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건너 오두막-게 파티/이용우
2018.12.29상세 본문
게 파티 / 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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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새벽기도 후에 옆 자리에 앉았던 손 영호집사 부부와 함께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마셨다. 대화중에 과테말라에서 사역하는 한흥태선교사가 귀국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한 선교사는 우리 얼바인온누리교회에서 파송 받아 벌써 7년째 중남미 과테말라에서 의료 및 재소자 미용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부부선교사이다. 해 마다 연말이면 한두 달 다녀가시며 자녀들을 만나고 선교보고도 하고 미용강좌를 여는 등 바쁜 휴가를 보내는 분들이다.
“우리 선교사내외분 모시고 식사 한 번 합시다.”
내가 얼른 그렇게 말한 것은 찔리는 데가 있어서였다. 지난여름 함께 과테말라로 선교여행가자고 약속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지키질 못했다. 그래서 손 집사 내외만 다녀왔다. 과테말라를 다녀온 손 집사는 예의 세심한 관찰력으로 선교현장의 열악한 상황을 비디오 보듯 설명해주어서 더욱 관심이 깊어졌다. 나의 식사 제안에 손 집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색다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좋습니다, 그런데 식당으로 모시지 말고 우리 집에서 합시다. 한 선교사님이 바닷가에서 자랐으니 게 요리를 좋아하실 거예요, 내가 마켓에서 게를 사다가 찜통에 쪄낼 테니 우리 게 파티 한 번 합시다.”
정말 쌈빡한 제안이었다. 바닷가에서 자란 사람 아니어도 게찜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단박에 찬성했다.
“오, 게찜? 그거 정말 훌륭한 생각입니다, 좋아요, 우리 게 파티 한 번 합시다.”
이렇게 해서 예정에 없던 게 파티가 이루어졌다. 약속된 모임 날, 손 집사는 가든그로브의 월남마켓을 돌아다니며 살이 꽉 찬 알배기 게를 박스째 구입하여 커다란 찜통 두 개에 가득 삶아냈다. 선교사내외를 비롯한 여덟 사람(교우 한 가족 더 참석) 앞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게찜이 커다란 접시에 담겨져 나왔다.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던지네스 게찜이 한 사람 앞에 한 마리씩 통째로 놓여졌다.
“야, 이거 정말 근사합니다, 군침이 확 도네요, 그런데 어떻게 먹어야 할지 엄두가 안 납니다. 아무래도 다리부터 잘라먹는 게 순서겠지요?”
모두들 큼지막한 게찜을 한 마리씩 앞에 받아놓고 손 댈 엄두를 못 내고 있는데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한흥태선교사가 얼른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자, 자, 여길 보세요, 게는 이렇게 먹는 겁니다. 자, 우선 요렇게 다리를 모두 떼어내고….. 그런 다음 배딱지를 이렇게 짝 열고, 요 뚜껑에다가 밥을 한 숟갈 척 얹어서 알국물에 비벼먹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게다리살을 빼먹는 게 순서입니다. 자, 다들 해보세요.”
성격이 화통한 한흥태선교사는 손으로는 일변 게 다리를 뜯고, 입으로는 열심히 설명하며, 마무리로 뚜껑에 말은 밥까지 한 숟갈 떠먹어 보였다. 과연 바닷가에서 자란 사람답게 게를 다루는 손놀림이 거침없고 능숙했다. 일부러 밥을 쩝쩝 소리 나게 먹으며 알았지요? 하는 눈으로 짓궂은 표정까지 지었다. 그래서 모두 유쾌하게 웃으며 한선교사가 가르쳐 준대로 게다리를 떼고, 배딱지를 열고, 뚜껑에 밥을 말아먹었다. 게살은 많이 먹은 것 같아도 돌아서면 배가고프다 하여 갈비구이도 함께 먹었다.
