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권의 영혼의 창
2013.09.18상세 본문
은혜 시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누가 뭐라 해도, 어떤 일들이 벌어지더라도 은혜의 때입니다.(고후 6:2) 지금이 은혜의 때라는 진실을 잊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마음에 쓴 뿌리가 솟아나게 되고, 분노하게 되고, 평안을 잃어버리게 되고, 비록 허깨비이지만 악한 세력에 종살이하게 됩니다.(히 11:1-2)
인간은 아담 이후로 추락하는 실존을 갖고 태어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의 보혈로 은혜의 때를 유효하게 만드신 이후 믿는 자들은 추락으로부터 건짐을 받게 되었고, 나아가 아름다운 날개를 달고 비상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절벽에서 떨어지던, 영광을 잃은 한 생명체가 새처럼 날개를 달게 된 것입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은 중력에서 자유롭습니다. 중력의 마수가 서슬퍼렇게 추락을 종용하더라도 새들은 날기를 멈추지 않는 한 추락하지 않습니다. 중력은 엄중한 현실인 마냥 새들을 속박하려 듭니다. 사과도 떨어지고, 낙엽도 떨어지고, 비도 떨어지니까 너희 새들도 떨어져도 된다, 아니 떨어져야 한다고 중력은 고함치지만 새들은 중력에 종노릇하지 않고 오히려 중력을 짓밟고 날아오릅니다.
예수님은 은혜의 사역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한 방울의 먹물로 인해 어둠이 가득 하던 인간의 좁은 영해 속으로 깨끗한 태평양 전체가 쏟아져 들어온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죄가 제 아무리 크고 깊을 지라도 예수님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아무도 그 죄를 찾을 수 없고, 기억할 수도 없고, 그 죄의 실체적인 세력마저 소멸하게 됩니다.(히 10:17)
예수님은 자신을 배척하는 고향 땅 나사렛의 회당에서 자신의 사역이 저주와 책망의 사역이 아닌 ‘은혜의 사역’임을 분명하게 선언하셨습니다. 회당에서 일하는 한 사람이 예수님에게 건네 준 책은 구약인 이사야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사야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예수님의 사역을 설명하는 ‘은혜의 시대’ 부분만을 읽으신 뒤, 책을 덮으셨습니다. 의도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서 61장을 인용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 4:18~19)
사실 이사야서 원문에는 ‘은혜의 해’ 다음에 ‘보복의 해’가 기록되어 있지만 예수님은 ‘보복의 해’를 일부러 빠뜨리고 읽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은혜의 해’가 시작된 것이지, 아직 ‘보복의 해’는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보복의 때는 언제입니까. 보복의 때는 믿는 자들이 들려올라가고, 교회가 정리될 그때, 이후 대환란이 있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그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시대는 분명 은혜의 때입니다.
은혜는 이사야서 55장의 말씀처럼 모든 목마른 자들이 나아와 값을 지불하지 않고도 포도주와 젖을 넉넉히 먹고 마시는 풍성한 은혜입니다.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사람마다 생각하는 정도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은혜도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온전히 주신 은혜를 얼마나 다양한 정도로 해석하는지 볼 때마다 저는 날마다 놀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의롭게 보시는데 그치는 것이지 그 이후에는 절대적인 고난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고난이 따를 것이라고 하면서도 고난에서 승리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그리스도인을 영광스럽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해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서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박해 받는 성도들을 일으켜 세우시고 욥에게처럼 더욱 공급하여 주시길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보이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는 데다, 혹 그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하더라도 그것을 누릴만한 자격이 안 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사탄에게서 되찾아온 세상에 대한 모든 권세를 위임 받은 엄청난 은혜의 수혜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편 115편 16절 말씀을 통해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예수 믿는 자들에게 주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어떠한 궁핍에 처해 있더라도 그 부족한 것을 항상 채우고도 남는 넉넉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승리는 잔이 넘치는 승리이며, 예수님은 믿는 성도들을 섬기고 공급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은혜의 사역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을 넉넉히 채우시는 은혜를 바울은 고린도후서 9장 8절에서 잘 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마태복음 20장 28절은 서번트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공중에 나는 새와 들의 백합화를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믿는 자들은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 사신 자들이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 된 완벽한 의로움과 은혜 속에 일용할 양식은 물론 모든 선하신 공급이 다 포함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마 6:32)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어떤 진로를 가게 될까, 이 교회가 부흥할까, 이 사업이 잘 될까, 멀리 떠나 공부하는 자녀가 잘 지낼까, 이 외로움이 끝이 날까, 왜 나는 친구가 없을까, 졸업 후에는 무엇을 할까, 돈도 없는데 이 도전은 과연 선하게 인도될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할 일은 그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나아와 듣고 또 듣는 것입니다. 무엇을 듣느냐구요? 예수님과 그가 이루신 사역, 즉 은혜에 대해 계속해서 듣고 묵상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세상 가운데 일어나 빛을 발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 55장 3절에서 신비한 비밀을 적고 계십니다. 온갖 기름지고 좋은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어떠한 행위도 아닌 오직 듣고 듣는 것임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내게 와 듣고 들을지어다’는 히브리어로 ‘쉐마, 쉐마’입니다. 듣고 또 들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그 은혜의 사역을 계속해서 듣고 묵상하고 이야기할 때,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영화롭게 하고, 천국의 온갖 충만이 우리에게 달려온다는 약속인데 정말 놀라운 말씀입니다.(이사야 55:5)
갈라디아서에서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이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갈 3:7~9)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는다면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예가 된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 땅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창 17:6~8)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은혜의 약속이 우리와 맺은 영원한 언약이며 확실한 은혜라고 이사야 55장 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저는 율법에 갇혀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습니다. 지금도 참 많은 사람들이 고린도후서 3장 6절에 기록된 것처럼 죽음에 이르는 병, 곧 율법의 가르침에 속박되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이미 능력으로 주어진 은혜의 축복과 사랑을 어떤 행위나 성과나 외적인 과정을 통해 얻으려고 허공을 치고 있습니다.
제발 출발선에서 긴장한 얼굴로 달음박질 마시고,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승리의 결승점에서부터 여러분의 인생을 평화로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은혜에 대해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차명권 전도사(온누리교회, HEART min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