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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이런 사람

2018.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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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 / 홍순복

베드민턴장으로 들어서니 긴 양복바지차림의 중년남자가 보였다. 그는 구경꾼처럼 무뚝뚝한 얼굴로 게임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인데 기억이 안 났다. 신입회원같아 보였다. 같은 취미를 갖고 만나는 사람이면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인사부터 건넨다. 그런데 언뜻 생각이 났다. 알루미늄 벤치에 앉은 그에게 가서 인사를 했다. 혹시 온누리교회에 다니지 않으세요? 라고 묻자 네, 하며 놀란 듯 삐딱한 몸을 바로 세웠다.
토마스이다. 교회 피크닉에서 내 앞 테이블에 앉았고 사람들과 잘 섞이지도 못했다. 그러다 불쑥 분위기가 맞지 않는 생뚱맞은 말을 해서 썰렁한 적이 있었다. 언젠가 토마스가 우리 앞을 지나칠 때 남편이 기원에서 같이 바둑을 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때 남편은 담당목사님을 통해 들은 싱글남인 그의 사연을 말해주었다. 미국 이민을 와 타주 아주 외딴 도시에서 살았는데 초등학교를 나오고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고 했다.
그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메디컬닥터였고 어머니는 신교육을 받은 인테리였다. 형도 근처에서 카이로프렉터로 개업을 하고 있고 부족함이 없는 좋은 환경의 가정에서 머리도 좋아 메디컬스클을 갔단다. 하지만 따돌림을 당한 후 자신감이 없고 대인기피증이 생겨 학교도 중단하고 아직껏 나이 많은 홀어머니와 살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이름을 안다는 게 신기했던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나를 본 적은 없지만 남편이름을 대니 안다며 반가워했다. 바둑도 같이 두었다며 남편이 자신보다 훨씬 급이 높다고 칭찬을 했다. 어떻게 베드민턴장에 왔냐고 묻자 성당의 신부님이 소개했다고 했다.
함께 연습과 게임도 했다. 그는 50대 후반의 미혼이다. 왜 결혼을 안했느냐고 묻자, 안한 게 아니라 사람을 못 만났다고 했다.
“ 어려서 이민 왔어요. 타주에 살다왔는데. 나는 영어가 더 편하지만 한국사람과 어울리다보니 한국말만 해요. 나는 1.5세인데 1세도 2세도 맞지 않아 결혼할 기회를 놓쳤어요.”
직업은 있는지 물었다. 내 딴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 일 같지 않은 일을 하고 있어요. 나는 자유로워요. 행복하고요. 그냥 이렇게 살다가 가는 거죠.” 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어두움이 살짝 드리워졌다.
“나이가 들수록 누가 옆에 있어야죠. 잘못된 것을 지적해주면 고칠 수 있어요. 그래서 더욱 의지할 사람이 필요해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요 제가 눈이 좀 높아요. 예쁜 여자를 좋아해요.”
라고 말하는 그에게 예쁜 여자는 백치미라고 하니 그 뜻을 몰라 멀뚱히 쳐다봤다. 머리가 스마트하지 않다고 했더니 피식 웃으며 가버린다. 아직도 예쁜 여자를 고르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베드민턴장에 소문이 돌았다. 토마스가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유인즉 혼자 앉아있는 그에게 어떤 회원 한 사람이 같이 치자고 하자 ‘나 좀 그냥 나둬요.’ 퉁명스런 어조로 말했다 한다. 아마도 사회생활에 적응을 잘 못하는 그가 사람들의 친절에 오히려 반응을 보인 게 아닌지 추측해본다. S언니는 내게 와서 토마스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어릴 적 정신적 트라마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이해를 시켰다.
극히 내성적인 아들을 옆에 끼고 산 것이 토마스 어머니의 특별한 사랑 법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의 그를 만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부실한 아들을 사회로 내몰았다면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모난 부분도 둥그러지고 어두운 성격이 밝게 변했으리라 믿는다. 어머니의 지나침이 그 앞의 걸림돌이 된 건 아닐까? 그의 바람대로 예쁜 여자를 만나 데이트하고 사랑하여 결혼도 했을 것이다. 조금만 그를 부추기며 길잡이가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엄마의 노파심이 우리 안에 가두어 비상할 수 있는 날개를 잘라냈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날갯짓 한 번 못하고 엉거주춤 앉은 자신을 보며 운명이라고 여기며 사는 건 아닌지.
나도 내성적인 성격이라 많은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했다. 한 번 사귀면 평생을 갈 정도로 꾸준하지만 힘든 시기가 있었다. 가정환경이 같았던 중학교 때 친구가 여고 내내 다른 반에 배정되어 새 친구 사귀기가 힘들었다. 금세 친구를 만드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베드민턴회원들이 말하길 내가 토마스에게 관심을 가져주니 요즘엔 농담도 하고 잘 웃는다고 했다. 나는 토마스같은 사람을 보면 자꾸 마음이 써진다.
게임에 들어서면 누구나 셔틀콕을 들고 등장한다. 오늘도 그는 라켓만 달랑 들고 섰다. 셔틀콕을 구입하라고 하자 사야하냐고 되묻는 그에게서 남다른 면을 본다. 나는 그에게 셔틀콕 몇 개를 빈 통에 덜어주었다.
먼저 일어서는 그는 식당으로 혼밥을 먹으러 간다 했다. 자주 나오라는 내말에 그는 손을 들어 답했다. 돌아서 가는 쓸쓸한 등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