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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에스오에스

201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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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오에스/이용우

 

아차, 새벽기도…

 

미몽 중에도 나는 그렇게 속말을 웅얼거리며 실눈을 떴다. 무거운 머리를 들고 사이드테이불 위의 디지

털시계를 째려보았다. 시계 전광판에 4:30 이라는 자막이 떠있었다. 알맞은 시간에 잠을 깼다는 안도감

에 순간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들었던 머리를 베개에 누이며 바라보니 벽 쪽으로 돌아누운 아내의 뒷모습이 어둑하게 들어 왔다. 나는

아내의 목 밑으로 한 팔을 밀어 넣으며 잠 묻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일어나… 새벽기도 가야지…"

내 말에 잠을 깬 아내는 어머, 하고 가는 비명을 터뜨리며 벽 쪽으로 향했던 몸을 돌려왔다.

"여보… 이 분 만 더 자자…"

 늘상 하던 버릇대로 아내는 그렇게 말하며 팔을 감아왔다. 풀타임 직장에 가사노동과 틴에이저 딸아이

수발까지, 아내는 늘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그래도 평일에는 '오 분만 더…' 하던 것을 '이 분만 더…'로 3

분이나 줄여 말하는 것이 신통해서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 부부의 주말 아침은 침대위에서 딩굴딩굴 게으름 피우는 것이 한 주간의 쌓인 피로를 푸는 방법이

요 작은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지난 연초의 [40일 특새] 를 계기로 토요일 아침만이라도 새벽기도를 드

리자는 기특한 결심을 하게 된 것과, 두어 달 전부터 2부 예배의 성가대 봉사를 시작한 아내가 연습을 위

해 주일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게 되면서 우리 부부의 게으른 즐거움은 사라져버렸다.

 깊이 들었던 원잠에서 깨어난 후 새로이 눈을 붙이는 후벌 잠은 말이 잠깐이지 그 늪 같은 잠속으로 까

부룩 빠져버리면 삼 십분, 한 시간이 찰나에 지나간다.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고 2 분만 더… 의 잠마귀에 빠져 있던 나는 어느 순간 또 아차, 하고 머리를 번쩍

들었다. 활짝 열린 눈으로 탁상시계를 찾았다.

'5:05' 다섯 시 오 분. 그런데 무슨 조화인지 그 순간 내 눈에 505 라는 숫자가 SOS 로 보이는 것이었다.

"여보, 에스 오 에스야!"

 나도 모르게 아내가 싫어하는 고성을 지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당연히 아내의 머리를 괴었던 팔 베

개가 거칠게 빠져나왔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한 순간에 뿌리침을 당한 아내도 깜짝 놀라며 내가 가리

키는 시계를 보더니,

 "어머, 정말 에스 오 에스네… 여보, 저거 주님이 치신 거야. 빨리 새벽기도 가라고."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는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했는데 아내가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자 머리가 끄덕여졌

다. 우리는 부산하게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잽싸게 옷을 차려 입고 집을 나섰다. 5시 30분의 예배시간

에 맞추려면 10분정도밖에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았다. 트레픽이 없는 새벽시간이라는 게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여보, 참 신기하내. 어떻게 딱 그 시간에 눈을 떴어?"

교회로 가는 차속에서 아내는 무슨 특별한 계시라도 받은 게 아니냐는 얼굴로 두 번이나 그렇게 물었다.

신앙적인 문제로 의견차가 생길 때마다 체험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

르는 그녀였다.

 "예배시간에 늦으면 당신이 안달을 하니까 하나님이 깨워주신 거지. 그 에스 오 에스 주님이 치신 거라

고 아까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 뭘 그래."

 나는 짐짓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아내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돌렸다. 새벽기도

참석이 단단히 마음먹지 않고서는 예배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우리처럼 토요일 하루

참석은 연속성도 없고 리듬감도 떨어져서 정한 시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에구, 오늘도 설교말씀 반 토막밖에 못 듣겠네… 아니다, 찬송하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리 늦지는 않을

것도 같네. 어이구, 어쨌든 그놈의 잠이 웬수야."

아내는 달리는 차속에서 찬송 부르는 시간까지 계산하며 그렇게 자책했다.

차를 주차장에 바삐 밀어 넣고 서둘러 본당으로 들어서니 막 설교말씀이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우리

는 안도의 눈빛을 주고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생명의 삶' 을 펴든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했다.

"오늘의 하나님 말씀은 요한계시록 십 사장 십 사절로부터의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한 절 씩 교

독하겠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또 나는 보았습니다. 흰 구름이 있고 그 위에 인자 같은 분이 앉아 있습

니다. 그는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손에는 예리한 낫을 들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십 사장 말씀이 끝나고 교우들이 함께 교독할 차례가 되었다. 우리 부부는 제단 아래의 사람

들과 한 목소리로 다음 구절을 합송했다.

 "그때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위에 앉으신 분께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주의 낫을 보내 추수하

십시오. 추수 때가 이르러 땅의 곡식이 무르익었나이다."

 나는 15절을 읽으며 머리끝이 쭈뼛해 지는 것을 느꼈다. 다섯 시 오 분이 SOS로 변한 것이 결코 이유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0년 12월 18일