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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 세여자/홍순복

2018.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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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 홍순복

Fary집 부엌창문의 블라인더가 반쯤 열렸다. 그녀가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게 분명했다. 늘 상 Fary는 내가 지날 때 마다 뛰쳐나오며 오랜만에 보는 친구처럼 반긴다. 이번에도 아이처럼 팔짝 뛰어나왔다. 내 손엔 쓰레기 봉지가 들렸는데도 그녀는 내손을 잡아끌며 들어와 차를 마시라고 했다. 그녀의 호의를 저버릴 수 없어 매번 집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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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만 체구에 타이트한 바지를 입어 실제 그녀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아침저녁으로 동네 한 바퀴 도는 것이 일상이긴 하지만 나머지 시간은 TV를 켠다. 그러다 지치면 뒤뜰에 나가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으로 소일한다.
그녀는 이사 오기 전에 집을 완전히 바꾸어 동네의 모델하우스가 되었다. 옅은 회색톤 모던스타일로 예쁜 집이 되었다. 나는 Fary의 집을 드나들며 우리 집을 고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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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녀가 이사 왔을 때 환영한다고 인사를 하니 바로 자기 집으로 안내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자신은 이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낀 Fary는 이란에서 간호대학을 나와 병원에 근무하다 혁명이 일어나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왔다고 했다. 남편은 은행장이었는데 정부에서 자신의 돈을 주지 않아 그곳에서 일하며 송금해 Fary 가 오랫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살았다고 했다. 70대 후반인데 대학에서 미국교수의 강의를 들어 고급영어를 구사했다. 내게 뭔가를 주고 싶어 이것저것 뒤적이다 자기나라에서 공수해 온 볶은 유기농콩과 초록색 건포도를 담아준다. 전에는 눈먼 강아지와 귀먹은 강아지가 살았는데 이웃의 여자가 개 짖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다고 신고해서 다른 사람에게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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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야기를 할 때면 눈에 눈물이 그렁댄다. 나 정말 외로워요, 한다. 나는 아들이 둘이나 있고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묻는데 뭐가 외로우냐고 하면 그렇지요. 나는 많은 것을 가졌어요, 하며 얼굴 표정을 바꾼다. 언제나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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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바로 앞집의 김언니는 이 세상에 없는 딸의 어린 시절부터 15살까지의 이야기를 반복해 들려준다. 그녀 집안엔 아이의 유년기부터 교통사고로 떠나기 전까지의 사진들이 벽에 즐비하게 걸려있다. 조금은 비평적인 성격인 그녀는 특히 한국 사람에게 점수를 야박하게 준다. 자신도 한국 사람인데 말할 때마다 한국사람은 어쩌고저쩌고 운운하며 판단을 하고 한국교회에도 반감을 가지고 있다. 나도 한국사람인데, 하면 나는 보기 드물게 오픈마인드라 좋다고 한다. 어쩌다 잘 있냐고 문을 두드리면 잠시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그러면 몇 십 년 근무하는 우체국의 풍경을 내게 그려준다. 말할 상대가 없기에 내게 쏟아내는 이야기보따리는 언제나 같은 종류의 단조로운 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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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말을 트기까지는 7년이 걸렸다. 사고 후 달라진 상황과 얼굴모습에 우울증에 걸려 사람들과 말하기를 꺼려했다. 지금은 한결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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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쉬는 날에는 밖으로 나가 함께 식사하기를 즐긴다. 늘 쓸쓸하다고 말하는 김언니가 밥 먹자고 하는 날이면 차마 거절할 수 없다. 밥을 먹고 나면 이런 시간을 가져본지가 얼마만인지 몰라, 라며 감동을 한다. 밖이 조금 어둑해 지면 분위기가 좋다며 고맙다는 말을 연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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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과 벽이 붙은 옆집의 Margie는 80대 후반이다. Margie는 주로 집안에서 지내고 하루에 한번쯤은 남편을 따라 외출을 한다. 마켙이나 음식점 순례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식당은 얼바인에 있던 메리켈린더였는데 문을 닫자 멀리까지 가서 식사를 하고 파이를 사온다. 매번 내게도 애풀파이를 가져다 준다. 나도 먹을 것을 나누고 싶을 때 Margie 집의 초인종을 누르면 그녀 남편이 문을 연다. 아내대신 그가 내 손을 잡아끈다. Margie는 소파에 앉아서 클래식영화를 보며 깔깔거린다. 순, 이리와 봐요. 제임스딘이 너무 멋있어요, 한다. 내가 들어서면 Margie는 TV채널을 꺼 버린후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며 새로 일하는 직장은 어떠냐고 말문을 연다. 내가 어린아이처럼 있었던 며칠간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들려주면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그녀는 주로 듣는 타입이다. 나를 자주 못 보면 궁금하고 걱정이 된다고 했다. 가는 다리를 휘청이며 걷는 그녀가 안쓰럽지만 늘 웃고 사는 그녀의 심풀라이프를 배우고 싶다. Margie는 남편이 있어 그리 외로움을 느끼진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점점 쇠약해 지는 모습이 눈에 확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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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오후 오리 한 마리가 겁도 없이 우리 집 뒤뜰에까지 다가왔다. 먹을 것을 찾는 것도 아닌 듯 싶었다. 한참 자리를 잡고 앉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오래전 기른 상순이와 많이 닮았다. 너도 외롭니? 나도 외로워. 나랑 친구하자, 알아듣든 말든 나는 오리를 향해 말한다. 그러자 자기도 그렇다는 듯 긴 목을 빼어 꽥꽥 소리를 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