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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흉터/ 홍순복

201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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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 홍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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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도드라져 올라온 내 얼굴에 주사를 놓으며 혀를 찼다. 이 시대에 이런 시술을 하는 사람도 있는지 기막히단 표정을 했다. 처음으로 얼굴에 주사를 맞았다. 바늘이 들어가는 찌릿찌릿한 소리가 진저리를 치게 했다. 늦게나마 의사를 찾은 것이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어떻게 전문의도 아닌 미용사에게 평생 지켜온 얼굴을 함부로 내밀 수 있느냐며 나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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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자신이 피부암 전문의이며 12년을 힘들게 공부했는데 누가 더 잘 하겠냐며 날카롭게 질문했다. 무지한 나는 그저 네, 만 연발했다. 흉터는 어쩔 수 없어요. 그냥 가지고 살아요, 라고 말했다. 한국말이 어눌한 그녀는 한껏 마음 상하여 있는 내게 구굴의 번역기처럼 직역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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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으로 흉터를 가리면 대충 남의 시선을 끌진 않지만 운동 후 땀을 닦고 나면 덴 흉터가 빨갛게 드러난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연거푸 물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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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언니들 말을 듣는 게 아니었다. 작은 언니 따라 미용실을 옮겨 다녔다. 멀지만 가격도 저렴하고 헤어컷을 잘한다고 했다. 몇 번을 거듭해서 파마와 헤어컷을 했지만 흡족하진 않았다. 딱히 갈 곳이 없어 그냥 저냥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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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미용사 얼굴에 검은 딱지가 붙었다. 열두 개는 되는 것 같았다. 어느 것은 딱지가 떨어지는 중이었다. 자기 손님 중에 이런 비법으로 해서 말끔한 얼굴을 가졌다는 것이다. 레이저보다 검버섯이나 기미를 확실히 제거한다는 거였다. 그런데 눈물 빼는 시술이라고 했다. 그 미용사 미셀은 평소 말발이 세다. 검증되지 않은 어떤 지론도 그녀가 말하면 진리처럼 들렸다. 예를 들면 머리카락이 빠지는 이유는 매일 머리를 감지 않아서란다. 머리가 빠지고 나는 것이 정상인데 말이다. 매사에 자신만만했다. 그녀는 금발이다. 금발로 염색한 이유는 화장을 안 해도 별로 티가 나지 않아 좋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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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마를 한 후 집으로 가려고 문밖으로 한 발을 내 디딜 때 언니들이 내게 말했다. 너도 한 번 해보렴. 이거 보기 싫은데, 하며 내 얼굴을 가리켰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의심 없이 미셀에게 얼굴을 맡겼다. 그녀는 급히 방으로 가더니 빙초산에 밀가루를 개어 내 얼굴에 발랐다. 그녀 말처럼 금세 눈물이 쏟아졌다. 그 보기 싫은 검버섯이 사라진다면야 이깟 눈물이야 얼마든지 흘릴 수 있다고 입을 앙다물었다. 자신이 빙초산을 구입하려고 여러 군데 다녀 겨우 샀다며 수고를 알아달란 말처럼 했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10불짜리 한 장을 건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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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C는 다섯째 중에 막내인데 늘 언니들 말을 듣고 살았단다. 그런데 이제는 언니들이 치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결정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단다. 이젠 언니들의 말을 귓등으로 듣는다고 했다. 이젠 남의 말을 듣지 말라고 내게도 당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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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주사를 맞았다. 경과를 보면서 더 와야 한다고 했다. 얼마 전 20대 베트남 여자도 나와 같은 이유로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1주일 만에 와서 나보다 나은 경우이지만 나는 1달 반이 넘어 치료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것도 한류바람인지 월남 촌까지 알려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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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말로는 오른쪽 광대뼈 옆은 예민한 부분이 아닌데 내 피부는 특별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엎질러진 물이니 주워 담을 수도 없어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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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제조했다는 연고를 알았더라면 이지경은 되지 않았을 텐데 쓰라린 후회를 한다. 자동으로 손이 얼굴로 간다. 눌러본다. 더 바라지 않고 1cm 크기로 올라온 살이 납작해지기만 한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온 얼굴에 덕지덕지 딱지진 미셀의 얼굴은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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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남의 말을 듣고 낭패를 본 기억이 없다. 허술해 보이는 성격이라 남들이 쉽게 접근하긴 했지만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다. 이번엔 쉽게 넘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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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누군가가 얼굴을 바라보며 왜 그러냐고 했다. 반창고로 가리고 다닐까 생각도 해본다.
나는 카톡에 저장된 미셀의 이름을 힘주어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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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은 말한다. 그래도 다행이야 머리카락으로 가리면 돼, 라고 하지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중얼대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 마음의 상흔보다 몸에 난 것이 낫겠지. 그리곤 그 부위에 화장을 덧칠한다. 숨어라 흉터야, 라고 나직이 토닥이며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