그렇게 게찜을 맛있게 먹은 후, 티타임을 갖으며 자연스레 선교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필연선교사의 미용사역은 여성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숙제로 내주는 성경필사를 성실히 해오는 사람만 교육을 시킨다고 했다. 지금까지 5~6년의 사역기간동안 소수의 탈락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1년의 교육을 잘 마치고 미용라이센스를 취득했다고 한다. 재소자들은 그렇게 1년간 미용기술을 배우기 위해 숙제로 내준 성경필사를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신앙이 자라서 크리스천으로 거듭나고,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갱생의 길을 간다고 한다. 그동안 졸업생들이 쓴 성경필사노트가 무더기로 쌓인 사진을 나도 본적이 있어서 감동이 더했다. 더욱 고무적인 일은 한필연선교사의 미용학교에 입학하기위해 신청서를 내고 기다리는 재소자가 수십 명이나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식년을 갖으려 해도 그들 때문에 결행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흥태선교사의 침술사역도 그 도시에 널리 알려져서 쉴 틈 없이 환자들이 밀려든다고 했다. 그런데 침술은 기본적으로 온화한 환경에서 시술해야 효과가 있는데, 그 곳 시설이 열악해서 겨울철이 되면 치료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관공서나 수용시설 같은 곳에 진료를 나가면 칸막이도 제대로 없는 곳에서 시술을 하게 되어 침술효과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여 제대로 된 병원건물 신축이 한흥태선교사의 간절한 기도제목이었는데, 그동안 그의 활동을 지켜보던 어느 독지가가 도로에 접한 요지의 땅을 선뜻 기증했다고 한다.
“땅은 생겼는데 이젠 건축자금이 문제로군요?”
내 말에 한흥태선교사는 아무걱정 없다는 얼굴로 씩 웃었다.
“저는 아픈 사람 어떻게 고쳐주나 그게 걱정이지 건축자금 따위는 걱정 안 합니다, 땅이 걱정해서 생겼습니까? 기도해서 생겼지요! 나는 저 위에 계신 분께 말씀만 드리면 됩니다, 아버지 도와주세요, 이렇게 말입니다, 이미 병원 담장공사는 시작했어요.”
한흥태선교사의 말을 듣고 있던 손영호집사가 문득 생각났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참, 그 나라는 치안이 문제예요, 지금 선교사님이 담장공사 시작했다고 하셨잖아요? 그 나라는 집을 지으려면 담장공사부터 하는데 얼마나 높이 쌓는지 아세요? 한 사오 메타쯤 되게 성벽처럼 둘러쳐요, 대문도 육중하게 닫아걸어 밖에서는 절대 들여다보지도 못해요. 그리고 일반 마켓이나 사업장은 물론이고 잘사는 사람들은 가정집에도 총 둘러맨 경비원이 보초를 섭니다, 차 유리창도 전부 새까맣게 틴팅을 하고요, 그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깜짝깜짝 놀랐다니까요, 해 지면 밖에 못나가요, 아주 위험한 나라예요.”
말을 시작한 손 집사는 그 나라의 여러 상황을 한꺼번에 다 풀어놓았다. 우리는 모두 깜짝 놀라 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정말이에요? 과테말라가 그렇게 위험한 나라예요?”
그러자 한흥태선교사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여 마시더니 가슴을 쭉 펴며 말했다.
“네, 지금 손 집사님 말씀 그대로예요, 특히 한국사람은 강도들 타겟이예요, 선교사는 돈 없다 광고하고 다닐 수도 없고…. 과테말라 선교사역의 또 다른 걸림돌이 바로 그 나라의 불안한 치안입니다, 그렇지만 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습니까? 저 위에 계신 분이 다 알아서 하세요, 천사를 보내주십니다, 난 아무걱정 안 합니다!”
중남미 지역 나라들의 치안상태가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과테말라까지 그런 줄은 몰랐다. 마약 생산국인 콜롬비아나 경재가 망가진 베네수엘라, 온두라스 같은 나라들이면 몰라도 한 때는 본국 대기업들의 현지 생산 공장이 많이 진출해 있던 과테말라의 치안이 그렇게 불안하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일이어서 놀라웠다.
그 날 위로와 축복의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 돌아오며 ‘저 위에 계신 분이 천사를 보내주십니다, 난 아무걱정 안 합니다!’ 하시던 선교사님의 씩씩한 모습을 떠올리며, 정말 하나님께서 그 분들을 보호하는 천사, 선교사역을 돕는 천사, 건축을 돕는 천사, 중보기도의 천사들을 많이많이 보내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 우리들이 베푼 보잘 것 없는 게 파티가 위험한 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에게 손톱만한 위로라도 되었기를 간절히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