다가 울며 기도할 때가 있다. 여자처럼 연신 손으로 씻어내며 울만큼 풍성하지는 않지만 나름 간절한 마음으로 환우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한 두 줄기 뜨거운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
내가 드리는 매일의 기도 속에는 다섯 사람의 병자들 이름이 들어있다. 교우도 있고 친지도 있고 문우의 젊은 딸도 있다. 기도명단에 오른 지 칠 팔년이 넘은 사람도 있고, 일 년이 채 안 된 이도 있다. 따라서 어떤 이의 이름은 타성적으로 덤덤하게 부르고, 어떤 이름은 뜨겁게 부르게 되는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그 중 우리 교회 성찬위원으로, 또 가장 순원이 많은 리저월드의 순장으로 열심히 봉사하는 김 영대장로님의 이름을 부를 때면 언제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예배 후에 로비나 식당에서 만날 때마다 항상 온화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먼저 악수를 청해 오던 장로님이 폐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많이 놀랐다. 그것도 어느 토요일 아침 새벽예배시간에 목사님이 말씀하셔서 알게 되었다. 늘 사랑하고 존경하며 바라보던 분의 아픔을 공식적인 발표가 있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는 자책감이 더해져서 죄송한 마음이 한층 더했다.
이렇게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릴 때면 하나님께서 내 마음눈물을 어여삐 보시고 아픈 이를 고쳐주시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갖어 본다. 가슴 깊은 곳에서 영혼의 두레박으로 퍼 올린 눈물을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시리라는 믿음을 품어보는 것이다.
앞자리 여자의 눈물 또한 암 투병을 하는 편지의 주인공이 안타까워서, 아니면 그녀 자신도 비슷한 아픔을 지녔거나 또는 부모형제 지인 중 특정인을 대비하여 흘리는 것이리라 짐작하며, ‘눈물의 힘’을 생각해 보았다.
인간의 모든 행위에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에너지를 바탕으로 생산된 결과물은 크던 적든 어떤 힘을 갖게 된다. 그렇게 생성된 힘은 필경 어떤 대상을 향해 달려갈 것이고 그 것에 영향을 끼칠게 분명하다. 말에도 파워가 있어서 ‘말이 씨가 된다’ ‘말 대로 된다’ 라는 말이 있다. 말(언어)의 힘이다.
물은 사물을 녹인다. 평범한 물의 힘이다. 보통의 물이 이럴진대 사람의 영혼감정을 통해 생성된 눈물이 얼마나 큰 파워를 가졌을 지는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사망했을 때 영국전역은 큰 슬픔에 빠져들었고 수많은 영국인들이 울었다. 그 이후 영국에서는 우울증이나 정신환자들이 크게 줄었다 한다. 이를 다이애나 효과(Diana effect)라고 불렀는데 이는 눈물이 치유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며, 이것이 사람이라는 종種이 생존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한 ‘눈물의 힘’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므로 오늘 앞자리 여자의 눈물이 누구를 향해 흘렸던지 그 ‘눈물의 힘’을 받는 대상은 사람의 생존에 기여하는 힘을 받아 치유와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으리라고 본다. 기쁨과 평안이 인간적인 데서 비롯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라고 고백하는 종이라면 ‘눈물의 힘’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지극히 낮은 자세로 엎드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